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핑크 May 01. 2023

나를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나는 왜 내게 다가오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걸까

지난 화요일, 수업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무음으로 해둔 핸드폰으로 카톡이 보였다. "언니 바빠요? ㅇㅇ이네 축구팀에 용병 구했어요?" 아이의 유치원 시절부터 알고 지냈고 마음씨가 맑은 계곡에 흐르는 물처럼 예쁜 아이 친구 엄마가 연락을 해왔다. 5월에 아이들의 축구대회가 있는데 우리 팀의인원이 부족한 걸 알고 그 한명을 채웠는지 묻는거였다. 반가운 마음에 "아니, 아직 못구했어요. 누구 있어요?" 하자 내가 얼굴을 알지 못하는 아이를 추천했다. 3학년이 되면서 많은 아이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축구팀에서 하차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로 인해 팀 인원이 줄어들어 남은 아이들이 대회에 못나가게 되는 사정이 생긴다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마음은 얼른 우리 팀으로라도 함께 출전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선뜻 그러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 팀은 2학년 초에 이미 인원이 줄어드는 사태를 겪었다. 그래서 현재는 다른 반과 연합팀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연합팀의 절반을 이루고 있는 어머님들은 매우 강한 결속력을 자랑하며 작년에도 세명이나 되는 용병을 모조리 구해오는 탄탄한 인맥을 자랑하는 분들이시다. 그분들이 내심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마당에 나는 아무런 확신도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곧 수업이 시작되는 상황을 핑계 삼아 그 분들께 물어보고 허락을 얻어보겠노라고 궁색한 답을 보냈다. 


두시간여의 수업을 마치고 그 친구가 우리팀의 용병으로 낙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한 결속력을 자랑하는 어머님 그룹의 누군가가 중간에서 힘을 쓴 듯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게 연락을 준 시냇물 같은 마음씨의 엄마는 나 말고 다른 어머님과도 아는 사이이다. 나를 배려해서 내게 먼저 연락을 준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며칠 후, 여느 때처럼 축구하러 간 아이를 픽업하러 가서 어머님들과 기다리던 중 합류하게 된 용병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단톡방에서 내가 용병을 소개했다고 고맙다는 인사가 오간 터였기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사실은 "나한테" 연락이 와서 잘 못하는 친구일까 걱정했다' 는 말을 해버렸다. 내 마음 속 한켠에 단단히 자리한 열등감이 슬쩍 보이는 순간이었다. 내게 온 것들은 웬지 좋은 것이 아닐 것 같다는 불안감이 섞인 열등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 근처에 서있던 한 얌전한 인상의 어머님이 말을 거셨다.


"혹시... ㅇㅇㅇㅇ 팀 어머님들 이신가요?"


용병친구의 어머님임을 순식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웨이브 섞인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베이지색 외투를 걸친 차분한 눈빛의 어머님은 따뜻해 보이셨다. 징검다리가 되어준 시냇물 같은 엄마와의 공통점이 한 눈에 느껴졌다. 단 몇 초였지만  비슷한 물살이 나와 용병친구 엄마에게도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미안한 마음이 차올랐다. 내 열등감이 이 두 어머님에 대한 존중마저 옅어지게 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차량에서 내린 아이들은 그 사이 친해져서 공원에서 잠시 축구를 하다 가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잘 뛰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그 팀에서는 에이스라고 칭찬 받는 아이였다. 내게 찾아온 것이 불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나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가 있었다.




무슨 일이든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순간이 오면 한결같이 나의 부족함을 탓하던 내가 떠올랐다. 내 안에 긍정적인 마음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키워 나를 불안하게 하고 좋은 것을 떠나가게 한다고 나를 염려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왜 내게 다가오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걸까. 좋은 길로 가는 행운의 열쇠는 내 앞에 떨어지는 일이 절대로 없을 거라고 감히 단언하는지 나에게 묻고 싶어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삶에 좋은 씨앗이 되어줄 인연 한자락이 주어졌는데 나는 마치 지나가다 마주친 자잘한 전단지들처럼 비켜 지나갈 준비만 했다.


갑자기 나 스스로가 나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일이 단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지내는 이웃들의 선량함을, 배려를, 그들의 삶의 무게를 함께 도매급으로 넘기는 것은 아닌가. 나를 믿지 못함으로 인한 불안함과 열등감은 불길처럼 번져 결국 내 주변의 사랑하는 이웃들을 가볍게 여기는 일로 커진 건 아닐까.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못함은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여기는 일과 동일한 것 아닐까...


당연한 이치를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자기애가 없는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도 존중할 수 없었다. 단지 내게 연락이 왔으므로 잘하지 못하는 친구일거라 여겼던 내가 부끄러웠다. 내게 찾아온 행운을 온몸으로 꼭 끌어안을 준비라고는 눈꼽만큼도 되어있지 않은 나를 직면하는 순간이었다. 나를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진리를, 내가 가까이하는 이웃이므로 당연히 나와 닮아있을 것임을, 내가 쌓아온 만큼 그도 배려의 궤적을 쌓아왔을 것임을 당연히 먼저 생각해야 했다.


나를 보듬는 일은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나를 보듬어야했다. 믿어야했다. 변함없이 수업준비 전에 꼼꼼히 챙길 나를 믿어야 했고 좋은 이웃을 둔 나는 그 이웃의 이웃도 좋은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했다. 그 믿음이 비록 무너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수많은 변수들 중의 하나일 뿐 크게 상처받을 일이 아님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나를 믿어야 한다. 작은 실수에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일을 멈춰야 한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내가 뱉은 사소한 한마디가 나에 대한 존중감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앞으로의 나는 매 순간 나에게 충실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미덥지 못하고 서툴고 실수투성이일지라도 앞으로는 나아질 따뜻하고 단단한 나를 어느 누구보다 지지하고 믿어줄 거라는 생각을 이제라도 해본다. 그래서 더이상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가볍게 여기는 일도 없어질 거라고 믿어본다. 내 안의 큰 문제의 한 자락을 비로소 맨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