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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Mar 12. 2019

코골이와 불면의 부부

결혼 후에도, 연애 때와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딱 한 가지 빼고.

이제는 결혼을 했으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미 연애할 때부터 같이 살고 있어서, 결혼을 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딱 한 가지 빼고. 코골이.

난 그가 이렇게까지 코를 고는 줄 몰랐다. 진짜, 연애할 땐 이 정도가 아니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를 속이려고 무의식 속에서도 코골이를 억제한 걸까? 아니면 5년의 세월이 그의 호흡기에 쌓이기라도 한 걸까?


나는 원래 잠을 잘 못 자는 예민보스 중에서도 예민보스인데, 둘이 같이 자다 보면 남편이 코고는 소리에 깨서 어쩔 수 없이 나와서 작은 방에서 자야하는 경우가 거의 에블데이 에블나잇 매일매일 뚜레쥬르다. 그래도 놀다보면 스스륵 잠들어버려서 같이 잠들긴 같이 잠드는데 희한하게 꼭 새벽 2시 정도만 되면 콜록콜록, 기침 시그널과 함께 신랑의 코골이 데시벨은 쏘 하이해진다. 그럼 난 잠에서 깨고 신랑은 일부러 나를 괴롭히려고 저러나 싶을 정도로 큰 소리로 크르르르르를르 푸휘히이이하고 코를 곤다. 작은 방으로 들어가 누워도 그의 우렁찬 그로울은 온 집을 울리기 때문에 다시 잠들기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해가 뜨고...


그렇게 불면의 밤을 보내고 다음 날 하루종일 머리 아픈 채로 기사 쓰다 오타 나고 옆자리 교열 요정님께 지적을 받고 김주영 쓰앵님의 타XX놀 집어삼키고 그런 날들의 반복...

광고아님 ㅠㄹㅇ 타XX놀 씹어삼켜야 되는 수준의 피곤함

그런 주제에 그는 정말 엄살 덩어리다. 


오늘은 남편이 새벽에 깼다. 새벽 6시쯤 깨서는 내 귀에 대고 ”여보. 너무 더워서 내가 보일러를 껐어”하면서 tmi 보고질을 했다. 난 자고 있는데!!! 그래서 알았다 하고 다시 꿀잠을 자려는데 자꾸 옆에서 혼자 꿍시렁대더니 ”나 작은 방 가서 자도 돼?”하고 굳이 또 허락을 요구해서 알았다고 하고 다시 잤다. 어제는 술을 좀 많이 마시고 자서인지 중간에 코골이 소리에도 깨지 않았는데... 근데 굳이 저렇게 날 깨웠다. 다행히 그 이후론 깨지 않고 잘 잤는데... 그랬는데...


뜬금없이 평소에 회사 가려고 일어나는 시간보다 훨씬 이른 아침에 남편이 날 깨웠다. 내 옆에서 조용히는 아니고 일부러 시끄럽게 한건지 하여간 FC앙투라지를 보고 있던 그는 내가 눈을 뜨자 ”여보 내가 새벽에 너무 더워서 보일러 껐는데 기억나? 여보가 더워하더라구. 내가 또 여보를 위해 바로 껐거든”하면서 있는대로 생색을 내댔다.         

그러고는 세상 진지하게 나에게 ”근데 여보 나 아무래도 불면증 있는 것 같아. 왜 새벽에 깼지? 진짜 이상하네..”라고 해맑게 투덜댔다. 

뭐...?


불면증...?


불면증이 뭔지 잘 모르나...?


″혹시 불면증 뜻을 잘 몰라?”


″알지. 아니 근데 나 자꾸 눈이 너무 일찍 떠져서... 아무래도 요즘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 것 같아. 큰일이네...”

그건 그저 님이 어제 밤 9시 30분에 잠들었기 때문입니다만...?


그렇게 말해주자 남편은 머쓱한 듯 글자 그대로 ‘ㅋㅋㅋ’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아 여보 난 진짜 웃기다니까 정말” 하면서 상황을 무마하려 들었다. 지금 남편 카톡 상태 메시지는 “Insomnia...”다. 엄살인지 개그인지 이제는 그 경계가 너무나 불분명 하다. 그는 이걸 쓰고 있는 와중에도 ”아니 왜 그런 걸 주제로 삼아서 쓴다는 거야 다른 주제를 좀 찾아봐 그건 재미도 없잖아”라며 열심히 나에게 잔소리를 퍼붓더니 곧 코를 골며 낮잠에 빠져들었다.


‘Insomnia...’는 개뿔...


* 이 글은 허프포스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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