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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Nov 27. 2022

나는 엄마 장례식에서 웃었다

아이들에게 죽음이란

 기이한 광경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동네 어른들이 우리 집에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평소와 달리 밝게 웃으며 인사하지도, 내 머리를 엉클어뜨리며 장난을 걸지도 않았다. 무슨 슬픈 일이 있는지, 옷 색깔만큼 낯빛도, 표정도 똑같았다. 그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 웃음을 참았다.


 TV에서 봤던 웃기는 장면 같은 건 또 있었다. 우리 집이 무슨 드라마 무대 같이 변해 있었다. 여름에나 쓰는 대발이 바닥에 깔리고, 안방 문에도 드리워져 있었다. 할머니가 추운 겨울에 저걸 왜 꺼냈지?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듯 바닥에 나뒹굴었다. 가슴을 치며 아빠에게 울부짖는데 "어떻게 해."라는 말만 또렷이 들렸다. 아빠는 평소처럼 말이 없었다. 오늘은 할머니가 저렇게 울면서 얘기하는데도 대꾸를 안 했다.


 안방 한가운데에 빨간 십자가가 붙여진 흰 천을 씌운 큰 물체가 있었다. 상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탁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고, 처음 보는 거였다. 할머니는 "여기, 니 엄마가 있다." 하며 나와 동생을 품에 안고 우셨다. 그때 동생과 눈이 마주쳤는데 우리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할머니. 할머니가 우는데 나는 웃겨. 지금 저 사람들도, 할머니도, 아빠도 다 이상해.'

 며칠 전 교회 아줌마들이 안방에 누워있는 엄마 앞에서 찬송가를 힘주어 합창했었다. 주먹으로 무릎을 치며 부르는 게 특이해서, 나도 따라 했었다. 엄마가 아팠던 동안 우리 집은 회색이었다. 엄마가 아프기 전처럼 알록달록한 기억은 없다. 엄마는 큰 방에 혼자 누워있었다.


 '칫, 나랑 안 놀아 주고.'

 하루는 엄마한테 유치원에서 받은 '방학생활' 책의 첫 페이지를 읽어 달라고 했다.

 "너희 엄마 피곤한데 그러지 마라. 엄마 쉬어야 돼."

 "아냐, 엄마. 나 괜찮아. 영이야, 이리 와. 읽어줄게."

 '거봐, 할머니. 엄마가 괜찮대.“

 나는 신이 났다. 글자는 알아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엄마가 나를 위해 무언가 읽어주는 게 얼마 만이었는지 좋기만 했다.


 내게 이런 자녀를 주시옵소서.

 약할 때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시옵소서.


 몇 번쯤, 엄마가 울먹였던가, 숨이 차서 읽기를 멈추었던가. 엄마가 기운이 없는 것 같아 속상했지만,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냥 엄마 목소리가 좋았다.


 따뜻한 봄날이 왔다. 좋아했던 옷을 입고 엄마 산소에 갔다. 지금도 그 산길은 험하지만, 그때는 똑바로 서 있지 못할 정도로 얼마나 가파르고 무서웠던지. 할머니는 등이 굽고 키가 작은 보라색 꽃을 보여주며 가기 싫다는 나를 달랬다.


 "엄마가 너 온다고 예쁜 꽃을 피웠나 보다."

 '칫, 이 꽃은 하나도 안 이뻐.'

 그날도 할머니는 장례식 날만큼 슬프게 우셨다. 미영이도 그날은 기분이 이상했다.


 8살 때였던가. 휴일 아침 모두가 잠든 시간에 눈이 떠졌다. 누워서 하얀 천장 벽지를 바탕 삼아 내게 소중한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 봤다.

 '이제 할머니랑 이모도 못 만나는 거네. 엄마도 못 만나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손가락, 발가락이 따끔거렸다. 나와 동생, 아빠는 할머니, 이모도 만나지 못하는 먼 곳으로 우리를 데려왔다. 아빠는 할머니한테 전화하면 안 된다고 했고, 어느새 전화를 걸면 낯선 아줌마의 녹음된 목소리만 들렸다. 할머니랑 이모가 보고 싶으면 그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예전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랑 이모는 지구 어디엔가 있으니까 내가 어른이 되면 찾을 수 있겠지. 엄마는 지구에도, 우주에도 없는 거니까 영영 못 만나는 거네.'

 가슴 깊은 곳이 뜨끔하고 눈이 번쩍 떠졌다. 그게 죽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아침이었다.


* 사진: Unsplash (Annie Spr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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