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요즘 틈틈이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를 보고 있다. 무명 개그맨 3인조 '맥베스'가 주인공인 드라마다. 처음엔 '이 친구들 참 꾀죄죄하고 안쓰럽군...'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빠져들면서 나도 맥베스의 팬이 되어버렸다.
콩트 3인조 맥베스는 고등학교 동창인 하루토, 쥰페이, 슌타로 이뤄져 있다. 18살부터 28까지 콩트를 만들고 공연하러 다녔다. 하지만 인기는 없다. 10년째 꾸준히 '저공비행' 중이다. 10년을 해도 인기가 없으면 그만두기로 약속했고, 집에서는 모두 반대하고 있다.
게다가 콩트가 좋아서 뭉친... 줄 알았지만 사실 쥰페이는 좋아하는 여학생을 웃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시작했다. 하루토는 "콩트 해볼래?"라는 쥰페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시작했다. 슌타는 그저 이 친구들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시작했다.
남편이 말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 중에 누가 나랑 가장 닮았어?"
나는 쥰페이라고 답했다.
"왜인지는 6화를 보면 알아."
그랬더니 4화를 보던 남편이 열심히 나를 따라잡아 6화까지 봤다.
6화까지 보던 남편이 갑자기 거실에서 "뭐야아아"라고 말했다.
"에이, 뭐야. 진국이라서 닮았다는 거야?"
6화에는 "그 녀석(쥰페이)은 진국이잖아."라는 대사가 나온다.
남편도 진국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남편은 그 말이 영 듣기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꾸준히 '진국'이란 단어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멋있는 사람한테는 멋있다고 하지, 진국이라고 안 하잖아? 진국이란 말에는 '멋없다'는 말이 들어있다니까."
그 말을 들으니 내심 '진짜 그렇긴 그렇네...'라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남편의 반응이 재밌어서 또 맥주를 마시며 그 얘기를 하고 웃었다.
씻고 노트북을 켰는데 남편 블로그에 새 글이 올라왔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쥰페이는 '요령 없는 다정함'을 가진 사람이자 '진국'이라 불리는 사람. 드라마 속 쥰페이는 내 기준 매우 로맨틱하고 다정하게 순수한 사람으로 보였기에 살짝 감동했다."
사실 '진국'이어서 남편을 닮았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드라마에서 고등학생 시절 쥰페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학생 나츠미에게 (여러 번 차이고도) 고백하려고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한다. 이를 위해 나츠미의 이름으로 읽히는 숫자 '723'(일본어로 이 숫자를 '나츠미'라고 부른다)이 들어가는 자동차 표지판을 찾아다니며 찍는다. 후배들까지 동원해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바닷가에 나츠미를 부른다. 모래사장에 서 있던 쥰페이와 후배들이 허리를 숙여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왜?" 쥰페이에게 관심도 없던 나츠미가 황당한 얼굴로 묻는다. 그러자 쥰페이가 사진꾸러미를 내밀며 말한다. "나츠미의 이름이 들어가는 표지판 723을 723장 찍으려고 했는데, 72장 밖에 못 찍었습니다!" 나츠미는 결국 쥰페이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쥰페이의 콩트가 웃겨서가 아니었다. 자기를 기쁘게 해 주려는 그 마음, 그리고 그런 이벤트에 후배들까지 불러 모을 수 있는 인품 덕분이었다.
행복하다는 말은 내겐 자주 멋쩍고 이상한 말이었는데, 적어도 오늘 하루를 돌아봤을 때,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