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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수 Feb 01. 2021

KDI에서 원고 청탁을 받았다. 허파가 웅장해졌다.

[일상잡설]

지난 달 <KDI 경제정보센터>라는 곳에서 원고 청탁 전화를 받았다. 거긴 어디며 글은 어디에 쓰이냐 물으니, 그곳에서 발행하는 <나라경제>라는 잡지에 기획 기사로 나간다고 했다. 무식한 나는 '무명의 단체가 나라를 들먹이며 발행하는 매체에 내 이름을 보탤 수 없다'..는 용감한 말을 속으로만 웅얼대며 주저하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의 연구원은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입니다'라고 먼저 말해 주었다. 5G 시대의 프로토콜 기술은 굳이 소리내지 않은 나의 무식함도 전해준다. 모바일 커머스 라이브 커머스가 대수랴.

기획재정부 및 16개 경제부처와 공동 발행. 경제정책담당자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매거진


알고보니 이리 대단한 곳인데 나더러 업계니 시장이니 전망을 해달란다. 괜스레 바람이 들어 허파가 웅장해졌다. 바쁘신데 괜찮겠냐길래 네X4 했다. 수락하고 나니 찜찜했다. 이건 개인 블로그나 페이스북 담벼락 따위처럼 아무말 대잔치로 글 싸지를 지면이 아니다. 내 허파가 미쳤..하지만 닥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나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자랑해야 되는데 올릴 게 없다. 괴로웠다. 매국이란 이런걸까. SNS 자랑 똥글을 위해 나라를 등쳐먹다니.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아무도 나의 나르시시즘을 막을 수 없다. 나는 내가 자랑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자랑하지 않는다. 내가 키만 지금보다 18센치 더 크고 대가리 직경만 지금보다 18% 더 작았어도 이렇게 나라 팔면서까지 자아도취를 탐하진 않으련만. 부모가 원망스럽다.    

매국엔 조상탓이 제맛이다.

그렇게 아래 글이 나왔다. 이렇게 득달같이 자랑하면 낯이 뚫어질만큼 간지럽지만 견뎌내야 한다. 낯간지러워 얼굴에 구멍난 사람 없다. 끝내 이기리라.

    



이커머스 시장은 기술이 아닌 고객이 가른다

나라경제 | KDI 경제정보센터


2년 전 업계 지인들과 사소한 내기를 벌였다. 오프라인 유통 공룡들과 온라인 태생 이커머스 업체들 중 누가 승기를 잡을 것이냐에 대해서였다. 넷 중 나 혼자만 전자에 표를 던졌다. 기존 유통사들은 가진 덩치에 비해 그간 몸은 사릴 만큼 사렸고, 이커머스도 경험할 만큼 했다. 이젠 실자산 가치와 흑자 재무의 체력이, 투자와 적자로 버티는 쪽보다 우세하리라는 평범한 시선이었다. 틀린 사람이 밥을 사기로 했다. 그 후 2년이 지나 2021년이 밝았다. 코로나19가 풀리면 나는 밥을 사야 할 것 같다.


돌아보면 국내 이커머스가 시작된 이래 패권의 변화는 매번 신흥 강자가 일으켰다. 지금도 쿠팡, 마켓컬리, 무신사로 대변되는 루키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전통 유통사와 달리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기업들은 어떤 차별점으로 기업 가치를 키워나갈까. 각자 해석이 다르겠으나 나는 이를 두 가지 측면에서 찾는다. ‘경영과 투자의 결정이 무엇에 기반하는가’와 ‘이해관계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가’다.


전통 유통사의 경영적 판단과 자원 투자는 자산기반의 사고로 접근한다. 튼실히 자리 잡은 기존 이해관계의 조율이 중요하다. 부동산, 매장, 점주, 과거 프로세스, 기존 비즈니스 모델 등 그동안 기반이 돼준 자산 사이사이에는 이해관계들이 촘촘히 얽혀 있다. 당면한 시장 변화에 맞게 이를 조율하는 것이 큰 숙제다. 이해관계의 방향이 뒤로 향한다. 지킬 게 많아 판단이 흐리고 몸이 굼뜬다.


반면 스타트업 이커머스는 고객기반의 사고로 접근한다. 기업에 쌓아올릴 이해관계를 새로 설정한다. 말 그대로 ‘스타트업’이기에 딛고 설 자산기반도 없다. 이들에게 기업 가치와 자산은 앞으로 창출해야 할 고객이 전부다. 고객중심의 사고 외엔 할 것도 없고 할 수도 없는 구조다. 고객중심의 사고와 의사결정은 조직 강령이 아니라 생존의 절박함이다. 레거시(legacy)가 없으니 변화와 혁신에 온전히 몸을 실어도 이해관계 충돌과 조율의 숙제가 단촐하다. 이해관계는 앞으로 생성해야 할 일이다. 이해관계의 방향이 앞으로 향해 있다. 더 빠르고 과감하게 판을 흔들 수 있다.

지금까지 판세는 이러했으나 앞으로는 또 모를 일이다. 유통의 거인들이 긴 잠을 깨고 어찌 나올지, 과감하다 못해 과한 투자로 끌고 온 스타트업 이커머스들이 삐걱거릴지 말이다. 다만 어느 쪽이 흥하든 향후 시장은 크게 두 갈래로 숙성하리라 전망한다. Life-Managing과 Life-Styling 시장이다. 고객 입장에서 나뉘는 가르마다. 물론 또다시 이 둘의 정반합으로 시장은 진화 과정을 갖겠지만, 각 갈래의 숙성은 또 그것대로 거치게 될 것이다.  


Life-Managing 시장은 사람의 결핍(needs)에 기반한 소비를 해결한다.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소비다. 식품을 포함한 생필품 위주의 시장이다. 경쟁력의 핵심은 구색·가격·물류다. 인프라와 스케일 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얼마나 빠르고 완성도 있게 갖추느냐가 관건이다.


Life-Styling 시장은 사람의 욕구(wants)에 기반한 소비를 해결한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필요한 소비다. 패션·뷰티·리빙 위주의 시장이다. 경쟁력의 핵심은 취향을 만족시키는 콘텐츠와 큐레이션이다. 가격도 중요하지만 구색이 우선이며, 구색은 양뿐 아니라 질에서도 얼마나 완성도 있게 갖추느냐가 관건이다.


이커머스도 크게 보면 유통이지만 어쨌든 기술 산업이다. IT 개발 역량이 사업의 기본 역량이다. 그러나 세상을 압도할 유일무이한 기술력이 이커머스 시장의 승자를 낙점하진 않을 것이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기술은 테크 회사의 수익과 생존이다. 보다 많은 기업에 쓰여야 그들의 기업 가치가 커진다. 아마존조차 이커머스 회사지만 AWS(Amazon Web Services)를 다른 이커머스 회사에 제공한다. 새롭고 우월한 기술이 나타나면 시차가 있더라도 시장에 차츰 보급될 것이다. 시차로 패권이 갈린다면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경영의 판단과 속도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분투하려면 Life-Managing과 Life-Styling 중 어디에서 승부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커머스 플랫폼이라면 정체성과 비즈니스 모델을 빠르고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향이 정해진 시대엔 방향보다 속도가 중요하다.




나도 글 뭐 이런거 말고 막 얼굴 피지컬 그런거 자랑질 올리고 싶다. 아니면 돈이라도.

씁쓸한 마음, 관종이라면 모두 감동할 명작 한편 감상하고 마무리 하자. 안 보신 분들 꼭 보시길. 사운드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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