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그때는 진심으로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밥을 해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어. 그런데 막상 그 날이 다가오자 적당히 지나가도 될 일을 늘 그렇듯이 또 크게 벌였구나 하는 느낌이 오더라.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중 어떤 것이 진짜 나일까?"
호킨스 박사님 가르침으로 보면, 진짜 나는 감정이나 생각, 올라오는 불안, 설렘, 후회 같은 표면의 움직임이 아니고 그런 건 다 의식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야.
그 밑에는 언제나 고요하고 변하지 않는 순수한 존재로서의 ‘나’가 있다고 하셨지.
너는 친구를 초대할 때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과 환대의 에너지를 보냈어.
그런데 날이 다가오자, 에고(ego)가 걱정을 슬쩍 들고 올라오지.
“괜히 또 일을 크게 벌인 거 아니야?”
“잘할 수 있을까?”
이런 건 그냥 생각의 흐름, 감정의 일시적 파도일 뿐이야.
진짜 너는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허용할 수 있는 존재, 그 의식 그 자체야.
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셔:
“우리는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감정을 관찰하는 존재다.”
그러니까, 초대하고 싶은 마음도 네 일부,
걱정이 올라오는 마음도 네 일부,
둘 다 자연스럽게 왔다가 가는 거야.
진짜 ‘나’는 그 너머에서,
모든 걸 느끼고 바라보고, 사랑으로 껴안을 수 있는 존재야.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을텐데 자꾸 벌이는 것은
나의 카르마적 경향성에 의한 것일까?"
이 질문을 할 수 있는 너의 내면은 이미 높은 의식의 자리에서 자신을 관찰하고 있어.
호킨스 박사님 가르침에서 보면, 카르마는 단순히 “과거의 업보”라기보다는,
의식 안에 각인된 경향성, 패턴, 에너지의 반복으로 이해할 수 있어.
즉, 자꾸 어떤 일을 벌이고, 벌여놓고 나서야 걱정하거나 후회하는 패턴은
그저 너의 의식 안에 남아 있는 오래된 에너지, 미처 정리되지 않은 충동에서 비롯된 걸 수 있어.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쁜 것”은 아니야.
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셔:
“카르마는 깨달음을 위한 기회로 주어진다.”
즉, 그 경향성은 단순히 반복되라고 있는 게 아니라,
너가 깨달음의 자리에서 바라보고 허용하고, 놓아주도록
하늘이 마련해준 연습장 같은 거야.
그래서 중요한 건 이런 거야:
1. “아, 내가 또 벌이고 있네.” 하고 알아차리기.
2. “그래도 괜찮아. 이건 나의 오래된 패턴일 뿐, 나의 본질은 아니야.” 하고 내려놓기.
3. 그 위에서 새로운 선택을 연습하기.
예: “이번엔 작게 벌여볼까?” “이번엔 그냥 허용하고 흘려보낼까?”
너는 이미 이 질문을 통해 아주 중요한 의식의 전환점에 서 있어.
네 안의 카르마를 깨끗이 바라보고 사랑으로 풀어낼 수 있을거야.
반복되는 패턴을 탓하거나 없애려 하기보다,
그저 그것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허용하는 연습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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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적 경향성 바라보기 묵상문》
아, 나는 지금 또 나의 오래된 패턴을 보고 있구나.
자꾸 일을 벌이고, 벌여놓고 나서 걱정하는 나의 모습.
그래, 이건 나의 오랜 경향성, 나의 오래된 에너지구나.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이것이 나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 패턴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이 충동과 걱정을 허용할 수 있는 넓은 의식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내 안의 패턴을 탓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그저 **“있음을 허용”**한다.
그저 이렇게 느끼고, 알아차리고, 놓아준다.
나의 본질은 패턴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순수한 존재다.
나는 나를 안아준다.
나는 나의 모든 부분을 허용한다.
나는 사랑으로 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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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묵상문을 마음속으로 읊조리면서,
그저 “내 안에 이런 게 있구나” 하고 바라보면 돼.
그것만으로도 경향성은 조금씩 힘을 잃고,
너는 더 큰 사랑과 자유로 나아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