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회를 다녀왔다. 생애 두 번째다. 지난 석 달 동안 열심히 글을 나눈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였고 최근 출간한 작가 북토크도 병행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줄 알고 갔다. 평소에 공지를 자세히 읽지 않고 닥치면 필요한 부분만 살피다 보니 여러 가지를 놓쳤다. 이월 초 주말 오후에 강남 근처에서 모이는 일정정도로 인식했다. 여하튼, 토요일 오후, 조금 이른 두시에 만나 저녁 식사까지 이어지는 긴 일정이었다.
글을 나눈 사람과 처음 만나는 자리는 어색하지 않다는 게 정설인데, 사실 난 늘 어색했다.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오래 나눴지만 각자 사정으로 볼 수 없던 친구 같은 사람을 만나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했다. 구면이지만 지난 모임 때 대화를 못 한 사람도 똑같았다. 오랜 시간 함께하며 술잔을 기울였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모두가 부담되고 조심스러운 자리였다. 절대 E라고 자부하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부담스럽다면 I로 변했거나 스스로 자신을 잘 모르는 상황일 것이다.
처음에는 그랬다. 어색함을 극복하기 위해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자리 잡고 한 명씩 인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시에 도착하기는커녕 약속 시간을 두 시간이나 훌쩍 넘기고 합평회가 끝날즈음에 참석했다. 이유는 있다. 세상 중심에 존재하는 아내와 주변에서 서성이는 두 딸 덕분에 이른 모임 참석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가족과 일주일에 하루를 함께 보내기도 힘든 상황에 토요일 반나절을 나가서 혼자 논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아내와 함께 살아낸 십여 년 동안 주말 모임을 서너 번도 안 나갔는데, 최근 석 달만에 다시 가겠다는 말을 함부로내뱉을 수 없었다. 그래도 꼭 가고 싶은 마음에 용기 내어 미리 모임 사실을 서너 번 전달하고 아침에도 인지 시켰으나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약속보다 중요한 '지금' '여기' '전장'속에서 전우애로 똘똘 뭉친 아내만 적진에 버려두고 떠나겠다는 말을 전할 수 없었다. 선한 첫째 딸은 약속 시간이 삼십 분 정도 지나서야 아빠가 약속에 늦지 않았냐고 두 번 정도 물었다. 괜찮다고 대답하자마자 그럼 밤리단길로 놀러 가자며 선한 척했다. 이어서 아내는 가족을 사랑하는 아빠라서 우리랑 노는걸 더 좋아한다고 정의까지 내려 주셨다. 물론 너무 늦은 거 같으니 집에서 쉬라는 표정도 담았다. 어차피 막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충족시켜 주면 아빠가 옆에 있든 신사로 가든 군대를 가든 신경 쓰지 않았다. 전장에서 피아가 혼재된 상태로 엄청난 심리전을 펼쳤지만, 약속을 쉬이 포기하진 못했다. 결국 약속시간을 한 시간 오십 분 넘기고 홍대에서 집으로 향하는 가족을 배웅한 뒤 약속 장소로 향할 수 있었다.
이동하면서 장소를 확인하고 끝까지 읽지 못한 다른 작가 글을 지하철 안내방송과 섞어 들었다. 집중해서 읽고 조심스럽게 댓글도 달았다. 늘 하던 대로 허둥지둥 대며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반가운 얼굴이 보였고, 다른 작가 이야기를 들으며 분위기를 살폈다. 우연인지 호스트 기획인지 모르겠지만, 바로 내 글 합평 차례가 왔다. 빠르게 걸어오느라 맑지 않은 정신에 아무 말 대잔치를 하다 보니 내 순서가 지나갔다. 글이 웃기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렸는데, 웃음을 주려고 쓴 글이다 보니 기분은 좋았다. 숙제를 마친 기분으로 앉아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합평회를 마치고 식사할 텐데, 평소 안면인식 장애가 심해서 실수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합평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단톡방 명단과 현장에 참석한 사람을 한 명씩 매칭했다. 대략 열다섯 명 중 열두세 명은 조합했는데, 나머지 두세 명이 헷갈렸다. 합평회는 끝났고 모두를 속속들이 아는 대장께 자문을 구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하면서매칭 못한 상대에게 실수할까 봐 말을 아꼈다. 어색하기도 했고, 앞에서 심봉사와 베토벤을 찾는 분께서 자꾸 술을 주길래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몽롱한 상태에서 식사를 마쳤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약간 긴장한 상태였는지 머릿속에는 관사에 살던 닭이 춤을 춘다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맥주를 한 잔 더하는 분위기라서 즐겁게 따라갔다. 강남에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나서서 아는 척했던 부끄러운 순간도 있었다. 사실 아내와 자주 노는 곳이기에 잘 아는 줄 알았다. 잘 아는 곳이라며 우리가 선택한 호프집은 대기해야 한다고 거들먹거렸다. 그래서인지 무려 일 분정도 기다렸고 이층으로 안내받았는데, 자리가 넘쳐났다. 이층도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함께한 사람들이 교양인이라 아무도 탓하진 않았다.
지난번 모임 때 중국 술로 고문했던 사람이 조금 멀리 앉아서 안도감이 들었다.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과 실컷 대화했는데, 오래 글을 쓰는 자본가가 열정을 찾아 독립한다는 이야기였다. 계속 대화를 이어가려는데, 베토벤과 심봉사를 찾던 중국술 장인이 지금 이 순간이라는 묘한 답을 하면서 마무리가 되었다.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적당하게 마시고 나왔다. 술을 마셨지만 여전히 좋은 사람들만 있었다.
전에는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나를 빼고 전부 남쪽으로 향했다. 서울 북쪽에 살 일도 한 두 달 밖에 남지 않았기에 외로움을 달래며 집에 도착하니 하루가 끝날 무렵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 주에 두 번씩 스물네 번 쓰는 모임에서 열서너 번 쓰고 참석한 게 부끄러웠다. 두 달 지난 글을 퇴고도 없이 합평회에 올린 것도 실례였고 좋은 작품을 집중해서 잘 읽지도 못한 것도 무례했다.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을 끊으면 글을 놓을까 봐 끝까지 매달리기로 했다. 다만, 술기운을 빌려서 어색함을 덜어내는데 치중하지 않고 좋은 글기운을 뿜어대며 다가가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