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브 버드의 역사와 어원

못의 이름을 가진 동방의 보물, 황제의 예법에서 흑사병의 부적으로

by 이지현

작고 단단하며 짙은 갈색을 띤 클로브버드는 그 강렬한 향기만큼이나 인류 역사에 깊고 뚜렷한 자국을 남겼다. 인도네시아의 작은 화산섬 제도에서만 자라던 이 식물은, 고대부터 신비로운 동방의 보물로 여겨지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로마의 귀족과 중국의 황제에게까지 전해졌다. 톡 쏘는 매운맛과 입안을 얼얼하게 만드는 마취 효과, 그리고 부패를 막는 강력한 방부 능력은 클로브를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생명을 지키는 약이자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향료로 격상시켰다. 이 작은 꽃봉오리를 차지하기 위해 국가 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항로가 개척되었을 정도로 그 가치는 대단했다. 이번 글에서는 클로브버드라는 이름에 담긴 형태학적 의미를 추적하고, 동양과 서양의 고대 문명을 거쳐 중세의 전염병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향신료가 어떻게 인류의 삶과 문화를 변화시켰는지 그 역사적 여정을 상세히 알아본다.



클로브버드의 형상과 동서양의 공유

클로브버드를 지칭하는 동서양의 이름들은 놀랍게도 하나의 공통된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금속으로 만든 못이다. 꽃봉오리가 건조되면서 형성되는 독특한 모양은 고대인들에게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겼으며, 이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동일한 의미의 이름으로 정착되는 결과를 낳았다.


라틴어 클라부스와 프랑스어 클루

영어 단어 클로브(Clove)의 어원은 다소 복잡한 경로를 거친다. 고대 그리스어 카리오필론(Karyophyllon)에서 라틴어 카리오필룸(Caryophyllon)을 거쳐, 중세 프랑스어 클루 드 지로플(Clou de girofle)로 변형되었다. 여기서 클루(Clou)는 라틴어 클라부스(Clavus), 즉 못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것이 중세 영어를 거쳐 오늘날의 Clove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덜 핀 꽃봉오리를 따서 말리면 둥근 머리 부분과 길쭉한 줄기 부분이 마치 녹슨 못과 흡사한 모양을 하게 된다.


동양의 정향, 고무래와 못의 형상

동양에서도 클로브를 부르는 이름은 서양과 맥락을 같이한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이를 정향(丁香)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정(丁) 자는 고무래나 못, 말뚝 같은 뾰족한 형상을 본뜬 글자로 해석된다. 즉, 못 모양의 향기로운 물건이라는 이미지가 투영된 것이다. 못은 무언가를 고정하고 단단하게 박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클로브의 톡 쏘는 맛과 강렬한 향기가 혀와 코에 깊이 박히는 듯한 감각적 경험 또한 이러한 이름과 잘 어우러진다.


식물학적 특성과 꽃봉오리의 수확

식물학적으로 클로브는 도금양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으로, 원산지는 인도네시아의 몰루카 제도이다. 이 나무는 덥고 습한 열대 기후에서 자라며, 일 년에 두 번 꽃을 피운다. 향신료로 사용되는 부분은 활짝 핀 꽃이 아니라, 개화 직전의 닫힌 꽃봉오리이다. 꽃잎이 벌어지기 전, 꽃봉오리가 붉은빛을 띠기 시작할 때가 향기가 가장 농축되어 있는 시기이다. 이때 수확하여 햇볕에 말리면 붉은색이 짙은 갈색으로 변하며 단단해진다. 꽃이 활짝 피면 향기 성분이 분산되어 품질이나 약효가 떨어진다고 여겨졌기에, 적절한 시기에 수확하는 것이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황제와 신하의 예법

클로브의 원산지가 동남아시아였기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은 일찍부터 이 향신료를 접하고 활용했다. 고대 중국에서 클로브는 요리의 재료를 넘어, 황제 앞에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예법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한나라 궁정의 계설향과 구취 제거

한나라(기원전 2세기 ~ 기원후 2세기 무렵) 시기의 기록에 따르면, 황제를 알현하려는 신하들은 입안에 클로브를 머금어야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이를 계설향(鷄舌香)이라 불렀는데, 이는 클로브의 모양이 닭의 혀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하가 황제에게 말을 올릴 때 불쾌한 입 냄새가 풍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클로브의 강력한 살균력과 방향 효과는 구취를 제거하는 데 탁월했기에, 일종의 고대 구강 청결제로 사용된 것이다. 이는 클로브가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궁중 예법과 위생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례이다.


몰루카 제도의 비밀스러운 원산지

클로브가 자라는 곳은 인도네시아의 몰루카 제도, 즉 향료 제도라 불리는 좁은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남중국해를 건너온 상인들을 통해 이 향신료를 구했지만, 정확한 원산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지 전승에 따르면 몰루카 제도 주민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클로브 나무를 심어 그 나무의 성장과 아이의 운명을 연결 짓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나무가 잘 자르면 아이도 건강하게 자란다고 믿었기에 나무를 신성시하고 보호했다. 이러한 원주민들의 문화와 제한된 서식지는 클로브의 희소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었으며, 오랫동안 외부 세계에 신비로운 존재로 남게 만들었다.


동남아시아 무역과 전파

동남아시아의 해상 무역로를 통해 클로브는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와 스리랑카 등지로 퍼져나갔다. 인도의 아유르베다 의학에서는 클로브를 소화기 질환과 치통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했다. 일부 연구에서는 고대 인도 문헌인 라마야나 등에 등장하는 향신료가 클로브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클로브는 후추와 함께 동방 무역의 중요한 품목 중 하나였으며, 바닷길을 통해 아시아 전역의 식문화와 의학에 영향을 미쳤다. 이 작고 매운 열매는 문명과 문명을 잇는 향기로운 매개체였다.


3. 고대 로마와 서양으로의 전파: 사치와 신비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전해진 클로브는 로마 제국의 귀족들에게 극도의 사치품이자 신비로운 동방의 선물로 여겨졌다. 로마인들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이 향신료를 탐했다.


로마 식탁 위의 고가 향신료

로마 제국 시대에 클로브는 인도양과 홍해를 거쳐 알렉산드리아 항구로 들어오는 주요 무역 경로를 따랐다. 먼 거리를 이동하며 수많은 상인의 손을 거쳤기 때문에 로마에 도착했을 때 그 가격은 최고급 사치품에 해당했다. 로마의 미식가 아피기우스의 요리책에는 후추를 비롯한 다양한 향신료가 등장하는데, 클로브 역시 고기 요리의 풍미를 더하고 보존성을 높이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기록

1세기의 박물학자 대 플리니우스는 그의 저서 박물지에서 인도산 향신료에 대해 기록했다. 그는 클로브로 추정되는 향신료를 후추와 비슷한 모양의 길쭉한 알갱이 등으로 묘사하며, 그 향기가 매우 독특하다고 언급했다. 당시 로마인들은 클로브의 정확한 식물학적 형태나 원산지를 알지 못했으며, 인도 일대에서 온 향신료로 막연하게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플리니우스의 기록은 서양 세계가 클로브를 인식하기 시작한 초기의 문헌적 증거로, 당시 지중해 세계에 유입된 동방 물품 중 클로브가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알렉산드리아와 세금 기록

로마로 들어오는 클로브의 관문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였다. 이곳은 동방의 물산이 집결하는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로마 제국 말기의 기록에 따르면 클로브를 포함한 수입 향신료에 세금이 부과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클로브가 정기적으로 거래되는 중요한 무역 상품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쇠퇴하고 무역로가 불안정해지면서 유럽에서 클로브는 한동안 자취를 감추거나 극소수의 사람만 접할 수 있는 전설적인 향료로 남게 되었다.




중세 아랍의 황금기와 의학

로마 제국 멸망 후, 클로브 무역의 주도권은 아랍 상인들에게 넘어갔다. 중세 이슬람 문명은 클로브를 의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요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아라비안 나이트와 신밧드의 모험

천일야화, 즉 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신밧드의 모험 이야기에는 동방의 섬들을 항해하며 겪는 다양한 일화들이 나온다. 일부 학자들은 여기서 묘사되는 보물과 향료의 섬들이 클로브와 육두구가 자라는 동남아시아의 섬들을 모티브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한다. 아랍 상인들은 인도양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클로브의 원산지를 비밀에 부치거나 신비화하여 그 가치를 유지했다. 그들에게 클로브는 부를 가져다주는 중요한 교역품이었다.


이븐 시나와 의학적 활용

중세 이슬람 의학의 거장 이븐 시나(아비센나)는 그의 저서 의학정전에서 클로브의 효능을 다루었다. 그는 클로브가 심장을 강화하고, 소화를 도우며, 구토를 멈추게 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또한 치통을 완화하는 진통제로 클로브를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의학적 지식은 클로브가 단순한 향신료를 넘어 중요한 약재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아랍의 의학은 훗날 유럽의 대학과 수도원으로 전해져 서양 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클로브의 약용 가치 또한 함께 전파되었다.


아랍 요리와 커피 문화

아랍인들은 클로브를 요리에 널리 사용했다. 양고기나 쌀 요리에 클로브를 넣어 냄새를 잡고 풍미를 더했으며, 음료에도 활용했다. 특히 커피 문화가 발달하면서 커피에 클로브나 카다멈을 넣어 마시는 풍습이 생겨났다. 클로브의 따뜻하고 자극적인 향은 커피의 쓴맛과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냈으며, 소화를 돕고 자극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어졌다. 이러한 식문화는 오늘날 중동 지역의 커피 문화에도 여전히 남아 있어, 클로브가 아랍인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음을 보여준다.




중세의 보호와 치유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은 다시 동방의 향신료에 눈을 떴다. 중세 유럽에서 클로브는 부의 상징이자, 흑사병과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었다.


금보다 비싼 향신료의 가치

중세 유럽에서 클로브는 후추와 함께 가장 값비싼 향신료 중 하나였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주도적으로 공급하던 클로브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같은 무게의 금과 맞먹거나 웃도는 가격에 거래되었다고 전해진다. 귀족들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요리에 클로브를 아낌없이 사용했고, 겨울철 저장 음식을 만들 때 보존제로 활용했다. 성당이나 왕실의 보물 목록에 고가 향신료가 황금이나 보석과 함께 기록된 예가 있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클로브 한 주머니가 상당한 자산 가치로 여겨졌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열광을 짐작하게 한다.


흑사병과 포맨더의 보호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 이후, 사람들은 악취(미아즈마)가 병을 옮긴다고 믿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향기가 강한 향신료를 몸에 지니고 다녔는데, 클로브는 그중에서도 중요한 방어 수단으로 여겨졌다. 특히 오렌지에 클로브를 촘촘히 박아 만든 향기 공, 즉 포맨더(Pomander)는 14세기에서 17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부적이자 호사품이었다. 현대 연구에서 밝혀진 클로브 유게놀 성분의 강력한 항균 및 항바이러스 효과를 고려할 때, 당시 사람들의 믿음이 전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의사들은 환자를 진료할 때 클로브를 씹거나 코에 대고 있어 감염을 피하려 했다.


수도원 의학에서의 활용

중세 수도원의 정원에서는 다양한 약초가 재배되었지만, 클로브와 같은 열대 향신료는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수도사들은 귀하게 얻은 클로브를 이용하여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는 다양한 비약을 제조했다. 소화제, 진통제, 그리고 전염병 예방약의 처방에 클로브가 빠지지 않았다. 특히 치통 환자에게 클로브를 물고 있게 하거나 오일을 바르게 하는 처방은 민간요법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수도원은 의학 지식의 보존소로서 클로브의 약용 가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후대에 전승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에서 시작된 클로브버드의 여정은 고대 중국의 황실과 로마의 연회장을 거쳐 중세 유럽의 병실과 식탁에까지 이르렀다. 못을 닮은 이 작은 꽃봉오리는 그 이름처럼 역사 속에 단단히 박혀, 인류의 식문화와 의학, 그리고 무역의 흐름을 변화시켰다. 고대인들에게는 입 냄새를 없애는 에티켓의 도구였고, 중세인들에게는 흑사병을 막아주는 생명의 부적이었다. 클로브가 뿜어내는 맵고 따뜻한 향기 속에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류의 호기심과 생존을 위한 절박한 지혜가 함께 녹아 있다. 오늘날 우리가 뱅쇼 한 잔이나 치과 치료에서 느끼는 클로브의 향기는,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온 치유와 보호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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