엄마, 김치볶음밥 맛이 좀.. 먹기가 그래요.
이 한마디에 폭발해 버렸다. 주말 이틀 내내 밥하고 치우고 또 밥 하기를 반복한 탓이었을까. 제법 지쳐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나빴다. 역시 나는 나쁜 엄마라 밥 하기가 싫은 것이었나. 그냥 외식할까 하는 마음을 겨우 달래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더니 둘째가 맛이 없다며 인상을 썼다. 그냥 무심히 넘겼으면 될 일을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마, 다른 거 해줄게.
부드럽게 말해도 될 일을 큰 소리를 냈다. 갑자기 내 마음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 배고파 죽겠다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걸 못 먹였으니 미안한 마음만 가졌어도 되었다. 분노가 좌절이 되었고, 그 좌절감은 무력감으로 바뀌었다. 분노 앞에서 꼼짝 못 하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둘째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 울기 시작했다. 첫째는 나를 진정시키고 꼭 안아주었다. 이제는 나보다 더 큰 첫째 어깨에 기대어 울고 말았다. 아, 나는 참 못난 엄마다. 아이들을 품어주기는커녕 아이들에게 기대고 말았으니까. 눈물을 삼키며 계속 밥을 먹겠다는 첫째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엄마, 괜찮아요. 좀 간이 세서 그러니
흰밥을 섞어서 먹을게요. 진정하세요.
나 때문에 저녁 식사가 엉망이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침 남편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감정이 미친 듯 날뛰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전날 깜빡하고 항우울제 복용을 건너뛴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약 한번 안 먹었다고 감정이 이렇게 널뛸 줄이야.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우울증은 분명 가족력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유전병은 아니라고 한다. 우울증 부모를 가진 아이가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가 있다고 한다. 특히, 양극성장애의 경우 일반적인 우울증에 비해 그 가능성은 더 높다는 것이다.
우울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엄마가 우울하면 아이들이 금방 눈치를 챈다. 엄마 기분이 울상인데 아이들이 마음 놓고 웃기도 어렵다. 아이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잊지 않기로 다짐한다. 언젠가 이 약을 끊을 날이 올 것이다. 우울증의 모습은 모두 다르니 나의 우울증은 아이들에게 되물림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보련다. 아이들을 염려하고 걱정하고 사랑하는 이 마음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