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덜어내기

by 지영민

숨이 막혔다. 날이 덥기도 했고 쓰지도 않을 짐이 점령한 집구석을 볼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내 몸에 딱 달라붙어 악착같이 제 위치를 지키는 불필요한 지방 덩어리들처럼, 소중히 사 모은 쓰레기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부아가 치밀었다.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필요 이상의 영양분을 몸에 채워 넣으면 살이 붙는다. 돈과 시간을 쓰고 음식을 장만하고 정성 들여 찌운 살. 그걸 빼려고 땀 흘려 운동을 하고 체중 감소에 좋다는 것들을 챙겨 먹는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이 쓸 것들, 언젠가는 다 필요할 것들이기에 사서 쟁인다.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탓일까, 여기저기 채워 넣고 뿌듯해한다. '세일'은 이번만 있는 게 아닌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일'을 맞은 것처럼 필요 이상 넉넉한 양을 구입한다. 그 결과 숨 막히는 날을 맞았다.


시댁, 친정, 동생네서 하룻밤씩 묵고 일부러 일찍 집에 돌아왔다. 휴가를 꽉 채워 여행만 다니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행복하지 않기에. 휴가 막바지는 집에서 뒹굴거려야지, 남편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집 정리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하고 50리터 종량제 봉투 2개를 사 왔다.


집 정리의 시작은 아이들의 '장난감 베란다'. 화가로 키워내고 싶었던 걸까, 여기저기 점토나 미술도구가 방치되어 있고, 서랍에 파스텔이 쏟아져 온통 분칠이 되어 있었다. 어디서 선물로 받고 직접 구입하기도 했던 레고는 서랍 예닐곱 개를 꽉 채웠다.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사 모은 너프건과 스펀지 총알은 큰 선반 하나 가득이다. 딱지, 야구 방망이, 나무칼, 변신 자동차, 팽이와 팽이판, 보드게임, 플라스틱 피겨, 솜인형까지 만물상이다. 남편은 한참 부족하다고 했지만, 아이들과 안 쓰는 것들을 추려내고 나니 개운하다.



아이들과 짐을 치우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이 많구나, 평소에 정리를 잘해야겠다, 이런 깨달음도 있었다. 하지만, 장난감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 시절 아이들은 모습은 자신들보다 내가 더 잘 안다.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장난감을 고르고, 골몰한 표정에 고사리 손으로 레고를 조립하고, 팽이나 변신 자동차로 대결할 때에는 잔뜩 흥분해서 만화주인공의 외침과 몸짓을 따라 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사 들였을까. 군인 엄마로 살면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채워주거나, 원하지도 않았는데 앞서 갖추어 놓는 것이 엄마의 본분이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어린 시절 경험한 결핍을 채우고 싶은 욕구를 이런 식으로 풀었던 것이었는지도.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남편과 나의 젊은 날이 담긴 물건들이었다.


그 시절 치열했던 생활이 떠올랐다. 이십 대에 아이 둘을 낳고 키우다 보니 시행착오가 더 많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발을 동동 구르고 '해야 할 일'에 쫓겨 다녔다.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의무감이나 부담감은 조금 내려놓고 그만큼 자신을 돌보라고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다. 일도, 아이도, 네가 조금 느슨하다고 큰 일 나지 않는다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멀쩡한데 안 입는 옷 서너 박스를 현관 밖에 내놓고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 신청했다. 읽을 시기가 지난 아동 전집 두 세트는 당근마켓에 내놓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4만 6천 원어치 중고책을 내다 팔았다.


끝내 전공서적은 버리지 못했다. 대학원 공부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내 전공에 확신이 있는가, 확신이 없다고 중도하차가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등록금만 내고 출석도 하지 않을 거면서, 논문을 시작할 것도 아니면서, 언젠가 졸업하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것이 옳은 걸까. 마음 정리가 끝나지 않은 물건은 차마 떠나보내지 못했다.


짐 정리는 안 쓰는 물건을 골라내서 버리는 것 이상이었다. '예쁜 쓰레기'에 얽힌 희로애락. 그걸 다시 느끼고 돌아보고, 놓아주고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정리 막바지에는 베란다 벽장에서 큰 토분을 꺼냈다. 식목일 즈음에 플라스틱 화분에서 토분으로 옮겨준 "뾰족이"가 그 간 쑥쑥 자라서 더 큰 보금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뿌리가 잘리지 않도록 화분을 톡톡 치며 흙을 헐겁게 만들어 뾰족이를 작은 토분에서 꺼냈다. 큰 화분에 흙을 넉넉히 채우고 뽀족이를 심은 후 물을 흠뻑 주었다. 자리가 잡힐 동안 흙이 더 꺼질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상태를 보면서 흙을 보충해 줄 예정이다.


오늘 내 마음에 심긴 씨앗 하나도 뾰족이처럼 자리를 잡고 무럭무럭 자라주길. 짐스럽게 박혀만 있던 것들을 떠나보낸 자리가, 내면에서부터 자라난 것들로 채워지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관생도가 되기 위한 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