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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TH Jun 28. 2021

너는 어때

둘째의 직업

선생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봬요

네, 고생하셨어요 조심히 가세요  


내담자를 보내고 잠시 자리에 머무른다 내담자를 보내고 나면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온 마음과 정성을 한 사람에게 쏟은 후에는 더 이상 집중할 에너지가 없다  심리상담은 둘째가 하는 일 중 제일 좋아하는 일이다 물론 직장은 따로 있다 프리랜서로 상담을 하고 있는 둘째는 퇴근하면 다시 새로운 일의 시작이다

ENTP 유형은 10초에 하나씩 아이디어가 새롭게 떠오른다고 한다  이들에게 직장이 두 개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공도 두 개다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과 실제로 해내는 추진력이 이 유형의 특징이다  끝까지 해낼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매 순간 떠오르는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어찌할 줄 몰라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는데 시간을 내야만 한다 둘째는 자신의 유형에 만족한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빠른 느낌과 생각들이 머릿속에 지나갈 때마다 붙잡으려 애를 쓴다  50분 안에 누군가의 마음을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  둘째는 심리상담을 할 때마다 멈추어 설 수 없음이 아쉽다 10초만 주면 되는데 그 10초가 어찌 된 일인지 일대일의 관계에서는 10년처럼 길다  생각을 환기하는 시간을 내야겠다 생각했고 둘째는 상담이 끝나면 꼭 녹음기로 자신의 생각을 메모한다


너는 어디 가서 네 이야기를 해?

오래된 친구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둘째가 다시 깊숙이 있는 내면의 아이에게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 최근에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런 질문은 관심 없이 존재 감 없이 살아가던 둘째의 내면의 아이를 다시 깨운다 더없이 느리고, 바보 같은 그 아이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아무도 찾지 않고 존재감도 없는데 고개를 돌릴 때마다 무서울 정도로 항상 거기에 있다  둘째는 내면의 아이에 관심이 없었었다 그 아이의 기분이 어떤지, 어떤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지, 상담일을 하면 자연스레 타인의 감정, 기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가끔씩 내면의 아이를 누군가 깨울 때마다 둘째는 당황한다 관심밖에 있던 아이는 관심을 받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  누구에게 이야기하냐는 질문에 둘째는 다시 어색한 내면의 아이를 깨워야만 했다


그 아이는 항상 깊숙한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움켜 안은채 위축되어 있었다 누군가 발견해 주지 않을까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둘째는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은지 오래다 공부를 하면서  수없이 말을 걸었었는데 끝나니 아이는 또 혼자가 됐다 쓸쓸함이 익숙한 듯 그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찾을 때까지 고요하게 있었다


둘째는 이미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귀찮아진 지 오래다  묻는 것도 별로다 들을 마음이 없으면서 묻는 건 별로다 내면의 아이에게 시선을 달라고 한 적은 없다 그게 되려 불편한 일이니까

둘째는 오랜만에 내면의 아이에게 말을 건다


너는 어때? 



어떻냐는 질문은 좋은 질문이다  열린 질문이라고 말하는 질문은 상대방을 생각하게 하고 늦은 대답을 요하기도 한다 둘째는 알고 있다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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