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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산 Dec 05. 2021

아버지, 잊혀지는 이름

<아버지>

요이치는 아버지의 부음을 듣습니다. 15년 동안 아버지를 뵙지 않았죠. 요이치는 아버지를 미워했는데 그 미움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가 이혼을 하고 어머니가 집을 나간 날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날 요이치는 엄마가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른 걸음으로도 30분이 걸리는 외삼촌 집까지 노을 지는 거리를 뛰어가,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참으며 외삼촌 집에 도착했던 그때를 요이치는 잊을 수 없습니다.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뼛속까지 저며드는 외로움과 황망함에 숨이 막혔습니다. 

 

요이치는 아버지의 잘못이라고 믿었어요. 아버지는 일만 아는 사람이었고 자신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무심한 남자였습니다. 요이치는 그런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요이치는 숨겨진 이야기를 듣습니다. 모든 일은 아버지의 이발소가 돗토리 대화재로 하룻밤새 다 타버리면서 시작되었어요. 자존심이 센 아버지는 처가에서 돈을 빌려 가게를 다시 연 후에 그 돈을 갚기 위해 죽어라고 일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죠. 결국 어머니는 요이치네 초등학교 음악 선생님과 가까워졌고, 전근하는 선생님을 따라 떠나버렸던 겁니다.   


요이치는 아버지의 잊혀진 기억들을 하나씩 듣습니다. 아버지는 요이치가 중학생 때 우연히 찍은 자신의 사진을 죽는 날까지 품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죠. 


어릴 때 요이치는 외삼촌을 존경했습니다. 돗토리 대화재 때 어디론가 달려간 자신의 개를 찾아달라고 울부짖었는데, 외삼촌이 개를 안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를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불붙은 건물의 연기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아버지였다는 걸 요이치는 장례식장에서 알게 됩니다. 아버지는 그 개 때문에 이발장비들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아버지>의 한 장면입니다. 아버지는 아무도 읽지 않는 두꺼운 책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잊혀진 기억들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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