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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TH Jul 24. 2021

너를 생각하고 있어

I'm thinking about you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잖아!

 다 너를 사랑해서 하는 말이야!


살아오면서 둘째는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무 말이나 막 해놓고,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사랑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둘째가 냉소적이 된 이유는 이런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만 서로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겉으로 하는 비난은 속으로는 생각해서란다. 한때 너무 진절머리가 났다.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면 끝난다. 사랑해서 한 말이라고 하면 끝난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아니다.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다가오지 않는다. 지나가서 그 마음을 알 때까지 수년, 아니 수십 년 동안 그 사람은 괴롭다. 말은 참 중요하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말이 많은 것은 좋지 않다. 상담사로 살면서도 느끼는 것은 말이 많은 것은 좋지 않다. 말만 줄여도 우리는 대부분의 실수를 줄일 수 있고, 침묵만 견뎌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느낄 시간을 벌 수 있다.

첫째 둘째 셋째는 모두 말에 서툴다. 말을 줄여야 할 때에 말이 많아진다. 셋이 함께 있으면 항상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가 커진다. 어릴 때부터 함께 모여 시끄러운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셋의 집은 항상 시끌벅적했으니깐. 언제부턴 데 함께 있으면, 말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지면,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말만 느껴지고 그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꼭 이유를 말해야 한다. 다 너를 생각해서. 다 너를 사랑해서야.

마음이 통하면 변명할 필요가 없다. 어릴 때는 변명할 필요가 없었다. 서로 솔직했으니깐. 아프면 아프다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 말하면 됐었다.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좋을 때는 좋다 말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분위기로 알았다. 마음으로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서로의 마음을 알기가 어려워졌다.


침묵이 필요한 때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침묵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필요 없는 말을 많이 한다. 물론 둘째도 그렇다. 침묵을 잠시만 참으면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데 못 참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내담자들이 보인다. 20살이 넘으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20살이 넘으면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도 질 줄 알았다. 그런데  20살은 그렇게 못했다. 20살은 아직 어른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 둘째는 20살이면 어른이라고 생각했을까. 드라마에 나오는 20살들은 다 어른스럽고, 자신의 일을 알아서 결정하기도 하고, 책임도 지던데 둘째의 삶을 그렇지 않았다. 20살인데 용돈을 받아야 했고, 20살인데 어디갈때에도 허락을 받아야 했고, 해외라도 나갈 때면 그렇게 가족이 발목을 잡았다. 둘째는 사람을 돕고 싶었고, 이타적으로 살고 싶었다

2005년이었다. 해외봉사를 처음 나가겠다고 다짐했던 때가. 열심히 준비해서 타국으로 나가보고 싶었다. 다른 세상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모험과 위협으로 가득한 곳에 가서 사람을 돕는 게 무언지 알고 싶었었다. 물론 가족은 둘째를 말렸다. 평생 엄마 말씀을 안 들은 적이 없는 둘째는 가장 냉소적이고 고집스러웠던 비밀스러운 곳에 암묵적으로 숨겨놓았던 대나무 같은 근성을 끄집어내어 출국하기 전날까지 붙잡고 있었다. 출국하기 한 달 전 둘째가 가려던 곳에 쓰나미가 몰려왔다. 뉴스에도 나오고,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둘째는 그래도 가고 싶었다. 가야 했고, 가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대나무 같았던 그 비밀스러운 근성은 하루 전날 꺾여 버렸다. '다 너를 생각해서 그래..' 이 말 한마디 때문에.  


인생에서의 좌절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무언가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이에게는 좌절을 경험할 기회가 잘 없다. 둘째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하는 사람이었다. 실패할 일을 시작도 안 하고, 여러모로 재보고 가장 좋은 선택만을 허용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후회스러워도 끝까지 해내는 독하고 고집스러운 기질이 있었다. 처음 좌절을 마주할 때에 아무도 모르게 둘째는 눈물만 흘렸다.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좌절, 아니 실패를 수용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스스로 선택한 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고, 힘든 일은 없었다. 이를 악물고 견뎌야 했지만, 가족에 대한 신뢰보다는 좌절에 맞서고 있는 자신에게 관대해지기만 했다.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서 그 자신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다. 그 자신보다 자신을 더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부모도 형제도 남매도 그 자신보다 좋은 해답을 줄 수는 없다. 그러니 너를 생각한다는 말은 무책임한 말이다. 남들보다 앞서갈 필요는 없다. 더 잘 나갈 필요도 없다. 그저 그 자신만큼만 가면 된다. 남매의 주변에도 가족의 주변에도 무책임하고, 앞서가길 바라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의 말만 들으면 더 앞서 나갈 것처럼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들이 많았다. 둘째는 딱 둘째만큼만 가고 싶었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둘째만큼만 가는 것이 좋았다. 누가 뭐래도 남매는 남매의 길을 간다. 서로 다른 길이지만 그 길을 가면서 이제는 말을 줄인다. 침묵을 수용하고 침묵 가운데도 살아보기로 한다.

둘째는 지금도 숱한 비난을 쏟아낸 후에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말을 들으면 침묵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말이면 충분하다. 너를 생각하고 있어.  그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모두가 모두의 길을 모두만큼만 가면 된다. 첫째는 첫째의 길을 첫째만큼만 간다. 둘째는 둘째의 길을 둘째만큼만 간다. 셋째는 셋째의 길을 셋째만큼만 간다. 부모는 부모의 길을 부모만큼만 가고 있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문득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 로를 위해서.


 I'm thinking ab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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