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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Mar 29. 2022

코로나 확진자의 제왕절개, 그리고 그 후...

제왕절개 이후엔 보호자가 필수지만, 격리된 나에겐 보호자가 있을 수 없지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의 차이점에 대해 가장 많이 나온 말은 거일듯: "자연분만이 일시불이라면, 제왕절개는 후불제 할부야." 가장 자주 쓰이는 표현이라는  그만큼 만인이 공감하는 문장이라는 의미일 텐데, 과연 이것만큼 적당한 비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진통이 와서 애 낳으러 병원 갔다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세상과 격리된 상태로 급히 제왕절개를 받고 코호트 병동으로 보내졌던 나... 이제는 다 지난 일이고 아픈 곳도 없으니 무용담처럼 늘어놓을 수 있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 첩첩산중이었다. 입원 기간 내내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길 반복했다.


정신 없이 배를 찢기고 애를 빼앗긴(?) 하루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새벽녘 혈압과 체온을 재기 위한 간호사 선생님의 부름에 눈을 떴다. 체온과 혈압은 정상 상태로 돌아왔으며 마취로 절단난 것 같았던 하반신도 감각을 되찾았다. 정말 다행이라면 기침 등의 코로나 증상이 일절 없었다는 것.


증상이 없으면 좋은 것이긴 하지만 왜 유독 그게 정말 다행이냐면 알다시피 제왕절개는 뱃가죽을 찢고 자궁을 찢어서 그 안에 있던 아기를 꺼내는 수술로 생살과 근막을 다 찢어내는 건데, 우리 신체 구조상 기침을 하면 아랫배 자궁 인근의 근육이 저절로 움직이게 되고 그럼 그 고통은... 여기까지


첫 단추가 잘못됐다고 비관하기만 할 일은 아니었다. 대형 병원을 다닌 덕분에 코로나 확진 상황에서 금방 병상을 찾아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었고, 무증상인 덕분에 제왕절개 직후에도 기침을 하는 일이 없었으며, 아기도 곧바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신생아집중치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침 엄마와 동생이 곧바로 서울까지, 병원까지 와줄 수 있어서 남편 차에 실려 있던 내 출산가방도 안전히 내 옆에 당도했다. 내가 독실한 신자였다면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을 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안도를 눌러 버릴 만큼 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너무 아팠다. 어떻게 아프냐면 조금만 움직이면 아랫배의 장기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아팠다. 살짝 웃기만 해도 아랫배가 터지는 느낌이 났다. 웃을 수도 없으니, 몸을 일으키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감각을 찾은 하반신으로 할 수 있는 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밖에 없었다. 소변줄을 꽂은 상태에다가 아직 가스조차 형성되지 않은 터라 화장실 문제는 없었으나, 아래로는 피가 줄... 줄 흘렀다. 수액, 진통제와 함께 자궁을 수축시켜주는 약을 맞았다고 했는데 그 때문에 오로 배출이 보다 활성화된 모양이었다.


세 겹이나 덮은 이불 아래로는 생리피와 땀이 섞인 채 오래 고인 아주 끔찍한 냄새가 났다. 전날 간호사 선생님께서 깔아주신 패드를 교체한 뒤 개운하게 씻고 침대 시트를 갈고 뽀송하게 눕고 싶었지만,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전날 음압 카트에 갇힌 채 이 곳으로 실려 오는 동안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이대로 버려진다면 나는 혼자서는 하반신도 움직이지 못하고 카트의 문을 열 수도 없으니 문자 그대로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겠지. 그게 바로 작금의 상황이었다.


이래서 제왕절개 후에는 보호자가 필수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 곳은 코로나 확진자들이 모여 있는 코호트 병동. 보호자가 당연히 들어올 수 없었고, 내 보호자도 코로나 확진으로 집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혼자 힘으로 내 한 몸도 일으킬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자 그간의 서러움이 몰려왔다. 그러고보니 36시간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애 낳기 전날 저녁, 다음 날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간단하게 먹은 샌드위치가 마지막 만찬이 됐다. 애 낳던 날은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못했고, 새벽에야 도착한 내 짐에서 충전기를 찾아 꽂아 주신 간호사 선생님께서 주신 물 한 잔이 내가 지난 36시간동안 접한 음식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아프니까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입원의 몇 안 되는 좋은 점은 내가 굳이 챙기지 않아도 누군가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갖다준다는 것이다. 산모를 위한 병원식은 아침이 되자 내 자리로 배달됐다.


문제가 또 있었다.


밥을 먹으려면 몸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


장기가 쏟아지는 듯한 육체적인 아픔도 아픔이었지만, 몸을 일으켰다가 수술 부위가 터지면 어떡하나 싶은 정신적인 압박감도 상당했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버무려진 상태였지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몸을 일으켰다...가 너무 아파서 다시 베개 위로 쓰러졌다. 수 차례의 실패 끝에 한쪽 팔에 체중을 실어 겨우겨우 성공했다. 평소 늘어지게 앉던 자세에 아랫배 근육이 이토록 많이 필요했단 말인가. 어쨌든 의지의 한국인, 척추와 골반의 각도가 이상하게 틀어진 자세였지만 엉거주춤하게 앉는 데에는 성공했다.


성공 기념... 애처롭게 무게를 버티고 있는 나의 팔...

도무지 입맛은 없었으나, 뭘 먹어야 약도 먹을 수 있고 가스도 나오고 그래야 회복이 된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에 어떻게든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한 채 다른 한 손으로 병원식으로 나온 미음을 겨우겨우 떠 먹었다. 그것도 서너 입 정도 먹으니 도저히 팔의 힘이 빠져서 버티지 못하고 엎어졌지만, 나름 수술 12시간 만에 혼자만의 힘으로 몸을 일으켰다는 점은 정말 스스로지만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산부인과 병동이 아니었던 터라 산부인과 병동만큼의 상세한 케어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제왕절개 환자의 케어는 원래 보호자가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최대한 패드도 갈아 주시고 옷도 갈아입혀 주신 간호사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코호트 병동이라 모두가 마스크를 몇 겹이나 쓰고 있었던 것도 다행이고 말이다. 온 몸에서 피와 땀 냄새가 진동을 했으니까.


미음을 몇 숟갈 떠먹은 후 약을 먹으려 했는데, 또 문제가 있었다. 물이 담긴 박스는 바닥에 있고 나는 침대 위에 있었던 것이다. 겨우겨우 한 손으로나마 지탱해 몸을 일으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바닥에 있는 물을 꺼내 먹는 건 불가능이었다. 하필이면 간호사 선생님도 계속 안 계시고, 호출 벨 역시 지금 내 상태로는 누를 수 없는 위치에 있어서 그냥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가 있었으면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 줬을 텐데... 하긴 그랬으면 물을 애초에 보호자가 꺼내 줬겠지. 또 다시 서러움이 몰려왔다.


결국 나는 약을 깜빡한 채 잠이 들었는데, 한시간여 지나서 어제 수술받았던 때처럼 몸이 덜덜 떨려오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이불을 세 겹이나 덮고 있는데 오한이 들었고 몸이 주체가 안 됐다. 팔에 꽂혀 있던 주삿바늘은 빠져 있었다. 수액과 진통제, 자궁 수축제가 빠진 데다가 먹어야 할 약도 먹지 못했다보니 갑자기 열이 확 오른 모양이었다. 다행히 그 때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왔고, 나는 겨우 물과 함께 약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고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열은 가뿐하게 내려갔다.


오후가 되자 또 다른 복병이 나를 찾아왔다. 소변줄을 제거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 소변줄을 제거하면 앞으로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직접 움직여야 했다. 코호트 병동이라 방문 회진 대신 전화를 주신 주치의 선생님께 그래도 되냐고 묻자 냉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많이 움직이셔야 해요." 아아...


아까도 언급했지만 몸을 일으키면 장기가 쏟아지는 듯한 육체적인 아픔도 아픔이었지만 수술 부위가 터지면 어떡하나 싶은 정신적인 압박감이 주는 고통도 컸다. 그 두려움 때문에 몸을 더 못 움직인 것도 사실이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돌아올 고통의 수준을 알고 있으면 무서워서라도 감히 그 행동을 못 하는 것처럼, 아까 실수로 웃었을 때 느꼈던 고통의 수준에 미루어 짐작하건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수준의 고통으로 고꾸라지고 말 것이라고 예측한 상황에서는 웬만한 강심장 아니고서야 벌떡 일어설 용기를 내기 쉽지 않다.


이렇게 고통으로 가득한 거친 세상이었지만, 나는 오로지 혼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강해져야 할 것이었다. 이게 엄마의 무게겠거니, 강심장은 못 되는 나지만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혼자 힘으로 남은 입원기간 2박 3일을 이겨내야 하는 거라면 지금 잠시 빨리 고통받고 어서 회복하는 게 나았다. 그리고 설마, 머한민국 대표 의료기관 세브란스의 능력 있는 의료진들이 째고 꿰매준 곳인데 찢어지겠어? 그런 다짐을 하며 겨우겨우 첫발을 내딛었는데 진짜 개아팠고 단말마의 비명도 안 나올 정도로 아파서 정신이 아득해졌으며 이러다가 정말 장기가 다 터져서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밀려들어 곧바로 침대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갓 태어난 망아지도 나보다는 용감하게 걸었을 것이다. 인간이란 이토록 나약하다.


그 나약함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실제로 극복해 온 게 인류의 역사다. 이렇게 비장해도 될 정도로 정말 고통스럽고 아팠지만 결국 나는 첫발을 내딛는 데 성공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혼자 힘으로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데도 성공했다.


아랫배와 허벅지가 후들거릴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엄청난 쾌거였다.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고 나자 정신적인 압박감은 다소 약해졌다. 이미 한 번 해냈다는 생각에 그랬을 것이다. 여전히 너무나 아픈 건 변함없었지만. 간호사 선생님은 오로가 함께 쏟아져 피범벅이 된 내 소변을 체크하신 후, 굳이 섭취량과 배설량을 기록할 필요는 없겠다고 진단하셨다. 전날 남자 간호사 선생님이 계셨음에도 늘어진 채로 환복당하는 순간에는 너무나 피곤하고 고통스럽고 멘탈이 갈린 상태라 일말의 수치심조차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젠 좀 정신이 붙어서인지 내 몸에서 나온 내용물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이 굉장히 부끄러웠다. 하지만 뭐 어쩔 도리는 없었다. 한 번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자 방귀도 술술 나왔고 어느새 배고픔도 느껴졌다. 걷는 것은 여전히 끔찍하게 아팠지만 더 이상 두렵진 않았다.


그 날 저녁, 아기 얼굴을 처음으로 봤다.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준 것이다. 아기 얼굴을 보니, 아까 몇 번이나 몸을 일으켰다가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아파서 주저앉았을 때도 안 나오던 눈물이 차올랐다. 아기는 쪼글쪼글했다. 여기저기 각질이 인 데다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고 팔다리는 앙상했다. 게다가 왠지 표정도 슬퍼 보였다. 태어난 지 벌써 24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다른 애기들은 그래도 엄마를 한 번은 만나봤을 시간인데, 우리 아가는 태어나자마자 그 어떤 가족도 만나보지 못하고 아픈 아이들이 가득한 병실에 갇혔으니 정말로 슬플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신랑도 애기가 힘들어 보인다며 둘이 청승을 떨어대는데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렸다. ESTJ X ESTP 부부가 함께한 이래 가장 F같은 순간이었다.


몇 번이나 아기 사진을 보면서, 우리에게 가장 큰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이렇게 힘든 일이 없을 것이고, 태어나자마자 이런 일을 겪은 우리 아들은 앞으로 그 어떤 고난의 행군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감한 아이로 클 것이며, 나 역시 강인한 엄마가 될 거라고 다짐하면서.


출산 이틀째 된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퇴원까지 남은 하루 반나절 정도의 시간 동안도 여전히 아팠지만 어쨌든 몸이 회복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역시 제왕절개 통증 경감의 왕도는 시간뿐인 모양이었다. 보호자 없이 이만큼 버텨냈다는 게 대견했다.


술자리에서 웬만한 사람들이 잘 못해봤을 경험을 무용담처럼 썰 풀어댈 때면 항상 2008년에 금강산 아닌 북한 여행했던 거 얘기했는데, 이젠 거기에 하나 더 추가됐다. 진통 와서 애 낳으러 갔다가 코로나 확진 떠서 제왕절개하고 배 찢어진 채로 보호자 없이 3박 4일 버틴 썰 푼다. 보호자 없이 배 찢어진 채로도 버텼는데, 앞으로 삶의 웬만한 난관은 쉽게 이겨낼 수 있을 듯싶다.


이렇게 보호자 없이 버텨낸 것에 자부심이 들던 퇴원 전날 오전 무렵, 또 다른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가슴과 겨드랑이가 딱딱하고 묵직해지는 게 느껴졌다. 젖뭉침이 온 것이다. 이 때부터는 정말 혼자서는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젠 여전히 아프긴 해도 혼자 병상에서 화장실까지의 거리는 오갈 수 있고 바닥에 있는 물도 주울 수 있었지만, 젖뭉침을 생각하면 3박 4일 입원인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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