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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15. 2020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관계]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사무실에서 시켜 먹는 점심은 정말 맛이 없다.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를 끼고 있어 반경 500m내 괜찮은 식당이 없다. 근처 지하철 역 주변을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배달 전문 백반 집에서 시켜먹는다. 함께 먹는 직원 모두 맛이 없다는 데 동의한다. 동의해도 다른 선택권이 없으니 먹을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집 음식을 싫어하는 이유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모든 반찬이 매워서 이다. 조금만 매워도 땀이 나 웬만하면 잘 안 먹으려고 한다. 어떤 날은 6가지 반찬 중 5가지에 고춧가루가 들어있으면 맨 밥만 먹기도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양이 너무 적다. 5인분을 주문하면 두 사람이 작정하고 먹어도 모자랄 양의 반찬이 온다. 그럼 서로 눈치 보느라 맘 편히 젓가락질도 못한다. 가령 계란말이는 1인당 1조각만 먹을 수 있게 개수가 정해져 온다. 먹을 때 마다 느끼지만 정말 인심이 없다. 음식 장사는 무조건 넉넉하게 줘야 한다는 어머니의 지론을 생각나게 한다. 


           점심시간은 직장인의 하루 중 가장 활기찬 시간이다. 맛있는 음식은 삶의 활력을 준다. 맛있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갈 때 느껴지는 즐거움이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 순간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만큼 즐거운 시간도 없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가정사, 연애사, 선배 뒷담화, 진상 고객에 대한 불만등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여러 이야기가 반찬이 되어 음식의 풍미를 더해 준다. 이런 시간을 통해 서로에게 친밀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또 일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점심시간을 통해 해소하고 다시 일할 기운을 차리게 된다. 
매일 무얼 먹을지 고민되지만 그 고민마저 즐거울 수 있는 게 점심시간인 것 같다. 다만 회사 주변에 다양한 식당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 사무실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하나의 즐거움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구내식당이 있는 이들이 부럽기도 하다. 고민하지 않아도 양질의 영양가 높은 메뉴로 매일 구성을 달리하는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구내식당이 질릴 때면 외식하듯 나가 먹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일 테니 말이다. 또 다른 장점은 저렴하다는 거다. 백수시절 구청 구내식당은 필수코스였다. 맛도 있었지만 한 끼 4천원은 멀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 직장인에게 밥값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대부분 연봉에 점심값을 포함하고 있어 자비로 먹는 게 보통이다. 요즘 어딜 가도 한 끼 6천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밥들의 천국이나 가야 6천원으로 한 끼 해결이 가능하다. 그 외 대부분은 앉았다하면 8천원이 기본이다. 우리 회사도 얼마 전까지 한 끼 6천원이었다. 연봉에 식대 별도라 6천원 한도에서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앞서 적었듯 반경 500m 내 식당이 없어 유일한 대안인 6천원짜리 배달 백반만 주구장창 먹었다. 점심시간이 주는 두 가지 즐거움 즉,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고르는 즐거움을 잊고 산지 오래 되었다. 


         그날도 맛없는 백반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었다. 맛없으니 먹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머리를 푹 숙이고 자기 밥만 열심히 먹고 있었다. 같이 먹던 상무님이 한 마디 꺼냈다. 


“다음부턴 각자 이야기 꺼리 하나씩 준비합시다. 적막해도 너무 적막해.”


늘 그래왔다. 밥 먹는 시간은 적막강산이었다. 가끔 별식을 시켜 먹을 땐 다들 할 말이 많다. 그것만 봐도 원래 말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맛없는 음식 앞에선 말 할 의욕마저 꺾이고 마는 것 같다. 빨리 이걸 먹고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일념뿐이다. 나조차도 그러고 싶다. 가끔 사용하는 대안이 있다. 점심 전 외근을 나가는 거다. 그럴 땐 먹고 싶은 걸 찾아 먹는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다만 혼자 먹는 건 감수해야 한다. 점심을 먹는 건 단지 먹는 행위에만 가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메뉴를 고르기 위해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 서로 다른 음식을 함께 먹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 먹고 난 뒤 음식에 대한 간단한 평을 남기는 과정 등 한 끼 식사를 위해 다양한 행위를 함께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함께 하며 서로에게 정도 쌓이고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함께 식사를 하는 이들을 식구라 한다. 각박한 사회생활 속 모두가 경쟁자라고 하지만 경쟁은 일에만 한정 지었으면 한다. 적어도 밥 먹는 시간만큼은 서로를 식구라 생각하고 서로에게 의지도 하고, 위로도 될 수 있는 사이가 된다면 딱딱한 관계를 떠나 서로에게 큰 위안이 되는 푹신푹신 사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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