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배낭여행자의 경북 영주시 영주동 저녁 8시

Day6 ; 영주

by 현정

혼자 여행을 자주 떠나지만 게스트하우스를 가본 적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모르는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져서,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독립된 공간을 찾아 숙소를 예약을 해왔었다.


다음 행선지로 영주를 선택한 것은 부석사에 가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숙소가 문제였다. 딱히 마음에 드는 숙소가 없었다. 부석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헤볼까 싶어서 알아봤지만, 부석사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영주 말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 나를 사로잡은 숙소는 뜬금없게도 게스트하우스였다.


속초에서의 북스테이 이후 처음 오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이곳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일단 외관. 한옥 여관을 개조해 만든 게스트하우스의 모습이 왠지 드라마 세트장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위치도 마음에 들었다. 터미널에서 멀지도 않았고, 시내까지도 금방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매니저님이 부석사 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준다는 후기도 한 몫했다.




저녁 5시를 막 넘긴 시각,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묵었던 숙소들은 대부분 외진 지역이었어서 6시가 가까워오면 길거리가 텅텅 비곤했다. 여긴 달랐다. 골목골목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고 대부분의 가게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배가 고팠던 나는 가방만 내려놓고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위치한 베트남 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해결했다.


이때 아니면 이 저녁에 돌아다닐 일이 없겠구나 싶어서 무작정 시내를 향해 걸었다. 그래 봐야 10분 남짓. 올리브영에 가서 다 떨어진 스킨을 대신할 미스트 하나를 사고, 유명하다는 태극당 빵집에 가서 빵도 두 개 샀다. 영주에는 랜떡이라는 유명한 떡볶이 포장마차가 있다. 종이컵에 두꺼운 떡볶이 떡 세 개를 담아 천 원에 판다기에 맛만 볼까 싶은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아뿔싸 지갑을 두고 왔다.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삼성페이뿐. 랜떡은 내일을 기약했다. 커피를 한 잔 할까 했지만 딱히 끌리는 카페가 없었다. 오션뷰가 아니라서 그런가.


작은 시내를 한 바퀴 다 돌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나니 7시였다. 맥주 한 잔 하면서 글 좀 쓰다가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노트북을 챙겨 게스트하우스의 공용 공간으로 나왔다. 그런데 밖이 너무 시끄러웠다.




방음이 안 된다는 후기를 이미 많이 읽었던 지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는 했다. 그런데 옆 방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 정도의 소음이 아니었다. 2층까지 다 들릴 정도로 바깥은 축제 분위기였다. 여중생들의 깔깔 대는 소리, 술 취한 아저씨들의 고함 소리, 쿵쾅쿵쾅 무언가를 뚜드리는 소리까지. 각종 소음의 향연이었다.


순간 짜증이 나서 ‘지금 시간이 몇 신데’하며 시계를 봤다. 아직 8시도 안 된 시각이었다.


외진 동네를 여행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완전히 아침형 인간이 되어 있었다. 일출 보는 맛에 심취한 요 며칠 간의 평균 기상시각은 6시 반이었다. 쫄보라서 해가 지면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빛도 소음도 없는 저녁이라 그런 건지, 일찍 일어나서 그런 건지, 보통 10시가 조금 넘어가면 잠에 빠졌다. 이런 패턴으로 며칠을 지내다 보니 나에게 저녁 8시는 한밤 중과 같았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잊은 지 오래였다.




내가 만약 서울에 있었더라면, 저녁 8시는 세탁기도 돌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방음이 잘 되는 집에 살고 있는 지라 새벽 1시에 집에 들어가도 샤워를 하고 드라이기로 머리로 말리는 삶을 살고 있었다. 저녁 8시에 밖에서 사람들이 시끄럽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불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이 동네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은 나에겐 여행지이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었다. 마치 마포구 성산동, 우리 집 같은.


게스트하우스 공용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매니저가 다가와 스트링 치즈를 건넸다. 맥주 안주하시라면서. 조금 시끄러워도 이해해 달라면서. 할로윈 파티를 준비하느라 그렇다면서.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내일은 할로윈이었다. 서울은 난리가 나겠지. 할로윈에 영주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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