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경준 Sep 11. 2018

크립톤은 이렇게 일합니다

2005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Y Combinator를 전세계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의 원조라고 얘기하지만 크립톤은 2000년부터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엑셀러레이팅을 해왔습니다. 그렇다보니 전세계 대부분의 엑셀러레이터가 YC의 방식을 답습하는 반면 크립톤은 나름 독자적인 방식을 구축해 왔습니다. 최근 국내 VC들 사이에서 '국내에 인하우스(In-house) 레벨로 스타트업을 엑셀러레이팅하는 곳은 크립톤이 유일하다'는 얘기를 한다고 들었는데, 크립톤은 실제로 Co-founder처럼 일합니다. 이 방식은 당연히 힘도 많이 들고 품도 많이 듭니다. 크립톤 식구들 표현을 빌리면 '뼈를 깎아 엑셀러레이팅한다'고 할만큼 고된 방식입니다. 창업가는 자기 회사 스트레스만 받으면 되지만 크립톤 식구 누구가 스타트업 다섯 개를 맡고 있다면 창업가 다섯 명이 받는 스트레스를 혼자 다 받는 셈이니, 정말 좋아서 하는 사람 아니면 업무 강도를 견뎌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크립톤은 엑셀러레이팅을 잘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 이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만 합류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 일을 잘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비싼 연봉을 주며 가르쳐보기도 했는데 결국 다 실패했습니다. 실험의 결과로 현재의 방식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크립톤은 기업과 기업가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이 비전에 공감하면서 진심으로 엑셀러레이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뽑아서 무한대의 자유를 줍니다.


그래서 크립톤에는 출근도 없고, 주간회의도 없고, 보고도 없습니다. 현장에서 좋은 창업가들과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게 더 중요하고 저와는 언제든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언제든 미팅을 소집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휴가도 본인이 원할 때 언제든 자유롭게 가게 합니다. 한 달을 쉬든 두 달을 쉬든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 프로젝트를 펑크내는 일은 없도록 당부합니다. 결과는? 멤버들이 잠을 안 자고 일을 합니다. 새벽 3시, 4시까지 단톡방이 쉬지를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서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좋아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저 역시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겁니다. 그래서 크립톤은 처음부터 소위 관리감독해야 하는 사람들은 뽑지 않습니다.


급여 체계도 나름 재밌습니다. 크립톤은 저를 포함해서 모든 멤버들의 기본급이 3백만원으로 똑같습니다. 급여가 작아서 의외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언뜻 보면 매우 혁신적이고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사실 이건 공평하지 않은 것입니다. 크립톤의 공평함의 기준은 '부양가족의 수'입니다. 그래서 기본급 외에 부양가족 수당이 있습니다. 부양가족 1인당 실지급 기준으로 50만원이 추가됩니다. 그러니까 부양가족이 2명이면 매월 100만원을 추가로 지급받고, 부양가족이 4명이면 200만원을 지급받습니다. 만약 앞으로 부양가족이 10명인 분이 크립톤에 합류하게 된다면 부양가족 수당으로 매월 500만원을 지급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싱글인 분들이 제일 손해를 보게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싱글인 분들은 결혼하게 되면 결혼 수당으로 1천만원을 지급합니다. 재혼도 해당됩니다.


성과급도 있습니다. 크립톤에 합류한지 1년 이내인 멤버는 본인 성과의 10%를 성과급으로 받게 되고 1년이 지나면 본인 성과의 30%를 성과급으로 받게 됩니다. 열심히 하는 멤버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고 회사를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외부 고객을 만족시키기 전에 내부 고객을 먼저 만족시키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이런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크립톤에서 함께 하는 것이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회사를 떠나도 좋다고 얘기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기에 자신을 성장시키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크립톤은 올해 처음으로 외부 주주를 받아들였습니다. 당초 제 예상을 뛰어넘는 적지 않은 투자금이 들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립톤은 사무실을 넓히지도, 법인 차량을 구매하지도 않았습니다. 크립톤이 1년에 내는 사무실 임대료는 200만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사무실에는 고급진 가구라곤 없습니다. 회사 식구들에게 법인 카드로 주유를 얼마든지 해도 좋으나 법인 차량은 기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회사 식구들에게는 합당한 보상을 해주되 돈이 있다고 사무실 넓히고 차 사는 것보다 한 푼이라도 아껴서 스타트업 한 곳이라도 더 투자해주는 게 크립톤의 방식입니다. 크립톤이 상장을 하고 떼돈을 벌어도 앞으로 이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크립톤은 스타트업의 동반자로서 스스로 스타트업처럼 운영하고자 합니다.


제가 매일 기업가정신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크립톤 식구들에게 제가 말한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을 겁니다. 앞으로도 크립톤은 스타트업의 동반자로, 창업가들의 동지로 현장에서 함께 뛰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업의 밸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