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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J Sep 25. 2016

소란스러움을 즐기는 공간

2016.09. 시장골목

시장.

물건을 파는 일보다는 사람이 오고 가는 공간. 시장이 그렇다.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더 이상 시장은 찾지 않지만 시장 골목에는 여전히 사람 사는 냄새와 소리가 가득하다.

도시를 벗어난 마을에는 여전히 시장이 선다. 우리 동네도 매주 4일, 9일이 되면 5일장이 선다.

평소에는 검은 아스팔트 도로가 5일마다 알록달록 현수막으로 채워져 이곳저곳 정겨운 소리와 냄새가 넘친다. 5일 장은 그저 물건을 파는 날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오고 가며 마주하는 날이다.

생선 파는 아저씨의 우렁찬 목소리, 뻥이요를 외치는 아저씨의 호루라기, 어묵을 튀기는 아주머니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인사를 건넨다.


어렸을 때, 시장은 별천지 같은 곳이었다. 아마 그땐 대형마트도, 뭐든지 다 파는 다이소 같은 가게도 없었던 시기였으니 시장을 구경하는 일이 나에겐 질리지 않는 모험이었다.

지금은 그런 시장의 모습도 많이 변해가고 있다. 서울의 전통시장은 몰려드는 대형마트를 이겨내지 못하고 제 살 길을 찾아가고 있다. 종로의 통인시장이 그렇고, 마포의 망원시장이 그렇다. 주로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시장의 모습을 찾아가는 공간은 시장이라기 보단 하나의 예술공간이 혹은 관광공간이 되었다.

반면, 변하지 않은 시장도 있다. 남대문 시장이나 광장시장. 시장의 한켠에서는 혹은 몇 명이라도 모일 수 있는 공간에서는 의자 몇 개를 두고 술잔을 나누는 순간, 시장 밥집이 만들어진다.

유명하지 않거나 관광객이 찾지 않는 골목에도 시장은 있기 마련이다. 흑석역 근처에는 흑석시장이 있다. 말 그대로 시장이다. 골목에 과일, 신발, 반찬, 생선 등 온갖 물건을 파는 상설시장. 시장하면 빠질 수 없는 도너츠도 팔고, 소시지를 넣은 핫바를 팔기도 한다. 시장 골목마다 온갖 음식 냄새와 사람 냄새가 뒤섞인다.

나는 시장을 좋아한다.

시장이 갖고 있는 소란스러움도, 흥정하는 모습도, 오고 가며 마주하는 사람들의 눈인사도.

이제는 그런 시장들을 찾는 일도 어렵게 되고 있지만, 간혹 발견하는 시장의 모습들은 언제고 나를 어린 시절 엄마손을 잡고 별천지를 돌아다니는 아이로 만들어주곤 한다.


지금 고개를 돌리면 눈에 들어오는 대형마트는 물건을 팔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정갈하게 쌓여있는 물건을 사는 일은 그저 소비자가 구매하는 일, 그뿐이다. 하지만 시장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목에서 밥을 먹는 사람이 생기고, 머물다가는 사람이 생기면서 사람에 맞춰 자연스레 생겨나는 공간이다. 물론, 지금 시장은 그 의미가 지나치게 오래되어 변했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시장이 갖는 어설픈 삐뚤삐뚤함을 좋아한다.

할머니의 투박한 포장도 좋아한다.

겨울이면 커피를 파는 수레를 세워 믹스커피를 마시는 생선가게 주인 부부의 모습도,

뻥이요 소리에 귀를 막는 유치원 아이의 모습도, 시장 골목에 진동하는 튀김 냄새와 도너츠의 설탕 냄새까지.

그 공간이 시장임을 보여주는 모든 모습과 소리와 냄새를 좋아한다.

마치 그곳에서는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팔지만, 오고 가는 검은 봉지에 담긴 게 단지 물건뿐이 아님을 알기 때문일까.


"많이 파세요" 혹은 "수고하세요" 건네는 말 한마디에 덤을 주고, "감사합니다" 한 마디에 단골이 되어가는 시장의 관계에서 바코드 투성이 물건이 주는 차가움을 잠시 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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