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둘째는 급하게 지나가는 구급차를 보았다. 8시도 되기 전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왠지 둘째는 사이렌 소리가 나는 구급차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학교를 발길을 돌린다. 지각은 안된다. 둘째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공부도 공부지만 착하고, 원칙을 잘 지켜서 문제 될 것이 없는 학생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를 향해 가지만,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다.
할아버지는 1년 전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로 알코올 중독이었다. 소주는 항상 할아버지의 방에 있었고, 할아버지가 부르면 첫째와 둘째는 장미나 88 담배를 사러 갔다. 배우자의 죽음은 그 사람에게 가장 큰 트라우마라고 하는 걸 둘째는 대학원에 가서야 알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둘째를 불렀다. 집으로 가라고 했다. 어안이 벙벙한 둘째는 집에 가려고 가방을 싸다가 첫째의 반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첫째와 같이 가려고 했는데 첫째는 조퇴란다. 치과에 갔다고 한다. 둘째는 혼자 가방을 싸서 학교를 나간다. 일단 집으로 갔다. 집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장례식 장으로 갔다. 둘째는 그때 알았다. 아침에 학교 가면서 본 구급차가 우리 집을 향하는 길이었다는 것을.
친척들이 모이고,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첫째도 왔다. 불과 1년 전 할머니는 육교를 건너다 뺑소니를 당하셨다. 아마 명절이 가까워왔을 때 즈음이었다. 할머니는 밭에서 키운 야채를 육교 아래에서 내다 팔았고, 그 돈으로 우리 줄 바나나를 항상 사 오셨다.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할머니의 손에는 항상 바나나가 있었다. 그날도 할머니는 육교 아래에서 장사를 하셨고, 집에 오기 위해서는 육교를 건너셔야 했다.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어서 일어나기도 힘드셨던 할머니는 육교 아래로 무단횡단을 하셨고, 어떤 차는 할머니를 치고 가버렸다. 뺑소니 차량을 잡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할머니의 바나나가 그리웠던 기억만이 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한평생을 싸우셨으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자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 술에 의지해 정신이 멀쩡한 때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삼 남매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주로 대하셨다. 남자가 우선인 집에서 태어났으니, 손주도 우선인 집이라 삼 남매는 늘 할머니에게 1등이었다. 할아버지가 술을 마시면서도 웃음을 지었던 때가 있다면 막내와 팔씨름을 하시던 때였으리라. 막내는 하기 싫어도 늘 팔씨름을 해 드려야 했고, 술안주도 함께 먹어야 했다. 조금 더 큰 첫째와 둘째는 그때부터 할아버지를 셋째에게 미루기 시작했고, 차라리 엄마의 집안일을 돕는 게 낫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되었다. 셋째는 자신의 할 일을 했고, 가끔 용돈도 받았다. 그런데 첫째와 둘째는 그게 할아버지의 마지막 날에 자신들의 죄책감이 될지는 상상도 못 했었다. 할머니 때는 놀라서 눈물이 났는데 할아버지 때는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엄마도 울고, 아빠도 울고, 첫째도 울고, 둘째도 울었다. 자주 함께 했던 막내가 울 줄 알았는데 막내 빼고 모두가 울었다. 아마도 미안했나 보다. 힘들고 미안한 건 항상 같이 온다. 몸이 힘들면 미안해진다. 내 몸 챙기는 건 당연한데 왜 가족은 미안해지는 건지. 가족은 다 울었다. 울고 울고 또 울어서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이 됐다. 그때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할아버지가 참 야속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는 잘못이 없었다. 배우자를 떠나보낸 그 허망한 마음을 술 외에는 달랠 곳이 없었다. 잘못은 우리가 한 게 맞는 걸까. 둘째는 죄책감에 대해서 이때부터 생각했다. 잘못한 사람이 죄책감을 갖게 되는 걸까. 미안한 사람이 죄책감을 갖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