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경준 Mar 03. 2020

액셀러레이터의 탄생

2014년 어느 날로 기억한다. 뉴스에서 ‘액셀러레이터(Accerlator)’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다. 이니시스를 창업해 코스닥에 상장시킨 후 성공적인 엑싯까지 이뤄내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바 있는 권도균 대표님의 사진과 함께. 그 외에도 2014년에는 성공적인 엑싯을 경험한 스타 창업가들이 액셀러레이터라는 이름으로 창업생태계에 등장했다는 기사가 유독 많았다. 언론은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다이의 귀환>이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뭉친 히어로 집단 <어벤저스> 같은 프레임으로 접근했다. 이런 뉴스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와… 부럽다.’ 그리고 ‘저거 내가 지금까지 쭉 하던 건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뒤에 가서 설명하겠다. 



액셀러레이터의 등장 


2005년 창업가 출신이었던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은 자신의 모교 하버드대학이 위치한 보스톤 캠브리지에서 특이한 프로그램 하나를 시작한다. 이름하여 ‘Summer Founders Program’. 창업을 꿈꾸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여름 캠프였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투자할 만한 창업팀을 발굴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팀은 창업에 필요한 투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스타트업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용어가 된 ‘씨드 투자(seed funding)’의 개념이 이 프로그램에서 시작된다. 처음 시작된 생소한 프로그램이었지만 폴의 유명세 덕분에 모집 공고가 나간 후 10일만에 무려 227팀이 지원할 정도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폴은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개발자 출신으로 사용자가 직접 온라인에 상점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 비아웹(Viaweb)을 1996년에 창업한 후 1998년에 4900만 달러에 야후(Yahoo)에 매각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렇게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첫 해에 최종 선발된 8개팀 중 5개팀이 매각되는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진다. 세계 최초의 액셀러레이터로 불리는 와이컴비네이터(Y-Combinator)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와이컴비네이터 첫 번째 배치의 멤버들과 폴 & 제시카



와이컴비네이터는 사랑을 싣고


와이컴비네이터가 탄생한 배경에는 폴 그레이엄의 당시 여자친구 제시카 리빙스턴(Jessica Livingston)이 있었다. 회사를 매각한 후 새로운 일을 모색하던 폴은 어느 날 제시카의 이직 문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투자회사에서 경력을 쌓아가던 제시카는 그녀가 경험한 끔찍한 관료주의 같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창업을 하면서 투자의 어려움을 경험한 바 있던 폴은 기존의 방식과 다른 새로운 투자 형태(standardized branded form of funding)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고 이번 기회에 그녀에게 아예 새로운 투자회사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신개념의 펀드 'Cambridge Seed'가 탄생한다. 이 펀드는 폴이 10만불을 출자하고 친구인 로버트 모리스와 트레버 블랙웰이 각각 5만불을 출자하여 20만불로 시작하게 되었다. 엔젤투자 경험이 부족했던 폴과 제시카는 한 기업에 많은 금액을 투자하기 보다는 여러 회사에 소액을 분산투자하는 것이 리스크도 적고 자신들도 빨리 배우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이제 투자할 만한 창업팀들을 모을 수 있는 방법만 찾으면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Summer Founders Program’이었고 이것이 와이컴비네이터의 첫 ‘배치(batch)’가 된다. 폴과 제시카는 2008년에 결혼했다.  

제시카 리빙스턴(Jessica Livingston)



와이컴비네이터의 공로


세계 최초의 액셀러레이터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와이컴비네이터는 세 가지면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마땅하다. 먼저, 씨드 투자(seed funding)의 개념을 정리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투자유치는 참 어려운 얘기였다. 엔젤투자자가 없지는 않았지만 소수에 불과했고 창업은 손을 벌릴 수 있는 돈 많은 부모나 친척이 있어야만 가능한 분위기였다. (그러고 보면 요즘 대한민국의 창업가들은 대한민국에 태어난 걸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창업지원 프로그램이 워낙 많다 보니 조금만 공을 들이면 몇 천만원 규모의 지원금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는 시대이니 말이다. 규제가 발목을 잡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한반도 유사 이래 창업하기 가장 좋은 시절임에 틀림없다.) 투자를 하려고 해도 얼마를 투자해야 할지, 밸류에이션을 어떻게 계산해서 지분을 얼마나 받아야 할지 기준이 없었다. 어느 정도 실적을 가진 기업이라면 회계적인 기법으로 가치를 산정할 수 있겠지만 가진 거라고는 열정(passion)과 가능성 밖에 없는데 그 가치를 어떻게 평가한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사람’만 보고 투자하는 스타트업 투자자들이 가장 내공이 높은 투자자일지도 모르겠다. 특허나 지적재산권은 그나마 문서 쪼가리라도 있지만 같은 무형자산이라고 해도 형체도 없고 평가도 불가능한 열정과 가능성에 투자를 하니 말이다. 폴은 자신의 경험에서 해법을 찾았다. 비아웹을 창업했을 때 엔젤투자자에게 1만 달러를 투자 받는 조건으로 지분 10%를 내줬던 경험을 살려 선발된 모든 팀에 투자금액과 취득 지분율을 동일하게 적용했다. 


두 번째, 투자 대상기업을 모집하고 선발하는 방법을 정립했다. 모집 공고를 낸 후 지원자들을 나름의 선발 기준을 만들어 선발하고 수 개월 정도의 짧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기간에는 온전히 프로그램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높은 목표를 제시한 후 그 목표를 달성한 팀에 한하여 투자한다. 나중에 ‘배치(batch)’로 명명된 이 방식을 그 이후 등장한 전세계 거의 모든 액셀러레이터들이 그대로 복제(copy and paste)하면서 ‘액셀러레이팅 = 배치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다.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이 방식을 생각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폴과 제시카는 스타트업 투자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한 팀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보다는 여러 팀에 분산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을 선택했다. 투자 실패 위험을 낮추는 것이 기본 목표였던 것이다. 둘째, 투자 실패 위험을 낮췄다면 그 다음 목표는 그 안에서 투자 성공율을 높이는 것이다. 폴은 여기에 자신의 유명세를 활용한다. 하버드 컴퓨터공학 박사 출신의 개발자로서 나름 인지도를 쌓은 데다 창업과 엑싯까지 성공한 레퍼런스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런 프로그램을 오픈한다고 했을 때 생소한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실력있는 창업가들이 모여들었다. 그 결과 첫 번째 배치부터 환상적인 승률을 얻게 된다.


와이컴비네이터의 성공은 창업 열풍의 조짐이 있었던 전세계 주요 나라들을 자극했다. 성공적인 엑싯을 경험한 바 있는 창업가들은 폴과 와이컴비네이터 스토리에 열광했고 그 결과 와이컴비네이터의 (긍정적인 의미에서) 아류(亞流)들이 전세계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2010년도를 기점으로 드디어 대한민국에도 상륙한다. 어쩌면 이 세 번째가 와이컴비네이터의 가장 큰 공로일지도 모른다. 액셀러레이터 등장 이전까지 엑싯에 성공한 창업가들은 대부분 ‘자산가’로 변신했다. 엑싯한 자금으로 우선 안정적인 수익을 내줄 수 있는 부동산을 매입한다. 여행과 골프로 시간을 보낸다. 더러는 쾌락에 빠져 끝이 좋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런 변화는 비난할 게 아니다.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창업은 엄청난 고난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최소한 몇 년을 그렇게 버텨야 한다. 엑싯이라는 방법으로 그 고난의 행군에 대한 보상을 받고 이제 인생을 좀 즐겨보겠다는데 그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연쇄창업가 성향을 가진 소수를 제외하고 많은 경우 창업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고생길이다. 그런데 와이컴비네이터의 등장이 이들을 다시 창업생태계로 불러들였다. 선배 창업가로서 액셀러레이터가 되어 후배 창업가들을 육성하고 거기에 더해 투자 수익까지 얻을 수 있는 일이니 이 얼마나 명예로운 일인가. 액셀러레이터라는 업(業)은 이들의 명예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었다. 지금도 창업가들 중 상당수가 나중에 성공하면 자신도 액셀러레이터가 되고 싶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창업가의 다음 경력으로 액셀러레이터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액셀러레이터의 등장은 기존에 없었던 창업생태계의 연결고리 하나를 추가했다. 엑싯에 성공한 창업가가 자금 일부를 들고 다시 창업생태계로 들어와 가능성 있는 후배 창업가를 발굴해 투자하고 키운다. 사실은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였는데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체가 과거에는 없었다. 이 연결고리가 생기기 이전에 창업가는 바로 투자자와 연결됐다. 그래서 창업가는 돈으로만 평가되었다. 투자자에게 돈을 벌어줄 수 있느냐 없느냐. 액셀러레이터는 이 창업가가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는지,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비전과 포텐셜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본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자신의 창업 경험을 살려서 키운다. 투자수익은 그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보상일 뿐이다. 투자자가 투자수익에 방점을 뒀다면 액셀러레이터는 육성(育成)에 방점을 둔다. 액셀러레이터의 등장으로 창업가들은 이제야 제대로 된 가이드를 만난 것이다. 



알멩이와 껍데기


그렇다면 와이컴비네이터가 등장한지 대략 15년이 지난 지금 액셀러레이터는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을까. 일단 와이컴비네이터는 여전히 잘하고 있다. 하지만 와이컴비네이터를 능가하는 액셀러레이터는 아쉽게도 아직 없는 것 같다. 이유는 와이컴비네이터를 복제만 했지 그 이상으로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복제에 있었다. 알멩이는 복제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복제한 것이다. 액셀러레이터들은 와이컴비네이터의 투자방식과 배치 프로그램이라는 형식은 복제했지만 정작 본질은 복제하지 못했다. 와이컴비네이터는 선발된 팀들을 단기간에 스케일업(scale up)시킨다. 매주 7%라는 살인적인 성장률을 요구한다. 그 결과 배치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졸업한 팀들은 B.C.와 A.D.가 나누어지는 것처럼 다른 존재가 된다. 평범한 인간이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난 것처럼. 액셀러레이팅의 기본이자 핵심은 스케일업이다. 그런데 액셀러레이터들이 배치 프로그램에서 스케일업을 안 시키고 교육을 시킨다. 그것도 이론 교육을 시킨다. 커리큘럼을 만들어 이론 교육을 시키는 액셀러레이터는 그나마 낫다. 대부분은 데모데이(Demoday)를 위한 IR 피칭 교육을 시킨다. 배치 프로그램 과정 전체가 데모데이라는 무대에서 투자자를 한방에 설득시킬 수 있는 멋진 쇼를 연출하는 것에 맞춰진다. 데모데이는 액셀러레이팅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팀들을 다음 라운드의 투자자에게 연결하는 프로세스이지 쇼(show)가 아니다. 액셀러레이터 역시 쇼를 연출하는 이벤트 기획사가 아니다. 대규모 데모데이를 하는 액셀러레이터를 비난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시장의 주목을 받는 방법으로서의 이벤트는 나쁜 게 아니다. 그러나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액셀러레이팅의 성공 비법은 좋은 팀을 선발해 잘 키우는 것이다. 배치 프로그램은 와이컴비네이터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팀들을 모으고 선발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지 배치 프로그램 자체가 액셀러레이팅이 아니다. 좋은 팀을 선발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굳이 배치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된다. 그리고 뽑은 팀들을 스케일업 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면 배치 프로그램은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해서도 안 된다. 본질을 놓친 채 배치 프로그램과 데모데이에만 방점을 둔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창업가들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창업가는 인생을 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도전하는,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가장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얻을 것 없는 곳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리 만무하다. 화려하더라도 쇼는 반짝으로 끝난다. 쇼를 할 거라면 외적인 화려함이 아니라 액셀러레이팅 결과가 만들어낸 숫자만으로도 와우!하게 만드는 쇼를 하자. 이 얼마나 경제적이면서도 임팩트 있는 쇼인가. 



배치 프로그램은 정답인가 


배치 프로그램을 제대로 한다 하더라도 단점은 있다. 프로그램의 성격상 배치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 운영하는 액셀러레이터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3개월에서 6개월이다. 이 기간 내에 수치로 측정 가능한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이 기간에 목표 달성에 성공한 팀들이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계속 성공할까. 실제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와이컴비네이터를 성공적으로 졸업한 팀들 중 이후에도 성장 추세를 계속 이어가는 팀이 있는가 하면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팀도 적지 않다. 왜 그런 결과가 나올까. 첫째, 아무리 완벽을 기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설계한 프로그램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최선의 프로그램은 될 수 있어도 완벽한 검증 솔루션은 아니다. 고수는 첫 눈에 사람을 알아본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서 불과 몇 개월만에 사람을 판단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 환경의 제약을 받으면 인간은 초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전쟁 전략 중에 배수진(背水陣)이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 초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전략이 배수진인 것이다. 스타트업은 거의 항상 배수진이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항상 부족하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시간도 없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보는 것이 배치 프로그램의 목적 중 하나다. 그러나 전시(戰時)가 끝나고 평시(平時)로 돌아오면 초능력이 사라지는 게 또 인간이다. 따라서 배치 프로그램에서 제시한 수치적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것만 보는 것은 완벽하지 않은 방법이다. 오히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운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과도 결과지만 목표에 미달되었더라도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치열함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시간 제약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나쁜 방법은 아니어도 최선도 아니다. 이 방법은 성적순으로 우등생을 선발하는 학교 시스템과 물리적으로 동일하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학교에서 1등하던 친구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성공에 걸리는 시간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빨리 성공하는가 하면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인 사람도 있다. 와튼스쿨 조직심리학 교수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애덤 그랜트(Adam M. Grant)도 그의 책 <기브앤테이크>에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기버(Giver)는 이런 모델이 안고 있는 치명적 결함, 즉 재능을 가늠해 선별하는 것은 제대로 된 출발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현재의 배치 방식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와이컴비네이터가 배치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좋은 팀을 선발한다는 목표 아래 자신들의 상황에서 배치라는 방식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핵심은 좋은 팀을 선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을 발견한 액셀러레이터는 굳이 현재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각자에게 맞는 최선의 발굴 방법(deal sourcing/scouting)을 찾는 것이 앞으로 액셀러레이터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크립톤의 방식


내가 몸담고 있는 크립톤은 배치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다. 유망한 스타트업을 모집한다는 광고도 내지 않는다. 그 대신 ‘발품을 파는 전략’을 쓴다. 스타트업을 찾아 직접 현장을 누빈다. 회사 식구들에게도 사무실에 앉아있지 말고 현장으로 가라고 한다. 지금까지 이 업을 20년 해보니 좋은 원석을 찾는데 발품을 파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었다. 무작정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들어오는, 소개받는 팀들 중에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팀을 전략적으로 직접 찾아나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공부를 충분히 해야한다. 크립톤이 원하는 사업분야를 정하고 그 분야에서 어떤 준비가 되었는지 기준을 먼저 정해놓아야 한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하지만 그렇게 발굴한 팀들의 퀄리티와 성공 가능성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크립톤은 크립톤이 발굴한 스타트업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발굴 후의 프로세스도 다르다. 스케일업 프로세스는 정해져있지만 팀에 따라 맞춤형으로 설계한다. 먼저 액셀러레이팅 기간도 팀에 맞게 설계한다. 어떤 팀에게는 3개월이면 충분하고 어떤 팀에게는 3년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목표도 팀에 맞게 설계한다. 짧은 기간 배치 프로그램 후 졸업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팀이 액셀러레이터의 도움 업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때까지 무한 팔로업하는 게 크립톤의 방식이다. 그렇다보니 이변이 없는 한 관계가 깊고 오래 간다. 물론 담당 액셀러레이터에 따라 편차는 있을 수 있다. 최근에는 편차 없이 액셀러레이팅 품질을 고르게 하기 위한 내부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메이저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대부분 멘토로 참여해왔지만 크립톤은 2018년까지만 해도 의뢰가 들어오는 외부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은 하지 않았다. 2019년에는 실험 차원에서 외부 프로그램을 진행해보았다. 서울시의 소셜벤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했고 예탁결제원이 처음 진행한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현재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을 진행한 이유는 용역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크립톤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2019년 크립톤은 소셜벤처와 지역창업생태계 분야를 우선순위로 선정했었다. 좋은 업체를 선발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기 위한 실험적인 접근이었고 좋은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실험의 결과로 올해부터는 외부 프로그램을 1년에 최대 3개만 진행할 계획이다. 방식은 크립톤의 방향에 부합하는 프로젝트를 크립톤이 먼저 주도적으로 기획한 후 그 프로그램에 가장 맞는 파트너에게 제안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올해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는 기후변화다. 스타트업이 지구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으로서 지구온난화로 촉발된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집중해서 발굴할 계획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 많은 액셀러레이터는 다 어디에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