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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째 키워드: 의심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디폴트 모드

by 언디 UnD

의심은 나에게는 한평생 기본값이었다. 외부의 대상에 대한 의심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돌이켜보면 나 자신도 의심 대상의 예외가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비판적인 관점의 시작점이 의심이었던 셈이다. 이런 나의 사고방식은 어린 시절에는 무조건적인 권위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고, (”선생님의 말인들 틀림 없는 진실은 아닐 수도 있잖아?”) 대학 시절부터는 모든 것의 진상을 밝히려는 집요하고 성실한 노력(”직접 정보의 출처를 찾아보자”)으로 이어졌다.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고, 여러 관계들로부터 인정 받고 싶었던 또 다른 성향도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를 신뢰해야 된다는 생각도 늘 잊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보니 의심하는 나와 믿고 싶은 나, 이 두 가지가 상충되어 때때로 혼란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의심하는 사람을 삐딱하게 보면서 의심 자체를 나쁘게 바라보는 것도 같다. 물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완벽하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의심은 시간 낭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고 고결하지만 않다. 의심하는 게 잘못이라는 생각을 오히려 역 이용해서, 의심하면 들통날 만한 주장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한 마디로 사기꾼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 상당히 염세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약간의 수고를 들여 진실 여부를 밝힌다는 것은 의심의 발전적인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심은 의심할 만한 것으로 판명 나고, 또 다른 의심은 그럴 필요가 없었던 일로 밝혀진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의심이 유익한 것은 적절한 균형과 명확한 선을 유지할 때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사실을 판단할 만한 객관적 근거가 충분하고 제 3자의 관점으로도 거짓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신중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는, 즉 의심할 가치가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근거 없이 감정으로 유발된, 넘겨짚기 식의 의심이라면 건강하지 못하다. 오히려 그 때에는 외부의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마음을 더 오래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다른 감정적인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의심은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 행동의 원인과 과정, 예상되는 결과를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충동에 이끌리지 않은 선택과 판단은 의심의 과정을 통할지라도 진실로 우리를 이끌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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