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의 뿌리에서 피어난 붉고 예리한 풋내
현대 향수 산업에서 과일의 단맛을 덜어내고 서늘하면서도 아삭한 질감을 표현할 때 가장 각광받는 원료를 꼽자면 루바브가 으뜸으로 거론된다. 마디풀과에 속하는 이 다년생 초본 식물은 샐러리처럼 굵고 길게 뻗은 줄기가 선명한 붉은빛을 띠며,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침샘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찌를 듯한 산미를 지니고 있다. 조향사들은 레몬이나 자몽 같은 감귤류의 뻔한 상큼함에서 벗어나, 빗물을 머금은 잡초의 풋풋함과 덜 익은 베리류의 날카로움을 동시에 구현하기 위해 루바브의 향취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서구권의 식탁에서는 설탕에 졸여 파이나 크럼블을 만드는 새콤달콤한 디저트 재료로 친숙하지만, 루바브의 기나긴 역사는 주방이 아닌 아시아의 험준한 산맥과 고대 약방에서 출발했다. 잎사귀에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어 오직 붉은 줄기와 땅속의 굵은 뿌리만을 취해야 했던 이 식물은, 고대 중국에서 몸속의 독소를 배출하는 강력한 하제로 쓰이며 실크로드를 타고 서방으로 전해진 값비싼 약재였다. 쓴맛이 감도는 동양의 약뿌리가 유럽의 식탁을 거쳐 현대 니치 향수의 가장 세련되고 도도한 탑 노트로 자리 잡기까지, 루바브가 통과해 온 궤적은 인류의 미각과 후각이 진화해 온 역동적인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번 글에서는 루바브의 어원적 기원부터 척박한 고원을 견뎌낸 생태적 비밀, 투명한 향기로 재탄생한 과정을 알아본다.
루바브라는 이름은 고대 로마 시대에 라틴어 라바르바룸에서 파생되었다. 로마인들은 흑해와 카스피해 북쪽을 흐르는 볼가강을 라라고 불렀고, 그 강 너머의 미개척지에서 이민족들이 가져온 낯선 식물의 뿌리라는 뜻을 담아 라의 야만인이라는 의미의 라바르바룸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식물 분류학에서 루바브가 속한 속명은 레움이다. 이 명칭 역시 볼가강의 옛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학설과, 흐르다 혹은 배출하다라는 뜻을 지닌 고대 그리스어 레오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병존한다. 후자의 경우 루바브 뿌리를 달여 먹었을 때 체내의 불순물을 강력하게 배출시키는 배변 작용을 의학적으로 묘사한 단어이다.
서방에서 야만인의 뿌리라 불렀던 식물을 동양에서는 대황이라 칭했다. 크고 노란 뿌리라는 뜻을 지닌 한자어 표기이다. 줄기는 붉은빛을 띠지만 약재로 쓰이는 땅속의 굵은 뿌리를 잘라보면 선명한 황갈색을 띠고 있어, 그 시각적 특징을 이름의 뼈대로 삼은 것이다.
루바브의 식물학적 발상지는 춥고 메마른 티베트 고원과 몽골, 중국 서북부의 산악 지대이다. 해발 고도가 높고 일교차가 극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루바브는 생존을 위해 땅속 깊은 곳에 거대한 덩이뿌리를 내리고 그곳에 영양분과 화학 물질을 맹렬하게 축적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극한의 기후 조건이 식물의 대사 작용을 자극하여 인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유효 성분들을 밀도 있게 배양하는 자연의 거대한 약초 공장 역할을 수행했다.
기원전 중국의 고대 의학서인 신농본초경에는 대황이 가장 중요한 약재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고대 한의학에서 대황은 성질이 차갑고 맛이 써서, 몸속에 뭉친 열을 내리고 묵은 변을 배출시켜 혈액 순환을 돕는 핵심 처방으로 다루어졌다. 체내에 쌓인 치명적인 독소를 밖으로 밀어내는 위급한 치료에 쓰였기에 맹장(용맹한 장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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