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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준 Mar 15. 2020

액셀러레이팅을 정의하다

세계 최초의 액셀러레이터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의 공로를 앞에서 세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씨드 투자(seed funding)의 개념을 정리했고, 투자 대상 기업을 모집하고 선발하는 방식으로 배치(batch) 프로그램을 고안했으며, 엑싯(exit)에 성공한 창업가들을 다시 창업생태계로 불러들였다. 그 결과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사실은 창업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앞으로의 창업생태계는 액셀러레이터를 중심으로 움직일 거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내가 액셀러레이터여서가 아니라 창업생태계의 생산자인 창업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면서 창업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영양분인 자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와이컴비네이터가 남겨둔 여지


이와 같은 공로와 함께 와이컴비네이터가 한 번 더 고마운 것은 후발주자들이 채워넣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는 점이다. 시작인 와이컴비네이터가 모든 걸 완벽하게 정리해 ‘A to Z’가 되었다면 후발주자들의 기여 욕구가 꺾였을지도 모른다. 첫 번째 여지는 씨드 투자의 개념을 정리하긴 했지만 그 방법이 1차원적이었다는 점이다. 와이컴비네이터는 배치 프로그램에서 최종 선발된 팀에 대해 일괄적으로 동일한 밸류와 투자금액을 제공한다. 이것은 편리한 방법이긴 하지만 마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반도를 분할 통치한 미국과 소련이 ‘관리의 편리함’을 목적으로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군사분계선을 만들어 남과 북을 분할통치한 방식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도 마찬가지다. 다른 대륙에 비해 유독 직선으로 된 국경선이 많은 이유는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1884년 베를린 회담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국경선을 그어 나눴기 때문이다.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단순한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앞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와이컴비네이터의 등장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은 좀 더 진화된 방법을 적용할 때가 되었다. 현실적으로 초기 스타트업이라도 다양한 단계가 있다. 완전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와이컴비네이터 방식대로 일괄 적용이 가능할 수 있지만 그 단계를 넘어선 스타트업들은 평가 기준이 여전히 마땅치 않다. 국내 기준으로 그런 스타트업들은 대개 20~30억 밸류를 적용 받고 있는데 그 기준이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아무도 논리적인 이유를 제시할 수 없다. 내재가치(intrinsic value) 평가로 유명한 세계 최고의 투자자 워렌 버핏도 스타트업의 내재가치는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업계 사람들끼리 하는 말이지만 비상장기업 투자 밸류에이션은 소위 '고무줄’이라고 한다. 그만큼 평가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조만간 어떤 고수가 등장해서 이 문제도 깔끔한 해법을 제시해주기를 바란다.


와이컴비네이터가 남겨놓은 더 큰 여지는 액셀러레이팅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5월 중소기업 창업지원법 개정안을 통해 액셀러레이터를 ‘초기창업자 등의 선발 및 투자, 전문보육을 주된 업무로 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다소 포괄적이다. 더 많은 참여자를 만들겠다는 의도도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한글로는 ‘창업기획자’라고 했는데 연예기획사 같은 느낌도 있고 촌스럽기도 해서 이 표현을 쓰는 경우는 많지 않고 외래어처럼 액셀러레이터 그대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글에서 나는 액셀러레이팅을 정의해보려고 한다.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란 액셀러레이팅(accelerating)을 하는 사람이나 조직일 것이므로 정확히는 액셀러레이팅을 정의하고자 한다.



스타트업 이전의 액셀러레이터


많이들 알고 있는 것처럼 창업 분야에서 사용되기 이전에 액셀러레이터라는 용어가 처음 쓰인 분야는 자동차였다. 줄여서 ‘액셀’. 한글로는 가속 페달. 운전석 밑 오른발 위치에 있는 부품으로 밟으면 차 속도가 빨라진다. 기술적으로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기화기(氣化器, carburetor)의 스로틀 밸브(throttle valve)가 열리면서 엔진의 회전수를 증가시키고 그 결과로 속도가 빨라지는 원리이다. 쉽게 말해서 액셀러레이터는 속도를 빨라지게 하는 장치이다. 그 다음에는 PC의 영역에서 사용되었다. 데이터 처리속도를 높이는 장치를 말하며 게임 매니아들이 즐겨 사용하는 그래픽 가속 카드(보드)가 여기에 해당한다. 역시 속도를 빨라지게 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동사 ‘accelerate’도 속도를 높인다는 뜻이다. 자동차의 속도를 빠르게 할 때,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속도를 빠르게 할 때 사용하던 단어가 이제는 스타트업에도 적용된 것이다. 그럼 스타트업에서는 뭘 빠르게 하는 것일까.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다. 이 즈음에서 스타트업을 포함해 모든 기업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성장 패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이론적으로) 기업의 성장 패턴은 시그모이드(sigmoid) 곡선 또는 S자 곡선을 따른다고 한다.



이 시그모이드 곡선을 전형적으로 따르는 주체가 또 있는데 바로 사람이다. 잠시 생물학 지식을 동원해보면, 채내에 존재하는 세포들의 수가 증가하거나 세포가 커지면서 그 개체가 성장해나가는 것을 생장(growth)이라고 한다. 시간에 따른 생물의 생장 정도를 그래프로 만든 것을 생장 곡선이라고 하는데 생물의 생장곡선은 S자형이나 계단형 둘 중 하나이다. S자형이든 계단형이든 공통점은 어느 한 기간에 생장이 폭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람은 S자형으로 나타나고 곤충 같은 경우는 허물을 벗는 변태 과정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에 계단형으로 나타난다. ‘생장’이라는 생물학적 용어를 ‘성장’이라는 경영학 용어로 바꾸면 사람이나 기업이나 모두 S자형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이란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또 하나의 생물체(인격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을 다른 말로 ‘법인(法人)’이라고 하는 것이다.
 
 

시그모이드 곡선은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누어진다. 초기에 완만한 성장을 보이는 구간(창업기)이 존재하고, 그 구간을 지나면 빠른 속도로 급격하게 성장하는 시기가 나타나며(성장기), 성장기를 지나면 다시 성장률이 완만해지는 구간(성숙기)으로 진입한다. 앞에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는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스타트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은 시그모이드 곡선 형태로 성장한다는 걸 알았다. 시그모이드 곡선의 핵심은 급격하게 성장하는, 다시 말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구간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액셀러레이터를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다. 액셀러레이터는 기업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시키는 조직 또는 개인이다. 그렇다면 이제 두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기업에 액셀러레이터는 필요한가. 그리고 꼭 필요한가.



액셀러레이터는 필요한가


사람이나 기업이나 시그모이드 성장 곡선을 따른다는 얘기는 앞에서 했다. 그런데 사람과 기업의 차이점은 사람은 특별한 장애가 없는 이상 대부분 시그모이드 곡선을 따르는 반면 기업은 시그모이드 곡선을 따라 성장하는 게 무지무지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 성장은 기본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노력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기업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연도별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들의 영아 사망률(2015년 기준)을 나타낸다. 의술의 발달 덕분에 이제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들도 98.3%의 확률로 살아남는다.



다음 그래프(중소벤처기업부 2018년 통계)는 국내 기업의 창업 후 연도별 생존율을 나타낸다. 실제로는 그보다 못 미칠 것이라 생각하지만 낙관적으로 보아도 국내 기업은 창업 3년 후 생존 확률이 39.1%에 불과하다. 창업 3년 후 60%는 죽는다는 것이다. 엄청난 사망률이 아닐 수 없다. 스타트업에게 성공은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실패가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뜻이 된다. 이것이 바로 액셀러레이터가 필요한 이유다. 스타트업에게는 생존율을 높이고 성장 단계로 진입하게 할 수 있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에게 생존의 노하우를 전수해줌으로써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성장기로 진입하게 한다.   




액셀러레이터는 꼭 필요한가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업에게 액셀러레이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액셀러레이터 없이 혼자서 잘 성장하는 곳들도 적지 않다. 이미 창업 또는 경영의 노하우를 터득하고 있는 곳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런 곳들이라면 굳이 액셀러레이터를 거치지 않아도 되고 자금이 필요한 경우 벤처캐피탈로 직행하면 된다. 또 좌충우돌하며 몸으로 직접 배우는 성향을 가진 창업가들에게도 액셀러레이터는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야생에서 몸으로 직접 체득하는 것만큼 좋은 학습은 없다. 그러나 창업을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싶다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다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성장하고 싶다면 액셀러레이터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물론 그만한 역량을 가진 액셀러레이터를 만나야 한다.


정리해보면,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은 창업의 노하우를 전수해줌으로써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여기서 액셀러레이터 평가 지표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첫째, 액셀러레이터는 포트폴리오 기업의 생존율로 평가받아야 한다. 액셀러레이터가 역할을 잘했다면 통계적인 생존율보다 포트폴리오 기업의 생존율이 상당히 높아야 한다. 둘째, 포트폴리오 기업 중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기업의 비율로 평가받아야 한다. 액셀러레이터도 투자자이기 때문에 모든 투자자는 손 안 대도 처음부터 알아서 잘하는 팀만 뽑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러나 알아서 잘 하는 팀만 뽑을 거라면 액셀러레이터의 밸류는 없다. ‘덕분에 저희가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액셀러레이터가 포트폴리오 기업에게 들어야 할 평가는 이게 아니겠는가.



스타트업에만 액셀러레이터가 필요할까


그렇다면 액셀러레이팅은 스타트업에만 필요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액셀러레이팅의 핵심은 기업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기하급수적인 성장은 스타트업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상 모든 기업이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필요로 하고 원한다. 한 때 성장을 구가했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정체에 빠진 기업이 부지기수다. 특히 산업의 틀 자체가 바뀌는 지금의 시대는 모든 전통 기업들이 정체 상태이기 때문에 성장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액셀러레이팅은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원하는 모든 기업에 필요한 것이다. 스타트업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최초의 액셀러레이터로 평가받는 와이컴비네이터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액셀러레이팅을 했기 때문에 액셀러레이팅은 스타트업만을 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을 뿐이다. 따라서 이제는 액셀러레이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액셀러레이팅은 성장 포텐셜(potential)을 가진 대상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배치(batch)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액셀러레이팅이 아니다. 액셀러레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시키는 전문가 집단 또는 개인을 말한다. 기업의 성장 단계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스타트업에게 가장 효과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크립톤은 액셀러레이팅 대상을 스타트업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스타트업도, 중소기업도, 대기업도 성장을 열망하고 성장 포텐셜이 남아있다면 모두 액셀러레이팅 대상이 된다. 그래서 크립톤은 모든 단계의 기업을 액셀러레이팅하는 ‘엔터프라이즈 액셀러레이터(enterprise accelerator)’를 표방하고 있다.


사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크립톤 역시 초기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그런데 이변이 없는 한 크립톤은 한 번 인연을 맺은 기업은 평생 같이 간다는 철학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미 성장기로 접어든 포트폴리오 기업도 계속 도움을 요청해왔고 그 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코스닥에 진입한 후에도 도움을 계속 요청해왔다. 성장하더라도 더 성장해야 하는 욕구가 있고 성숙기로 접어들었다면 다시 성장해야 한다는 필요가 있으니까.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포트폴리오 기업을 지원하려고 노력하다보니 기업의 모든 성장단계를 다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이 아닌 대상도 크립톤은 액셀러레이팅 하고 있다. 가장 최근 사례는 지역창업생태계이다. 지역의 창업생태계 자체가 액셀레이팅 대상이다. 내가 지금까지 발굴해 상장까지 성공한 기업들의 대다수는 비수도권 기업이었다. 지역에도 훌륭한 기업들이 많이 있지만 과거에는 수도권과 다르게 자본시장에 대한 정보와 네트워크가 거의 없었다. 지난 20년동안 지방 출장을 많이 다니면서 지역경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 20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지역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과거 지방은 대기업의 생산공장과 그 협력업체들이 명실상부하게 경제의 주체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대기업 자체가 어려워지고 생산공장도 해외로 이전하면서 소위 지역경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역을 먹여살리는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여기에 급격한 인구 감소 현상까지 겹치면서 지역 경제를 떠받칠 수 있는 대안이 없어졌다. 내가 볼 때 남아있는 유일한 대안은 지역에 창업생태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즈음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전정환 센터장이 도움을 요청해왔다. 몇 년간의 노력을 통해 창업의 불모지였던 제주에서 창업가를 만들어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중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창업가들을 다음 단계로 성장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크립톤이 힘을 보태게 됐다.


크립톤의 제주 지역창업생태계 액셀러레이팅 전략은 4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지역에 거주하거나 지역 출신의 투자자들을 모아 지역의 초기 스타트업에만 투자하는 펀드를 만든다. 그 다음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추천한 기업을 중심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해 액셀러레이팅 한 후 그 기업들이 성장해 시리즈A 단계의 투자는 수도권의 메이저 투자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게 한다. 제주에서 키우고 큰 돈은 서울에서 받아와서 제주에서 쓰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면 지역에 스타트업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를 만든다.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지역에 창업가들이 모이는 거점을 만들어 폭발시키는 전략이다. 이 단계에서 크립톤의 접근법은 지역의 구도심에 코워킹스페이스를 만들고 이 공간에서 육성된 팀들이 주변에 흩어져 창업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창업생태계와 지역재생을 융합하는 접근법이다. 현재 제주는 이 단계를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 단계는 글로벌과 연결하는 것이다. 우리 생각이 잘못된 것이 글로벌과 연결되려면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서 로컬과 로컬이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것이 새로운 세계화의 방식이다. 분산형 세계화인 것이다. 제주는 먼저 동남아시아와 연결하려고 한다. 제주에서의 실험이 성공했기 때문에 2019년은 강원도로 지역을 확대했고 계획에는 없었지만 부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 창업생태계 육성의 비전을 가지고 있던 한국예탁결제원의 강력한 요청으로 부산, 울산, 경남 지역도 시작했다.



인큐베이팅은 액셀러레이팅과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인큐베이팅과 액셀러레이팅은 어떻게 다를까. 지금은 인큐베이팅과 액셀러레이팅이라는 용어를 혼용해서 쓰고 있는 게 사실이다. 창업 초기기업의 성장을 지원한다는 관점에서는 인큐베이팅이나 액셀러레이팅이 같을 수 있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다르게 보아야 한다. 아쉽게도 20년 전 인큐베이팅 업계도 지금의 액셀러레이팅 업계처럼 자신의 업에 대한 본질적인 정의를 하지 못했다. 


한국경제신문이 만든 한경 경제용어 사전에는 인큐베이터와 액셀러레이터가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인큐베이터는 초기 단계 기업에 필요한 사무공간 또는 사업 관련 멘토링을 제공해주는 단체를 말한다. 스타트업이 스스로 사업을 할 수 있을 떄까지 관리해주는 게 인큐베이터의 주목적이다. 마치 아기를 키우는 보육기(인큐베이터)와 역할이 비슷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액셀러레이터는 어느 정도 성장한 스타트업이 사업을 한 단계 가속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다. 투자유치 컨설팅, 사업설계 지원은 물론 투자에도 직접 참여한다. 자동차의 가속장치(액셀러레이터)에서 명칭을 따왔다.’ 


나쁘지 않지만 인큐베이터의 개념 정리가 좀 아쉽다. 인큐베이터라는 용어가 아기를 키우는 보육기에서 유래한 것은 맞다. 그러므로 인큐베이터의 역할과 기능에서 정의를 추출해낼 수 있다. 두산백과사전에는 인큐베이터가 ‘체중 2kg 이하의 미숙아 및 치아노제, 호흡장애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는 신생아를 수용하는 산소공급기가 달린 격리 보온기기’로 정의되어 있다. 1880년 프랑스 산부인과 의사인 에티엔 스테판 타르니에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인큐베이터는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보았던 닭 부화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리는 매우 단순하지만 인큐베이터의 발명으로 지금까지 수 백만명의 갓난아기들이 목숨을 구했다. 인큐베이터의 주 기능은 엄마 뱃속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미숙아의 경우 몸의 특정 기관이 제대로 다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수준으로 다 자랄 때까지 엄마 뱃속과 가장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무사히 인큐베이터를 졸업하면 엄마 젖을 물려주면서 본격적인 성장을 준비하게 된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이 인큐베이터 졸업하는 시점은 언제로 보아야 할까. 스타트업이라는 인격체의 기본은 뭘까를 생각해보면 된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검증되지 않은 스타트업에게 ‘기본’은 뭘까. 시리즈A나 B단계에 도달한 스타트업이라도 좀 더 성장했을 뿐 여전히 부족하긴 마찬가지일 텐데 말이다. 나는 스타트업의 기본을 ‘팀(team)’으로 본다. 팀이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을 말한다. 피터 드러커가 지적한 대로 20세기의 창업가는 혼자서 원맨쇼를 하면서도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21세기에 성장하고자 하는 조직에서 팀 구성은 필수이자 기본이다. 몸에 필요한 각 기관이 있어야 정상적인 성장이 가능하듯 기업에는 각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어야 성장이 시작될 수 있다. 그래서 크립톤에서는 팀이 구성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인큐베이팅과 액셀러레이팅의 구분선으로 본다. 사업모델과 수익모델이 갖추어져 있고 심지어 돈을 벌고 있다 하더라도 팀이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면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가 없다. 팀이 구축되지 않은 스타트업은 팀이 구성될 때까지 인큐베이팅이 필요하다. 기하급수적인 성장은 기본이 갖춰진 다음에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액셀러레이팅은 기하급수적인 성장에 방점을 둔다. 그렇게 성장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스타트업이 아니어도 되고 기업에 국한될 필요도 없다. 비영리기관도 액셀러레이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액셀러레이팅의 효과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대상이 스타트업일 뿐이다. 이제는 액셀러레이터가 스스로의 본질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일에 임하자. 21세기에 세상을 변화시킬 주체는 명실상부하게 기업이라고 확신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창업가와 기업가라면 이들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가이드이자 런닝 메이트는 액셀러레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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