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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Mar 13. 2024

나에게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건물 관리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와 연락할 일이 생겼다.     


        늦은 밤, 갑자기 방 전등에 스파크가 튀더니 이내 연기가 보였다. 놀라서 불을 끄고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봤다. 하지만 웬걸. 신기루를 본 건가 싶을 만큼 흔적도 없이 연기가 사라져 버렸다. 전등 주변을 살펴봐도 겉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시 불을 켜니 전등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동시에 그동안 전등을 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은 그다음 날 저녁이었다. 갑자기 들리기 시작한 ‘삐~~~!!!’하는 초음파(?) 소리. 소리의 출처를 찾다가 머리 위에서 조금 더 크게 들린다는 것을 감지했다. 어젯밤 다시 돌아온 전등이 괜찮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이라서 당황했다. 일단 급하게 다시 불을 껐다. 소리가 사라지자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TV 불빛에 의지해서 이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했다.     


        방법 1. 지금 당장 관리인에게 연락해 조치를 취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곧바로 이 계획은 삭제했다. 밤 9시. 그에게 연락하기에는 많이 늦은 시간이었고, 그로서도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건물 관리인은 건물주를 대신해 임대인에게 불편 사항을 접수받는 정도로 역할이 한정돼 있었다. 접수 사항에 따라 적절한 수리 전문가를 연결해 주면 그의 임무는 끝났다. 나머지는 내가 원하는 시간을 선택해 일정을 잡고, 상황을 정리하는 식이었다.     


        물론 내가 전혀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집 비밀번호를 알려줘야 했다. 내 공간에서 낯선 사람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가 알 수 없다는 게 꺼림칙했다. 한 번도 연락한 적 없는 그에게 야심한 밤에 처음으로 연락한다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내 선택은 방법 2. 내일 연락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갑자기 불빛 없이 지내려니 정말 갑갑했다. 그렇다고 다시 불을 켜자니 ‘삐’하는 소리도 소리지만 화재가 날까 봐 두렵기도 하고... 이럴 때 내가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포털 지식인들!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했다. ‘전등’ ‘소리’ ‘스파크’ 나는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나보다 먼저 겪은 선배님(!)들의 글이 화면 가득 채워지자 반가웠다. 아주 특수한 경우는 아닌 모양이었다. 대충 올라온 글을 훑어보니 ‘안정기’를 교체해야 되는 것 같았다. 합선이나 화재의 문제는 없다고 했지만 다시 불을 켜는 것은 불안해서 그날은 다른 날보다 훨씬 더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전임 관리인에게 늘 했듯이 문자로 간단히 상황을 보냈다.      


 '원래는 안 그랬는데, 

 방 전등을 켜면 초음파 소리처럼

 계속 삐!!! 소리가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관리인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문자로 답했다.     


 '지금 집에 있나요?'

 '아니요'

 '비번 알려주시면 확인해 볼게요'     


        빨리 처리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너무나 쉽게 비번을 알려달라는 문자를 보니 머리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약 3년 동안 건물 관리를 해줬던 전임자는 문자를 보내면 바로 전화를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경비처리 방식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일처리가 끝나면 불편 없이 잘 마무리가 됐는지까지, 확인했었다.     


 ‘제가 있을 때 확인해 주시면 안 될까요?'

 ‘시간 가능하면요’

 ‘아니면 수명이 다 된 거 같거든요’

 ‘교체하시고 영수증 처리해 주시면 됩니다.’     


        이 문자를 받고 더 이상 문자로 대화하는 건 소용없을 것 같아서 전화를 걸었다. 나를 소개하자 그가 꺼낸 첫마디는 여자분이셨구나, 저는 남자분인 줄 알고... 뭐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남자 여자를 떠나서 정확한 정보도 없이 형식적으로 대답한 것 같아 속으로는 마땅찮게 여겼다. 어쨌든 목마른 사람은 나. 내가 문자로 미처 다 설명하지도 않았고, 그 역시 물어보지 않은 전등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스파크와 연기까지도.     


 ‘아, 그러면 전등만 갈아서 될 일이 아니라

 사람을 불러야 되겠는데요?

 안정기 문제 같아요.’     


        나는 이미 지난밤 예습했으므로 그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수리 기사와 스케줄을 잡고 연락을 다시 주겠다고 했다. 이후에도 전화는 두세 번 더 이어졌다. 전문가 스케줄을 묻고, 다시 내 스케줄을 묻고. 끝으로 확정된 날짜를 통보한 후 문자로 전문가 연락처를 보내왔다. 다행히 그날 밤 전등은 새것으로 교체됐다.     


        문득 전임자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전등사고(!)를 새 관리인에게 알리는 시점부터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이 있었다. 그 사람이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라는. 나는 새 관리인은 ‘별로’라고 결론 내렸다. 언제까지 이 집에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가 이 건물 관리인으로 온 것은 고작 2주. 그 사이에 임대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가 처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단 한 번의 일처리 방식을 두고서 그전보다 내가 조금 더 번거로워졌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분명 전임자처럼 전화를 할 것으로 마음대로 생각해서 문자를 자세하게 쓰지 않은 내 잘못도 있었다. 내가 생략해 버린 자간이나 행간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가 무능력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전등은 아무 문제 없이 교체되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관리인으로서 역할을 다한 것이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설령 내 방식이 정석(!)이라고 할지라도 일방적으로 내 방식에 맞춰주지 않는 그를 탓할 수는 없다. 이건 나만의 일이 아니고, 내가 지금껏 해오던 방식이 있었다면 그에게도 그만의 방식이 있을 테니까. 전임자와의 처음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와 나 사이에는 3년의 시간이 존재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길들여졌으리라. 그런데 그 시간 없이 새 사람에게 익숙함이나 편안함을 기대했고, 나는 단번에 그에게 실망했다. 상황 판단은 빠른 게 좋지만 사람에 대한 판단은 조금 더디게 간다고 늦지 않을 것이다.     


        전임자라면 당연히 왔을 사후처리에 대한 확인 전화나 문자가 그에게서는 없었다. 나는 그것이 그의 스타일임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우리 서로는 되도록 무소식이 희소식인 관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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