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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안 Apr 03. 2023

힙스터를 포기한 이유

나의 소비 연대기






항상 특이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어릴 때, 학생 시절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에게서도.

사춘기 때는 특별함이라 해석하며 약간은 으쓱하기도 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툭 튀어나온 모서리 같아 다듬으려 애쓰던 나의 특이함.



어떤 부분이 특이하다는 건지는 잘 모른다.

친한 사람들에게는 물어보기도 했는데 명쾌한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다만 갑자기 독특한 행동을 한다고들 했다. 그래서 그런 특이함이 마이너스가 될까 봐 직장에서는 말수를 줄이고 행동을 절제하려 애썼다. 요즘도 입을 열기 전 두어 번 생각하려 노력한다.



어쨌든 한때는 그 특이함을 당시 한창 유행하던 힙스터 취향에 섞어 무척이나 '힙'한 척했다. 트렌디하게 묘사하자면 MZ감성일까?

영화제를 보러 전주, 부산을 찾고

인스타그램 피드의 톤을 신경 쓰고, 해시태그 절대 안 붙이고 위치도 안 찍고-

필터보정을 하지 않고 아이폰 기본앱 보정만

멜론 대신 스포티파이, 사운드클라우드

아이폰 대신 블랙베리 클래식,

달달하니 여성스러운 향수 대신 '절간 느낌'의 향냄새 나는 인센스를.

스타일이나 취향에 나름의 독특함을 추구했었다.

그냥 모든 옷이 똑같아 보여 1년 넘게 옷을 아예 안 사기도 했다. (옷을 너무 안 사는 딸이 걱정되는 부모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그러던 내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인들이 적잖이 놀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냥 계속 혼자 살 느낌이었다나.

나름 자유로워.. 보였다고 해석해도 되겠지?

그즈음 이미 나는 힙스터-혹은 지망생-생활을 접었다. 점점 직업인으로서의 삶에 익숙해지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던 나 자신, 스스로의 평이함을 깊게 느꼈기 때문.

아, 나도 별 수 없이 뻔한 인간이구나 싶은 생각.






나는 얼마나 알기 쉬운가?



감성 넘치고 특별함을 추구한다는 나의 생활,

잘 큐레이션한 소품집처럼 만들고 싶었던 일상이

결국 몇 개의 해시태그로 손쉽게 인덱스 처리되는 삶이라는 걸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인스타 피드에서 슥 밀어 올리고 나면 잘 기억나지도 않는.



무엇보다 그나마 약간 있다는 감성을 드러내는 방법-새 트렌드가 아직 마이너할 때 남들보다 다소 일찍 인지하거나 소비하는 데 그친다-에 현타가 찾아와 스스로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먼저 소비해 본 브랜드나 취향의 영역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지면 다소간 뿌듯했는데, 그걸 뿌듯해하고 있던 내가 참 부끄러워지고 만 것이다.

대단한 기민함이 있어 그러한 소비 패턴에 앞서 갔던가? 그냥 SNS광고 잘 본 얼리어답터 같은 나.

다시 스크롤을 올려 특이함을 잘 승화시키고자 시도한 방법을 읽어 본다면, 나에게는 애석한 일이지만 모두 저런 주변인 한두 명쯤은 생각날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특이한 사람이 있거나.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

조금은 남다르리라 믿었던 일상이 사실은 거대한 대중 속 한 카테고리-남다르게 보이려던 것치고 어렵지도 아주 마이너하지도 않은 대분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몇 년간의 힙스터(?) 생활을 접게 만든 깨달음이다.

평범함을 받아들여 인정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까.



전향한 사람이 더 악착같다던가?

그래서 최근에는 또 새로운 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고자 지극히 대중적 스타일에 매진했다.

부스스한 머리에 맨얼굴, 맘진에 오버핏 코트, 친환경 브랜드의 친환경한 가방을 메다가

별안간 다이슨 드라이어로 머리를 탱글하게 말고 스트레이트핏 진에 루이뷔통 미니백을 들었었고-



요즘은 몇 년 전 할머니 선물로 샀었던 롱샴 미니 토트백을 든다.

이쁜 가방 들고 다니시라고 노인정 출퇴근용으로 선물했던 가방이다. 이제 할머니께서 노인정을 안 다니셔서 도로 내 차지가 되었다.

빈티지가 별 거냐, 내가 정하면 그게 빈티지인 것.



그런 건 있다.

한 번 나름 깊이 빠져들어 보았기에 저거 별것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것.

이제 웬만한 이미지에는 잘 흔들리지 않는다.

혹해서 다 사 보고 써 보며 다녔던 것이기 때문이다.

저 패키징 안에 뭐가 들었는지 다는 몰라도 어느 정도는 안다.

그래서 아이폰 14와 갤럭시 플립 4 사이에서 고민하다, 지금 쓰는 아이폰 12 미니를 나만의 빈티지로 정했다.

생각보다 잘 흔들리네..?



그래서 지금은 뭐냐고?

이도저도 아니다.

뜸하던 사람들과 만날 때는 탱글하게 머리 말고 하객룩으로 다니고, 집에서는 인센스 켜고 드러누워 e-book을 읽는다. 원래 하던 대로 머리도 부스스하며 맘진에 오버핏 x 큰 옷 o을 입는 것도 물론이다. 놈코어도 꾸안꾸도 아닌, 그저 꾸미지 않았으나 단정하게는 입은 노메이크업 룩이라고 하겠다.

그냥저냥 적당한 인생을 사는 중이다.

이제는 평범한 나를 좀 받아주려 한다.

그리고 자아를 표출하고 싶을 때 가능하면 소유물이 아니라 창작물로서 드러내기로 했다.

브런치는 그런 전향의 일환이기도 하다.



갑자기 이 글은 왜 쓰게 되었을까.

참 알기 쉬운 성수동 힙스터들 뼈 때리는 유튜브 콘셉트브이로그를 보게 되었다.

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을 하던 나에게 깜짝 놀랐는데 지금은 왜 아닌 것 같지?를 곰곰 생각하다 적는 나름의 참회록이다.

특이할 거면 더 특이하거나 아니면 아예 노멀했어야지. 워너비 생활을 해 본 것으로 만족하자.

혼자만의 일기장에 쓸까, 네이버 블로그에 쓸까,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

'결'이 가장 맞아 보이는 브런치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아, 아직 옛 버릇을 못 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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