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된 위로

위로수집 일지 1

by 단비

힘든 시간을 보내며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 를 무한반복 재생했다. 달려드는 불안을 덮고, 눈물을 안으로 삼키고, 치미는 화를 꾹꾹 눌렀다. 덮고 삼키고 눌렀던 모든 감정들이 일제히 한 순간 봉기하며 걷잡을 수 없이 복받쳐 오를 때면 약의 힘을 빌어 다시 잠재웠다. 그러면서 입에는 침이 바싹 말랐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 계속 깊은숨을 몰아 쉬었고, 깊게 잠들지도 못하고 또렷하게 깨어 있지도 못했다. 살은 점점 빠졌고, 그렇게 날이 갈수록 기운과 의욕을 잃어갔다.


이런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많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한 위로를 해주었다. 자신이 가진 신앙의 경구를 들려주며 기도해 주는 이가 있었고,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며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이도, 술 한잔 하며 인생 얘기를 들려주는 이도 있었다. 마음이 고단할 땐 몸을 움직여야 한다며 운동법을 알려주는가 하면,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 책이나 영화를 권해주기도했다. 꾸준히 안부를 물으며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 이도 있었고, 커다란 캠핑카를 몰고 와 멀리 있는 깊은 산속으로 나를 데려가 밤하늘의 별들을 보여준 이도 있었다.


이런 좋은 사람들의 많은 위로를 받으면서도 나는 점점 더 나빠져 갔다. 인생의 지혜로 가득한 책 속의 명문장들, 큰 고난을 이겨낸 사람의 진솔한 경험담, 깊이 존경하는 분의 울림 있는 말씀들을 되뇌고 되뇌었다. 아무 소용없었다고 하면 그것도 억지소리이지만, 안 좋은 상황이 길어지면서 평소 같으면 곱게 필사하며 경건하게 머리 조아렸을 가르침들 앞에 ‘개-뿔’이란 추임새가 절로 새어 나오는 날들이 많아졌다.


인품 좋은 지인들의 위로에는 타인의 고통을 관조하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 여유가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기를, 지금 내가 위로받는 이가 아니라 위로하는 이였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내가 위로하는 이였다면 좀 더 세심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곱게 건네온 말이 고깝게 들리는가 하면 멋쩍어서 웃는 웃음이 비아냥거림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어떨 땐 너무 연락 없는 지인의 무심함이 한없이 섭섭하기도 했다.


이렇게 신경 쓸 필요 없는 것들에 신경을 빼앗기며 힘들어하는 나에게 엄마는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다 전생의 연이 얽히고 업이 쌓여서 그런 거 아니겠냐.’는 말을 했다. 순간 나는 진심으로 화가 치밀었다. ‘기억도 안 나는 전생을 반성하며 내가 지은 업이겠거니 하라는 거냐.’며 짜증을 냈다. 그 후 며칠 동안 엄마는 심하게 앓으셨고, 앓는 내내 몇 번을 썼다 지웠을 문자를 조심스럽게 보내오셨다. ‘엄마가 많이 못 배운 게 요새처럼 한스러울 수가 없다. 배운 게 많았으면 이럴 때 좀 더 좋은 말을 해줬을 텐데. 그저 건강만 해치지 말기를 빌고 또 빈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마음이 스스로 알아서 자신에게 내리는 후회라는 벌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엄마의 위로는 나에게 결국 약이 되었다. 덕분에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워 다가서는 위로들을 물리치고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아픔과 고담함을 덜어줄 위로라는 약을 공손히 처방받기로 했다. 나에게 약이 되는 위로를 찾아 나서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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