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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Aug 10. 2024

대륙의 건강검진, 상당한 문화적 충격!

2024년 8월 9일 금요일 날씨 맑고 비 조금

  거주증 발급을 위해 건강검진이 필요해서 이른 아침부터 온 가족이 총출동했다. 8시에 시작이라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갔는데 출근길이라 차가 막혀 8시 10분에 도착. 문 앞부터 북적북적 거리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대기 인원 90명, 우와 역시 대륙은 웨이팅 스케일도 다르구나!


  신체 계측, 피검사, 소변 검사, 심전도, 초음파, 엑스레이 촬영. 간단한 검사 하는데 검사비가 5만 원이 넘었다. 중국 오기 전 비자 만들 때도 건강 검진 해야 한대서 한국에서도 비싼 돈 내고 허접한 검사를 몇 개 했는데 두어 달 만에 무슨 검사를 또 하냐 이놈들아!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속옷부터 겉옷까지 옷차림은 최대한 단촐하게, 걸리적거리는 게 하나도 없는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크게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곳의 건강 검진은 안내 요원도 없고 그냥 알아서 검사가 필요한 검사실에 들어가면 되는 시스템인데, 검사실에 가면 간호사도 없이 의사 한 명이 앉아 있다. 심전도 검사를 위해 문이 열려 있는 검사실에 들어갔다가 가림막 커튼 뒤에 그냥 훌러덩 웃통을 까고 누운 아저씨를 보고 깜짝 놀라 뒤돌아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놀란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는 내 몸뚱이의 인권, 나 혼자 지키는 수밖에. 여의사가 있는 검사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박씨들을 문 밖에 세워두었다. 혹시나 우리나라처럼 원피스를 입은 환자를 위한 고무줄 바지라도 있을까 하여 두리번거려 봤지만 아무것도 없다. 의사가 원피스를 올리고 누우라는 제스처를 취해서 하는 수 없이 내 원피스를 위로 후루루룩 올리고 누웠다. 혹시라도 누가 들어오기라고 할까 봐 내내 불안한 마음. 초음파 검사도 심전도와 마찬가지로 원피스를 위로 올리고 두 다리를 훤히 드러내고 누워 검사를 마쳤다.


  심전도와 초음파 검사를 할 줄 알았더라면 바지를 입고 오는 건데, 괜히 분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엑스레이.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속옷 탈의와 옷 갈아입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고심 끝에 선택한 오늘의 착장이 엑스레이 촬영할 때 빛을 발해야 덜 억울했을 텐데, 중국의 엑스레이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났다. 먼저, 납복 같은 느낌의 하프 앞치마로 엉덩이를 가린 뒤 끈을 앞에서 묶는다. 머리에는 요리사가 쓰는 것처럼 생긴 이상한 모자를 쓰고, 마치 역기 드는 포즈처럼 양손을 위로 벌려 끈을 목 뒤로 들고 촬영을 한다. 옷은 무얼 입어도 상관이 없었다. 속옷에 와이어가 있든 없든 그것도 상관이 없었다. 상당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아침부터 진짜 중국을 경험하고 났더니 피로도가 매우 높았다. 밥을 먹으러 나갈 기운이 없어서 처음으로 배달 음식을 시켜보기로 했다. 며칠간 살면서 쌓은 눈치로 보아하니 배달 주문도 택배와 마찬가지로 집으로 배달해 주는 게 아니라 아파트 정문 옆에 조로록 두고 가는 것 같았다. 메뉴를 고르는 것도 피곤해서 오늘도 아는 맛, 안전하게 맥도널드에 도전했고 배달 음식 첫 주문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오후에는 아이들 학교에서 신입생 학부모 설명회가 있어 참석했다. 설명회가 끝나고 시안이의 담임 선생님을 뵈었다. 한국 아이가 들어온다는 얘기에 너무 반가워서 인사하려고 일부러 찾아오셨다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사실 선생님을 처음 뵀을 때 다정한 기운이 너무 좋아서 마음이 와락 무너질 뻔했는데, 겉으로는 덤덤한 척 인사를 했다. 눈시울이 자꾸만 뜨거워지려는 걸 꾹 참느라 힘들었다. 선생님께서 또 다른 한국인 엄마를 소개해주셨는데, 그분도 한국인이 온단 소식을 듣고 너무 기다렸다며 처음 본 순간부터 마치 오래된 지인을 만난 것처럼 반갑게 인사해 주셔서 무척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나와 맞지 않는 관계를 맞추어 나가는 일에 극심한 피로를 느끼는 내향인이라, 해외 살이 하며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잘 맞지도 않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한국 사람 필요 없다고,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오만한 생각이었다.


  지난 열흘 간 중국말 못 해서 바보처럼 살다가 모처럼 한국 사람을 만나 우리말로 신나게 수다를 떠니 그게 뭐라고,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게다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는 동지애가 더없이 든든해서 생각할수록 울컥한 기분이 든다.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 의지할 곳이 생겨 정말 든든하다. 이 든든한 마음, 깊은 사랑으로 보답해야지. 나 역시 그들의 정저우 생활에 든든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게 마음을 열어야지.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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