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 간의 글쓰기를 시작하며
"어머, 이 집은 살림살이 다 어디 갔어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첫째 아이의 친구가 놀러 왔을 때 그 아이의 엄마는 집 안을 둘러보며 반복해서 말했다.
분명히 본인의 집과 똑같은 구조인데 너무 달라 보인다면서 수납을 어떻게 했냐고 재차 물었다.
웃으며 "그냥, 저희는 짐이 좀 없어요"라고 답했지만, 처음부터 이런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다.
여섯 살 첫째와 작년에 태어난 둘째까지 이제 네 식구, 그동안 워킹맘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시간을 절약하고 쓸데없는 것에 쏟는 에너지를 줄일까를 고민하며 시작되었다.
어릴 적 나는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삼 남매가 함께 사는 시끌벅적한 집에서 자랐다.
선풍기만 해도 사람 수대로 다섯 대, 집 안은 온통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고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수집가 수준으로 다양한 종류의 기기를 사는 걸 좋아하셨다. 식구가 많다 보니 과일은 늘 박스 채로, 다용도 실에는 삼 남매가 언제든 꺼내먹을 수 있게 사다 놓은 간식류가 가득했고 냉장고로 모자라 냉동고가 따로, 김치냉장고가 세 대나 있었다. 식탁에는 각종 약과 메모지 등이 어지럽게 놓여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런 일상이었다.
친정엄마 역시 워킹맘이었기에 아이 셋을 키우며 깔끔하게 정리할 시간은 사치였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으니 내게 정리와 수납은 먼 이야기, 결혼하고 둘만 살던 신혼집에 들여놓고 싶은 물건이 왜 그렇게 많았던지 한 때는 물건 사는 재미로 살았던 것 같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여느 초보 엄마와 다르지 않게 누가 아이에게 좋다고 하는 것들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샀다. 아이와 두 살 터울의 사촌 형이 물려주는 장난감과 옷이 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새 것으로 사주고 싶은 마음에 또 사곤 했다. 핫딜이 있다고 하면 안사면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샀다. 아이 연령에 안 맞아도 언젠가는 쓰겠지 하며 또 샀다. 그렇게 집 안에 물건을 가득 채워 넣는 생활은 복직을 앞둔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양가 어른들이 아이를 봐주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갓 돌이 넘은 아이를 집에서 가장 가까운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하고 하원 후 내가 퇴근할 때까지 돌봐주실 이모님을 모셨다. 집에서 1시간 넘게 걸리는 곳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침 7시면 통근버스를 탔고, 정시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7시 30분이 되는 생활이었다.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단 몇 시간밖에 없는 아이와의 시간을 잘 보내는 것도 힘들었다. 거기에 아직 유아식을 먹는 아이 반찬도 매일 만들어야 했고, 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남편을 위해 우리가 먹을 저녁도 챙겨야 했다. 청소는 언감생심이요, 빨래는 주말에 몰아서 2~3번씩 돌리는 실정이었다.
매일 아침 바쁜 출근길에 옷장을 열면 왜 이리 입을 옷이 없는지, 옷은 한가득인데 쓸만한 옷은 없었다. 아이 옷장도 마찬가지였다. 물려받은 옷에 잔뜩 사둔 옷까지 가득 차 있었다. 점점 아이의 취향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입는 옷은 한정되어 있는데 뒤죽박죽 다양한 옷으로 가득 찬 옷장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옷을 찾느라 바쁜 아침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였다. 식사 준비를 해야 하니 주말에 마트에 가면 식재료를 가득 샀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나는 일단 대형마트에 가서 행사하는 식재료나 시식을 권하는 제품 위주로 샀다. 뭐든 식재료가 있으면 요리를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장을 봤는데, 사놓은 것을 깜빡하고 그다음 주 장을 볼 때 같은 재료를 또 산 적도 부지기수였다. 가끔은 상해서 통째로 버리는 나를 보며 남편은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버리려고 식재료를 사냐며 핀잔을 주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문득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넘쳐나는 물건들에 둘러싸여 사는 삶은 어릴 적부터 내게 너무나 익숙했지만, 나는 지금 이 많은 물건들 때문에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막 복직한 초보 워킹맘에게는 회사, 육아, 살림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버거워서 그냥 다 내던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때 기적처럼 책 한 권을 만났다.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라는 책이었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책이라면 주로 일본인 저자가 쓴, 무인양품 제품으로 가득한 사진 위주의 잡지책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달랐다.
'많이 버리고 정리해라'에 그치지 않고 삶의 철학을 바꾸는 조언이 가득한 책이었다.
심플한 삶에 대하여, 적게 소유하는 대신 사물의 본질과 핵심을 꿰뚫어 보면 살면서 마주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홀린 듯 책을 탐독했고, 하나씩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결심했지만, 가장 오랫동안 바꾸기 어려웠고 지금도 때때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 바로 '물욕'이다.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지체 없이 구입하는 편이지만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에 사로잡혀 뭔가 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쉽게 자유로워지기 어려운 숙제이다.
'그래도 사회생활한 지 몇 년 째인데, 고급스러운 가방이나 옷이 좀 있어야지', '남들은 아이 낳고 선물로 반지를 받았다는데 나도 그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은 수시로 나를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심플한 생활을 선택했고 몇 년에 걸쳐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들춰보며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글을 쓰려고 한다.
엄마이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는 육아를 시작으로 음식, 옷장, 집, 가계경제, 사람, 시간, 읽고 쓰기, 에너지, 자신을 가꾸는 것, 그리고 나이 듦에 대하여 앞으로 12주에 걸쳐 꾸밈없이 담담하게, 평소에 실천하고 있거나 실천하고 싶은 나의 생각을 담아서 써 볼 생각이다.
사진으로 가득한 보여주기 식의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라 아직도 때때로 흔들리고 있지만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나의 심플한 삶의 모습을 글로 풀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