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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TH May 29. 2021

셋째,

  막내다. 마지막으로 태어나고 싶어 한 적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셋째가 태어났을 때에 모두 셋째를 환영했다. 9개월 만에 걸음마를 시작했고, 그게 온 가족이 손뼉 치고 기뻐할 일이라는 사실에 여전히 자부심이 넘친다. 실컷 놀다가도 할아버지가 부르면 그 방에 들어가서 팔씨름을 해드렸고, 할머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부모님은 막내가 키가 작을 것을 염려해 성장판이 2센티가 남았을 때 비싼 한약을 먹였고, 그래서 겨우 170센티를 넘지 않았나 싶다.

첫째와 둘째 둘은 셋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셋째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의 냉정한 반응을 견뎌내야만 했다. 엄마는 항상 셋째 편이다. 맛있는 것도 셋째를 위해 남겨놓고, 집에서 셋째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잠이 든다. 요구한 적은  번도 없다. 당연한 일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어리다는 이유로 첫째, 둘째는 셋째를  무시했다.  모르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셋째를 한심스러워했다. 셋째에게는 첫째의 관심이  막히는 비난처럼 들렸고, 둘째의 한숨이 무시와 냉랭함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괜찮다. 셋째에겐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첫째둘째 둘은 항상  팀이고, 셋째는 항상 엄마 아빠와  팀이었다. 어릴 적에 과외도 제일 많이 했다. 첫째와 둘째를 키워본 부모님은 셋째에게는 아까워않고 돈을 들였다. 마침 그때는 아버지의 사업이  잘되고 있을 때였다. 셋째는 첫째, 둘째보다 많은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소중하지는 않았다. 셋째에게는 기회보다 친구가 소중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온 친구들이 가족보다 소중하다. 여름휴가는 가족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다. 왜냐하면 친구는 나를 온전히 동등한 존재로 대해주기 때문이다. 셋째가 막내로 사는 것도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가르침 속에서 뭐가 진짜인지 내게 맞는 가르침이 무엇인지 분별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자라왔다. 살아오며 나를 가르치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셋째는 존중받고 싶었고, 어른이 되고도 어른 대접을 받고 싶었다.

첫째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남들과 똑같이 살고 있다. 둘째는 자신만의 선택을 했다. 왜 그 선택을 했는지는 둘째만 안다. 나머지 가족들은 모른다. 셋째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남의 인생을 참견할 만큼 셋째도 여유롭지는 않다. 셋째는 첫째와 같이 현실적이지만도 않고, 둘째와 같이 마이웨이도 아니다. 어느 정도 내길을 가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항상 찾는다. 셋째에겐 늘 시간이 있으니까.

먼저 경험하는 첫째와 둘째를 보며, 내게 유익한 것을 찾아낼 시간이 있다. 그래서 셋째는 잘 안다. 누가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말이다. 살다 보니 도움되는 사람이 많이 것이 중요하더라. 셋째는 주변에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 사람들이 어쩌면 나를 이끌어줄 수도 있겠다고 믿기 때문이다. 셋째에게 가족은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잊힐 때 즈음 한 번씩 얼굴을 내밀어주는 곳이 가족이다. 가족은 그래도 된다. 가족이니깐.  


가족이 있어도, 친구가 있어도, 내가 살아갈 길은 나 혼자 찾아야 한다. 여러 정보를 통해 가장 좋은 길을 찾고,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은 셋째가 가장 잘하는 것이다. 대학을 갈 때도 똑똑한 둘째는 4년제 대학을 가라고 했다. 첫째는 빨리 돈을 벌라고 했다. 셋째는 4년제 대학을 갔으나, 중간에 자퇴하고 전문대학으로 편입했다. 주변에 조언자가 많다는 것은 머리 아픈 일이다. 첫째와 둘째는 항상 빨랐고, 셋째는 느렸다. 급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공부도 관계도 인생도 느긋했다. 셋째만의 방식으로 직장을 구했다. 어려운 시간을 겪었지만 원하는 회사에 합격했다. 조금 늦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엄마 아빠의 자랑이다.


셋째는 지금도 계산 중이다. 누나들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되었었나......



아들러 상담자는 삼 남매의 가족 구도를 어린아이와 나이 든 형제(첫째와 둘째)가 있는 가족으로 본다. 이때 막내는 한 자녀 가정의 외둥이처럼 길러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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