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없던 밴드
솔로 2집 활동을 마친 신해철은 기획사에 조르고 조른 끝에 기획사로부터 밴드를 해도 좋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신해철을 중심으로 무한궤도 후기 드러머이자 신해철의 절친, 이동규를 영입하고 솔로 2집 세션과 솔로 투어를 함께 한 정기송이 합류함으로써 역사적인 N.EX.T 1기가 결성되었다. 기타와 드럼, 보컬 뿐인 이상한 밴드. 나머지는 신디사이저와 컴퓨터로 채운, 세상에 없던 밴드, N.EX.T의 탄생이었다. 넥스트는 초장부터 '방송활동 일체 안함'이라는 파격적 선언을 했다. 방송국이 지금과 달리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던 그때로써는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후에 '고스트스테이션' 넥스트 특집에서 회고하기로는, 방송활동을 하며 방송국, 특히 프로듀서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당시 방송 풍조가 그는 너무나도 싫었고, 두 번의 큰 성공 후에 그가 방송가에서 입지가 생겼을 때 그 프로듀서들이 방송 출연 한 번 해달라고 자신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그것이 실제로 실현되자 엄청나게 통쾌했다고 한다. 하여튼 넥스트는 가끔씩 음악방송을 나가는 것 외에는 일절 방송활동을 하지 않았고, 그랬음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New EXperiment Team이라는 이름답게 전통적인 밴드의 멤버 구성 대신 제 4의 멤버로 컴퓨터를 택한, 자기만의 생각이 뚜렷한 실험적 음악을 만드는, 넥스트의 창대한 시작이었다.
넥스트가 내놓은 <Home>은 기본적으로 테크노 음악에 락을 접목시킨 이른바 "테크노 락"의 선구자적인 앨범으로써 지금의 넥스트의 음악적 방향과 같으면어도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그 당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사람 간의 관계 단절과 삭막함, 이기주의로 변질된 개인주의를 담은 가사가 이 앨범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당시만 해도 가사가 사회적 기조에 대한 풍자 내지는 지적 정도는 될 수 있어도 비판의 수위까지는 가지 않았다. 또한 이때까지 미디를 곡의 전면에 등장시켰기 때문에 솔로 활동 시절의 음악적 성향이 지워지지 않았다.
도시인들의 동상이몽을 노래하다 <도시인>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신해철이 라디오에서 밝히길, 신해철은 넥스트 1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신해철은 그 당시의 음악 기획사들과 엔지니어와 가수의 협업이 이루어지지 못한 그 당시 상황을 비판하며 이 앨범을 '처참한 결과'라고까지 이야기한 바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이 <도시인>이다. 하우스 비트에 락이 접목된 선율, 최초로 이용된 샘플러(샘플러는 음악, 비음악을 불문하고 샘플링에 의해 표본화된 "소리"를 임의로 재생 출력할 수 있는 장치이다. 쉽게 말해 미리 녹음된 소리를 단편적으로 악기처럼 연주할 수 있는 기기이다.)로 연주한 도시의 여러 소음들(예: 경적 소리, 웃음 소리 등)이 어우러져 도시의 느낌을 최대한 구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기타와 드럼, 보컬이 최대한 같은 비중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곡에 정성을 쏟은 흔적이 엿보인다. 하지만 라디오 방송에서 회고한 신해철의 후일담으로는, 신해철은 사실 <도시인>의 보컬을 25%로 줄이고 드럼 사운드를 강화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신해철이 당시 믹싱을 맡지 않은 덕에 의도와 달리 보컬 사운드가 빵빵하게 나와버렸고, 그래서 이 노래를 들을때마다 정말 한이 쌓인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또한 이외에도 당시 사운드 믹싱 환경의 한계로 음질이 좋지 못한 결점이 있다. 하여튼 이러한 옥의 티에도 불구하고 도시인은 동시에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과 음악 프로에서 1위 경쟁을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를 기반으로 음악계 올스타 앨범과도 같은 <1992 내일은 늦으리>의 프로듀싱 및 작곡을 맡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나레이션곡' <아버지와 나 Part 1, 2>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신해철이 밤의 디스크쇼를 진행할 때였다. 당시 문인으로는 드물게 시인 허수경이 밤의 디스크쇼 작가로 있었고,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드느라 고민을 하던 신해철을 옆에서 보던 허수경 시인이 힌트를 주기를,
"너의 가사를 노래에 우겨 담으려 하지 말고, 그냥 말을 내뱉듯 써보아라."
신해철은 그 말을 듣고 무언가 떠오른 듯 복도 구석에 앉아 조언대로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사로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는 자신의 아버지와 싸웠던 이야기 밖에 없었고, 그는 그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런데 써 보니 이걸 평범한 노래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고, 한국 가요계에 유례없는 특이한 형식의 '나레이션곡'이란 것이 탄생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와 나 Part 1,2>. '커다란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으로'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듯'과 같은 시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이 신해철에 의해 나지막이 울려 퍼지고, 인상적인 영화음악이라고 착각될 정도로 극(劇)적인 음악이 가사의 인상을 뒷받침해준다.
세상에 길들어버린 꿈 <영원히>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짐이지"
우리들은 어렸을 적 허무맹랑했지만 위대한 꿈이 있었다. 우주인, 대통령, 장군, 파일럿, UN 사무총장... 그러다가 점점 커가며 그런 꿈들이 공무원, 교사, 회사원이 되가는 걸 보면 씁쓸한 걸 넘어 비참해지기까지 한다. 상상력이라는 능력으로 위대한 꿈을 꾸었지만, 어른들이 만든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 나도 모르게 꿈을 잃고 상상력이라는 힘마저 잃는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하지만 신해철은 달랐다. 현실이라는 벽 따위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죽을 때까지 쭉 밀어부쳤다. 기타리스트라는 당초의 꿈은 다한증이라는 신체적 한계에 부딪쳐 바뀌었지만, 그의 천부적 재능과 음악이라는 꿈에 대한 열망은 그를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불멸의 음악가로 만들어주었다. 그의 인생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라디오 모 프로에서 그가 라디오 드라마 형식으로 그가 음악을 하게 된 과정을 말해주는 걸 인터넷에서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신해철 역은 자기 자신이 맡았다. 부모님과 일가친척이 다 들고 일어나 가수의 꿈을 반대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대학가요제에 나와 대상을 타고 끝내 아버지에게 인정받는다는, 실화였지만 어쨌든 뻔한 전개지만, 그가 전하려는 메세지 만큼은 뻔한 것이 아니었으리라. 그는 이 노래를 통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라 말한다. 남들과 닮아가지 말고 나를 찾으라고, 세상에 길들지 말라고, 친구들과 맺었던 꿈을 이루자던 그 약속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물론 세상에 길들지 않는다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길든다고 못 이루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짧은 인생의 끝에서 '아, 재밌게 살았다!'라고 생각하고 가려면, 내가 원하는 꿈 하나쯤은 이뤄야 하지 않을까? 처음 산 빨간 기타를 들고 잠 못 이루던 어린 신해철이 간직했던 꿈, 곡을 쓰고 컴퓨터를 만지며 밴드를 꿈꾸던 신인 신해철의 꿈, 콘서트를 다니고 밴드를 이끌며 새로운 음악을 찾아다니던 청년 신해철의 꿈, 화려한 컴백을 준비하며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설 지 고민하던 몇 년 전 신해철의 꿈까지. 모습은 달라도 음악이라는 꿈 하나로 40여년을 달려온 그는 더이상 우리 곁에 없지만, 그는 아직도 그의 노래들로 꿈을 잃지 말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달리라 말한다. <영원히>는 그런 신해철이 남기는 간절한 그의 메세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