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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석 Dec 07. 2021

뭔가에 푹 빠져본 적이 있나요?

면접을 볼 때 기회를 봐서 늘 묻는 질문이다.


뭔가에 푹 빠져본 적이 있나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인 '무엇'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좋으니 완전히 '푹' 빠져본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말로 무엇이든 상관없다. 온전히, 앞뒤 가리지 않고 푹 빠져봤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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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빠지는 데는 이유가 필요없다.


뭔가 심대한 이유가 있어도 좋고, 10년 동안의 계획을 세운 첫 단추여도 좋고, 그냥 걷다 보니 걷고 싶어서 산티아고 같은 곳을 걸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온전히 푹 빠지는 것이다.


물론 온전히 푹 빠지는 것이 불법적인 일이라거나, 몸을 혹사시키거나, 회복 불가능한 어떤 상태로 스스로를 몰아가는 것이면 안되겠다. 그러나 보통 이런 경우는 적고, 온전히 무엇인가에 빠질 때는 이유 같은 것은 필요없을 때가 더 많다. 등산으로 친다면, 그 산의 꼭대기까지 힘들게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라는 답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


그렇다면... 뭔가에 푹 빠지는 경험이란 것이 왜 중요한가.


가장 단순한 답으로는,


무엇이든 온전히 스스로를 던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푹 빠진다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어떤 계기로든 완전한 몰입을 느낀 사람은, 그리하여 행동의 이유나 시간의 흐름이나 기회비용 같은 잡다함의 모든 것들을 던져버리고, 어떻게든 그것을 해결하고 말겠다는,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몰입 그 자체에 푹 빠져버린 사람은,


중독된다. 이해한다.


몰입한다는 것 그 자체에 빠져든다. 어떤 이해득실이 아니라, 몰입의 즐거움, 그 Flow란 것에 대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데 미칠 것처럼 그리움에 쪄는 그 상태를 이해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뭔가에 푹 빠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후자의 사람에게 전자의 경험을, 그 extreme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이해불가능한 상태를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것들은 경험하지 않고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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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에 푹 빠져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른 것에도 빠져들 수 있다.


처음 빠졌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어도 상관없다.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은 스스로를 움직인다. 화학 변화를 일으키고, 아드레날린을 솓구치게 하고, 스스로를 취하게 한다. 갈증을 느끼게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며, 오히려 너무 순탄한 길은 의심하게 하며 지루하게 한다. 낙담이 깊을 수록, 도저히 해결불가능할 것 같은 벽을 만나고 처절한 심리적 급강하를 일으키더라도,


포기하고 싶은 그 직전의 순간까지도 스스로를 몰아세우게 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를 몰아세우다가, 극한에 다다른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을 잊고 순수하게 답을 찾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을 갖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퍼즐을 풀게 된다. 풀고 나면 내가 이걸 정말 풀었나 하는 그런 문제들을.


--


푹 빠져드는 것에는 마력이 있다.


뭔가를 푸는 과정에서 이미 스스로는 성장해 있다. 돌아갈 필요도 없지만,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 점점 더 강한 마약을 찾는 것처럼 점점 더 강한, 의미있는,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가는 그런 문제를 찾게 된다. 그렇지 않고는 빠져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이번에 무엇을, 무엇이든 같이 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가 과연 이것을 풀 수 있을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푹 빠져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진심이면 그 문제는 이미 풀린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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