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괜찮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간관계를 표로 만든다면 얼마나 얇을까. A4 한 장은커녕, 포스트잇 한 장이면 충분하다. 와이프. 그리고 친구, 한두 명. 딱 거기까지다.
예전엔 ‘나만 이런가?’ 싶었다. SNS에는 매일 약속이 있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저녁엔 와인 모임, 주말엔 등산 모임, 평일엔 회사 사람들과 회식 아닌 회식. 나는 와이프랑 고기 구워 먹고, 거실에서 같이 드라마 보고, 가끔은 그 친구 한두 명과 톡 몇 줄 주고받으면 그걸로 인간관계 1일분은 완료다.
“외롭지 않아?” 간혹 누가 묻는다. 생각보다 많이 안 외롭다. 아니, 거의 안 외롭다. 내 와이프는 내가 뭘 말 안 해도 다 아는 사람이고, 그 친구는 6개월 안 봐도 다시 만났을 때 6분 안에 예전으로 돌아가는 사이니까.
나는 그게 좋다. 그러니까 이 좁디좁은 인간관계가 내게는 ‘선택적 정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애초에 너무 산만한 인간관계는 나를 피곤하게 했다. 내가 낯을 가리는 스타일은 아닌데, 어찌 보면 낯가림보다 더한 ‘에너지 계산형 인간관계 소비자’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술자리에 불려 다니는 사람들, 이름만 들어도 피곤한 일정표를 소화해내는 인간 알람들. 하지만 부러움도 오래 못 간다. 왜냐하면 나는 집이 좋고, 와이프가 좋고, 혼자가 편하니까.
정말로, 나는 내 인간관계가 유기농처럼 작고 신선하고 건강하다고 믿기로 했다. 다품종 소량생산, 한정판. 많지도 않고, 빨리 변하지도 않고, 질리지도 않는다. 늘 한결같다. 세상에 인간관계를 통해 위안을 얻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인간관계가 줄어든 덕분에 오히려 내 자신이 더 또렷해졌다고 느낀다.
너무 많은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게 되니까. 때론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내 편이 되어주니까. 그러니까 사람이 적어도 괜찮고, 외롭지 않아도 괜찮고, 조금 비어 있어도 충분히 가득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오늘도, 와이프와 김치찌개 한 그릇을 나눠 먹으며 나는 생각한다. “우리, 꽤 괜찮은 인간관계 속에 살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