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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키워드: 토요일

토요일 오후에

by 언디 UnD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모두가 다 아는 어린왕자 속 대사처럼, 토요일이 오기 전 금요일 밤부터 나는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직장인들이 금요일마다 일퇴를 외치며, 불금을 좇는 이유가 있다. 어떤 것이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감만으로도 행복해지는건 쉽게 느끼는 기분은 아닐 것이다. 밤새 넷플릭스를 보다 늦게 잠들어도, 얼마든지 아침 느적하게 늦잠을 자도 괜찮고, 뭘 먹어도, 뭘 먹지 않아도, 있는 힘껏 치장을 해도, 샤워도 안하고 꾸질꾸질 빈둥거려도 되는 날. 햇살 좋은 날은 눈 비비며 일어나 카페를 가도 되고, 구름 낀 날은 따뜻한 드립 커피를 내려 마셔도 된다. 여차 하면 당일치기로 훌쩍 여행을 떠나볼 수도 있다.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하루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날. 카드 게임에서 조커 카드를 뽑으면 어떤 무늬라도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토요일은 그런 점에서 나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어지는 조커 카드다. 눈 깜짝할 새 그 마법이 끝나버리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토요일은 일요일이 있어서 그 가치가 더 높아지는 날이다. 월요일을 다시 시작할 용기와 제정신은 일요일 오후쯤부터 준비하면 되기 때문이다. 금요일의 기대감 위에 서서, 일요일을 믿고 토요일을 시작한다. 스트레스 없이 잠들어 개운한 몸 컨디션으로 적당히 이른 시간에 뻑뻑하지 않은 눈을 뜨는 아침. LP 플레이어에 사람 목소리가 들어있지 않은 클래식 연주곡을 틀고, 토스트 빵을 굽는다. 빵에 잼과 버터를 바르고, 커피 머신에 물을 채워 커피를 내린다. 강아지가 발 밑에서 애교를 피우며 자기도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른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꼭꼭 씹어먹는 아침. 누구도 나를 서두르라 하지 않는 여유로움이 집 안에 퍼진다. 비가 온 뒤 갠 하늘은 말갛게 파랑으로 채워지고,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충동적으로 따릉이에 몸을 싣는다. 스치는 바람과 기분좋게 내리쬐는 햇살이 피부에 스며든다. 발길 닿는 대로 달리다가 언제든 종착지로 삼아 내린다. 잘 정돈된 잔디 위에 눈을 감고 눕는다. 코로 졸음이 살살 들어온다. 여기서 이렇게 잠들면 안되는데, 흐아암,, 뭐 어때. 토요일 오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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