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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샘 Mar 18. 2022

무인도에서 살아남기(1)

정글의 법칙보다 우리가 먼저!


I-Project

언제부턴가 고2 남학생 사이에 오르내리던 비밀 주제였다. 아무도 모르게 비밀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것은 바로 무인도 탐사 프로젝트다. I-Project의 I는 Island의 첫 글자이고, Island는 다름 아닌 무인도다. 무인도는 아무도 살지 않는 섬을 말하는데 그 말은 비상시에 도움을 구할 곳이 없다는 뜻이다. 음식이나 생필품을 구할 수 없기에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울 수도 있다. 10.28일이 디데이다. 이미 밤 추위는 코앞까지 왔다. 때로는 야생동물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에 위험하기 그지없다. 주위의 반대가 심할 것 같아 입소문을 내지 않기 위해 더욱 비밀 프로젝트로 진행했다.


토종닭 네 마리

중간고사를 마친 날 오후가 무인도 탐험 출발일이다. 한 달 동안 서로 입을 맞춰 비밀리에 준비했던 체험학습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괜히 흥분되었다. 친구들끼리 섬으로 차를 타고 놀러 가는 경험은 많이 해보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인도에 가본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될까 궁금했다. 무인도 탐험을 떠날 것을 손꼽아 기다리다 보니 중간고사 시험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떻게 시험을 봤는지도 모르게 시험은 안중에도 없었다. 무인도로 떠나는 체험학습이었기에 여러 가지 준비할 물품들이 많았다.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물품은 2개뿐이었다. 텐트와 침낭, 취사도구, 낫과 삽, 낚싯대 그리고 식량은 교사들이 준비했다. 그중에서도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남는 준비물은 토종닭이었다. 살아있는 토종닭 4마리를 자루에 담아 배에 실었다. 푸다닥 거리는 토종닭을 가져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프로젝트의 취지와 방향을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오후 3시. 육지에서 지도를 보여주고 무인도에 데려다 줄 선장님을 미리 섭외했다. 육지를 떠난 배는 20분쯤 지나자 지도에 표시된 곳에 다다랐다. 지도는 영화에서처럼 칼라 프린트를 해서 둥글게 말았더니 해적선의 보물 지도 같았다. 저 멀리 무인도가 보이자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처럼 배에서 뭍으로 힘차게 뛰었다. 순간 발목까지 물이 차올라서 신발이 바닷물에 흥건히 젖었다. 그것도 잠깐 무인도를 점령했다는 생각에 깃발이라도 꽂고 싶었다. 태어나서 처음 무인도 땅을 밟아본 팀원들은 모두 감격스러워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을 만끽하는 것 같았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우리를 태웠던 선장님은 3일 후에 다시 온다 하고는 금방 배를 돌려 떠났다. 팀을 무인도 정찰팀, 식사 준비팀, 텐트 설치팀으로 나눴다. 무인도라고 했지만 우리처럼 야영하는 팀들이 오갔던 흔적들이 있었다. 섬 모양은 길쭉한 새우튀김과 같은 모양으로 돌과 바위가 많았다. 충격적인 것은 해안가에 가득한 인간이 만들어낸 쓰레기였다. 사람이 남긴 흔적들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정찰 나갔던 팀이 돌아와 섬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다 같이 모여 텐트 치는 것을 도왔다. 바닷바람은 춥고 10월 말 밤은 따갑게 살을 때렸다. 어설프지만 밤에 동그랗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우리들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톱과 도끼로 산에서 나무를 잘라 끈으로 묶어 모래 위에 기둥을 세웠다. 멋진 펜션에서 가을 바닷가의 낭만을 느끼며 밤하늘을 보는 요즘의 여행과 완전히 대비되는 탐험이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가 시작된 것이다. 생전 처음 원시적인 방법으로 집 짓기를 시작했다.


집을 튼튼하게 짓지 않으면 저녁 추위에 떨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일개미와 같이 성실하게 일했다. 가져간 비닐로 성벽과 같이 바깥쪽을 두르자 제법 그럴싸하게 아지트가 완성되었다. 물론 지붕은 밤하늘로 덮여 뻥 뚫려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바람이 노크 없이 놀러 왔지만 우리가 만들었다는 자부심에 위대해 보일 뿐이었다. 일류 건축가가 된 기분이랄까. 사람은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 결과가 어떻든지 보람을 얻고 기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 학생이 고백한다.


어느덧 해는 저물었다.

무인도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걸작이다. 바닷물을 빌려서 맛있는 저녁식사도 만들어 먹었다. 그 어느 때보다 배부른 저녁이었다. 아지트 중앙에 주워온 나무로 모닥불을 피우고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파도 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삼고 별빛을 조명 삼자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무인도가 떠나갈 듯 박장대소하며 웃는 일이 반복되자 산짐승들이 놀라 자리를 피하는 것 같았다.



고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을 들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옷을 여덟 겹을 껴입었다. 그럼에도 바닷바람은 역시 매서웠다. 새벽에 세 번이나 추위로 인해서 잠을 깼다. 그때마다 추위가 주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했다. 따뜻한 방바닥이 그리워졌다.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생활했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몸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밤새 추위와 사투했음에도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싶었나 보다. 몇 명은 깨우지 않았음에도 저 멀리서 아침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명은 준비해온 대나무 낚싯대에 미끼를 달아 바위 위에 올라가 바다와 결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바다는 넓고 깊었고 고기는 생각보다 영리했다. 입질만 하고 도망치기 바쁜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와~! 잡았다!!”

“진짜! 뭔데?”

“우럭인가?”

“아냐, 이건 망둥어야!”

“회 쳐 먹자!”


생전 처음 바다낚시를 하던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모두 물고기를 보려고 뛰어간다. 잡은 물고기를 보며 신기해한다. 그리고는 놓으려던 낚싯대를 다시 움켜쥔다. 고기를 못 잡아 실망하던 눈빛은 사라지고 한 마리라도 잡으려고 초집중한다. 결국 처음 해보는 대나무 낚시임에도 모두 예외 없이 물고기를 잡았다. 큰 물고기는 회를 떠서 우리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바위에 붙어사는 굴은 가져간 칼과 호미로 따내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맛이 기가 막혔다.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수렵과 채취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등 뒤가 오싹해지는 순간

점심을 먹고 채의, 태현 그리고 다솔이와 무인도 탐험을 나섰다. 어제 섬을 정찰했던 친구들에 의하면 무인도 크기가 생각보다 크다고 했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생각보다 산은 험란했다. 길인가 싶더니 정글과 같은 숲이 우릴 가로막았고 곳곳에 깊은 낭떠러지가 우리를 막아섰다. 바닥은 돌멩이로 가득했다. 앞만 보고 가다가 돌부리에 넘어졌고 바닥만 보고 가다가 나뭇가지에 눈을 찔렸다. 가져간 낫이 없었다면 정글을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겨우 무인도 반대쪽에 도달했다. 그제야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돌아올 때는 해변 가를 따라 편하게 복귀하려고 했다. 그러나 밀물로 바닷길이 막혀버려 산을 다시 탈 수밖에 없었다. 왔던 길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 듯 없어져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돌아가는 산길은 더 가파르고 위험했다. 몸을 완전히 숙인 채로 암벽등반을 해야만 겨우 한 걸음 움직였다. 눈앞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높은 산과 우거진 가시나무 넝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라 동물들이 지나가는 길이었다. 사슴과 멧돼지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해는 지고 있었기에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무조건 전진하는 길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앞장서서 풀을 해치며 길을 만들었다. 점점 몸은 지쳐만 갔고 쉬어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순간순간 우리가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선생님도 지쳐가고 있었고 때론 길을 헤매는 것 같았다. 꽤 오랜 시간을 헤매면서 넝쿨에 넘어지기도 하고 가시에 찔려서 고통스럽기도 했다. 베이스캠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염려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길을 잃고 헤맬 때 갑자기 등골이 오싹하는 소리가 들렸다.

“푸드덕!!”  “타타~탁”


갑자기 등 뒤에서 나는 소리에 공포에 빠져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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