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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째 키워드: 규칙

The Ground Rule of Life

by 언디 UnD

평소에 ‘규칙’이라는 단어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서인지 오늘의 키워드는 좀 낯설다. 규칙이 어떤 때 쓰이는 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규칙적인 삶”, “명확한 규칙”, “게임 규칙” 같은 용례를 생각해보면 없어서는 안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인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이렇게 해야해” 혹은 “이렇게 하면 안돼” 같은 허용, 비 허용의 규칙들을 배우며 자라난다. 그렇게 점차 다양한 맥락과 상황에서 더 복잡한 형태의 규칙들을 배우면서, 자기자신의 행동 양식을 결정한다. 어른이 되면 어릴 때와는 다르게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 주의를 주거나 혼을 내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규칙은 자발적으로 그 규칙을 지키려 하는 이에게만 유효하다. 누군가는 규칙을 완전히 무시해버리거나 지켜야할 규칙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규칙 수용 여부는 한 사람의 가치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른이 되어 충분한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따르고자 하는 규칙이 남아 있다면, 그 규칙에 의해 발현되는 가치가 그 사람의 우선순위일 것이다.


나는 사회적 인정 욕구가 큰 편은 아니라, 암묵적으로 주어진 사회적 관계의 규칙들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을 때가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지곤 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방향으로 대충 수렴을 해서 최종 결정을 내린다거나, 손윗사람이 더 많은 권위나 우월적 지위를 갖는다거나 하는 등의 아무도 툭 터놓고 말하지 않는 규칙들을 마주했을 때, 나는 그 규칙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항상 질문이 많았고, 내가 생각하는 다른 의견이 있었다. 굉장히 양가적인 태도이긴 하지만, 동시에 정해진 규칙은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 커서, 부모님은 나를 약간은 고지식한 딸로 보기도 했던 것 같다. 상황에 맞게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고 자기에게 유리한 방법을 찾아내던 언니와는 다르게,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규칙과 원칙은 일관되게 지켜야 한다는 자존심과 고집이 센 아이였다. 내가 모든 규칙을 지키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질서정연한 상태가 주는 아름다움은 만족스러웠다. 예상 밖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문제 없이 효율적으로 일이 돌아가려면 규칙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다만, 예기치 못하게 규칙이 어겨지거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또 다른 문제다. 누구나 합리적으로 규범에 합의하고 규칙을 따른다면 어떠한 갈등도 생기지 않을 테지만, 세상은 질서정연하지도 않고, 사람들은 규칙의 경계선에서 늘 빈틈을 찾으려 하는 고약한 본능을 타고 났다.


나는 규칙을 세우는 걸 꽤 좋아하고, 지키는 것도 좋아하지만, 누구나 완벽히 규칙대로만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다.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규칙 대신 원칙이라는 개념을 가져온다면, 사람을 대할 때 나만의 원칙이 있다. 상대방이 빠르게 파악되더라도, 편견은 갖지 말자. 편견을 갖게 되더라도 늘 문 하나를 열어놓자. 좋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 상대방이 빌런이라는 게 명백해지고 나에게 피해를 끼치는 존재가 된다면, 그것은 내 잘못으로 돌리지 말고 빠르게 거리를 두고 영향권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나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 정도가 기본 틀이 아닐까 싶다. 내 개인의 일은 얼마든지 규칙을 세우고, 규칙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몰라도, 타인의 존재가 섞여 들어오는 순간 규칙을 세우는 것 자체가 나에게 덫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 적고보니 역시 난 규칙이 피곤한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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