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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린 Feb 13. 2017

나에게 마케팅이란

돌고 돌아 답을 얻었다.


고 성장 시대의 자본주의는 단순했다. 기업들은 그저 물건을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모두 소비했다. 기업은 고민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경쟁이 심화되고, 가파르던 성장 속도가 둔화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만들어 내기만 해도 팔리던 제품들이 창고를 지키게 된 것이다.


저 성장을 내면화한 자본주의는 교묘해져 갔다. 각종 광고와 마케팅 기법을 통해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헛된 욕망을 부추겨 물건을 팔았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필요하지도 않은 제품들을 소유하기 위해 기계처럼 밤낮 없이 일에 몰두했다. 그와 동시에 지구의 자원은 빠르게 줄어들고 환경은 속수무책으로 파괴되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리는가? 위 이야기에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혹자는 동의하지 않을 수 도 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본주의는 어느 정도 탐욕스럽고 파괴적이다. 나는  한 동안 이러한 자본주의의 어두운 일면에 대해 고민했고, 또 깊이 괴로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경영학, 그 중에서도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마케팅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물건을 더 많이 팔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소비자의 필요를 발견하거나 자극하는 여러 방법들을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언제나 돈이다. 대의와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마케팅에 적성에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관련 활동들을 꾸준히 해오면서 가까운 미래에 소비재 마케팅이나 광고를 만드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상태였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탐욕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선택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 일이 나에게 적합한 일일 수는 있으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거나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었다.


그런 시기에 큰 깨달음을 주었던 말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이 쓴 <뉴스의 시대>의 소비자 뉴스 챕터에 나온 말이다.


우리는 그저 물건을 소유하고 싶은게 아니다. 그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변화하길 바라는 것이다. 일단 우리가 충분한 관심과 관대함을 가지고 소비 행위를 살펴볼 경우, 우리가 결코 못말릴 정도로 물질주의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우리 시대를 다른 시대와 뚜렷이 구분되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물질적 상품의 획득을 통해 각종 복잡한 심리적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우리의 야망이다.


사실 이 부분은 알랭 드 보통이 소비자 뉴스가 사람들의 심리적 욕망은 제쳐두고 제품의 실용적인 부분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꼬집기 위해 서술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말은 의도와 다르게 나에게 자본주의의 새로운 일면을 일깨웠다.


사람들은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변하고자 한다. 사물들은 우리가 이르고자 하는 이상향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공한다. 그것은 자본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적인 이미지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제품들을 소유함으로써 일정 부분 자아의 욕구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가령 나에게 파울라너 밀맥주는 완벽한 휴식의 상징이다. 지친 하루, 자기 전 파울라너를 마시며 티비를 보는 것은 나에게 즉각적인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파울라너의 싱그러운 바닐라향과 적당한 탄산감, 매력적인 패키지 디자인은 날 고양시킨다. 약간의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나는 파울라너가 주는 감각적인 보상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마케터와 광고인들은 그 순간을 정확히 캐치하는 일을 한다. 예민한 감각으로 사람들이 언제 제품을 사용해야 행복감을 누릴 수 있는지 포착하는 것이다. 마케터는 전략을 짜고, 광고인은 크리에이티브를 더해 재밌게 그 순간을 이야기한다.


나는 돌아 돌아 답을 찾은 걸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간단한 이야기다. 우리는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써 욕망을 해소한다. 그로 인해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더욱이 자본주의를 둘러싼 환경은 이미 변화하고 있다. 한계비용이 제로가 되고,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공유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수요가 공급을 결정하는 경제는 무엇을 뜻하는가. 자본주의의 파괴성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 나는 앞으로 우리의 소비가 덜 파괴적이고, 더 욕망과 필요에 최적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바뀐 환경 속에서도 소비를 통해 욕구를 실현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지점이 광고와 마케팅이 필요한 지점이다. 광고와 마케팅은 더욱 사람들 삶 속에 깊이 파고들어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적절하게, 또 재미있게 소구할 것이다.


문제는 마케팅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문제는 '무엇'을 마케팅하는지이다.. 나는 내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의 삶이 나의 제품과 서비스로 더 행복해졌음 좋겠다. 그게 전부이다.

 



이 글은 제가 취업 준비를 막 앞둔 2017년 상반기에 작성한 글입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약 천 배 정도 자기검열이 심했던 때라 제 생각을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이 글이 저의 약점이 되는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더해 글을 써 올리고 며칠 만에 글을 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주 라이팅 클럽의 주제가 <소비를 영업하다: 소비 전도글 쓰기>이더군요. 주제를 곰곰이 되새겨보니 알랭드 보통이 소비의 즐거움, 물건의 효용에 대해 찬양한 구절이 생각났어요. 그리고 그 부분을 인용한 이 글이 떠올라 반가운 마음에 약간의 글을 덧붙여 공개 게시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4년제 경영학과를 나왔습니다. 취업 준비 당시 마케터가 되는 것이 목표였어요. 학부 시절 마케팅 및 기획 관련 심화 전공을 들었고, 광고 마케팅 공모전에 도전해 여러 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4년 동안 공부한 경영학, 그 중에서도 마케팅은 참 재밌는 분야였어요. 하지만 재미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기묘한 의문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왜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만들어서 억지로 팔지?' '규모의 경제로 재화의 가격이 싸지는게 좋은건 알겠어. 그런데 진짜 그 규모 만큼의 재화가 필요한게 맞아?' 와 같은 의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드니 마케팅을 업으로 삼는 것에 확신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괜찮은 일인지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어 쓴 글 이것이었습니다. 나름의 해답을 찾기 위해 열심히 책을 찾아 읽었어요. 그 중에서도 알랭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와 제레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사회>라는 책을 통해 의문을 잠재울만 한 저자들의 아이디어를 발견했고 이것들로 나름의 해답지를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간절한 마음에 지원했던 마케팅 직무 원서 10개는 초고속 광탈했고, 일할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it 회사의 서비스 기획 직무에 합격하게 되어 5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야 말로 한계비용 제로의 대표 재화인 'it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어요. 또, 제가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더라고요.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입니다.


하지만 마케터가 되어 쥐어 짜내듯 물건을 파는 일을 했더라도 크게 상심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 물건은 애초에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성공한 비즈니스들은 소비자의 욕구를 억지로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도 몰랐던 소비자의 불편과 욕구를 발견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재화는 재고 걱정할 필요 없이 잘만 팔리고요. 어느덧 학부 재학 기간보다 회사 근무 기간이 길어진 5년차 직장인이 되다 보니 시장 만능 주의자 같은 사고를 가지게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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