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직장, 인생 최초의 성과급
https://brunch.co.kr/brunchbook/outinandgoon
퇴사 경험을 써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내겐 남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너무 아팠던 기억이어서일까, 브런치 평가단조차도 외면하지 못할 짠한 과거여서일까. 그렇게 나는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 회사에서 느낀 어려움들이 여러 가지로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퇴사 후에도 종종 내 가슴을 아릿아릿하게 했던 것은 '성과급'의 추억이다. 정확히 말하면 성과급을 포기해야만 했던 기억.
성과급의 정의는 '성과를 많이 내면 연봉 외에 추가로 지급하는 돈'이다. 그 말인즉슨,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는 돈이다. 언젠가는 매우 많이 받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어떤 때는 굉장히 적은 돈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 회사로부터 받게 되는 변동성인 매우 높은, 미스터리하고 월급이 아닌 돈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연봉 계약 시에 기본 연봉과 이 성과급 금액의 범위가 고려된 내용을 포함시켜서 협상(이라고 쓰고 입사자의 사인을 받아내는 시간)을 진행한다. 이것이 퇴사 후 지급할 퇴직금을 최소화하는 명목으로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방법이라고 들었다.
"저희 회사가 기본급은 좀 낮지만, 성과급을 많이 주잖아요? 결국 초봉 높은 회사랑 받는 돈이 그렇게 비슷하게 맞춰지는 거예요."
대부분의 경우는 안정적으로 조금 덜(?!) 받고, 운이 좋으면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조건이 연봉계약서를 쓰는 나로서는 참으로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계약서 앞에 선 을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계약서를 읽을 수만 있을 뿐, 그 내용의 일부라도 바꾸기는 어렵다. 수용하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재미있는 것은 입사 후 최대 1년 간은 100%의 성과급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회사마다, 제도 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성과급의 제공 기준 자체가 노동력을 제공한 기간에 비례하기 때문에 입사 후 꼬박 1년간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나야 돌아오는 성과급 날에 금액을 받을 수 있다. 성과급 지급 월이 잘 맞지 않으면 몇 달을 더 기다리게 되거나 일할 계산되어 일부의 금액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성과급 지급 날이 2021년 1월 말이라면, 직전해 1월부터 12월 말까지 노동력을 제공했는지가 성과급 지급 대상을 결정하는 기준인데, 어떤 사람이 2020년 3월에 입사했다면 아예 2021년 성과급 지급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운이 좋은 경우 10개월 간의 성과급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브런치 북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와 <3개월의 시간과 1000만 원>의 배경이 되었던 퇴사 무렵 그 시기는 내 인생 첫 성과급 획득을 딱 3달 앞둔 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로젝트 비용도 1000만 원, 받을 돈도 1000만 원이었네.) 꼭 -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또 '그것'이 기대되기도 했던 입사 2년 차의 직장인은 시기가 맞지 않아서 약 1000만 원가량을 받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었다. 그 금액도 금액이지만, 그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갑자기 생긴 1000만 원, 어떤 느낌일까. 돈을 쓰는 행위 그 자체보다도, 돈을 어디에 쓸지 상상하는 든든한 설렘이 너무너무 궁금했다.
그렇게 이직 후 1년 하고 몇 달이 지나, 곧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성과급을 받게 된다. 나는 이제 속 때가 완전히 껴버렸는지, 받을 돈보다 기회비용이 먼저 떠오른다. '얼마를 받든 -1000만 원으로 계산해야 합리적인 거 아닐까?' 내 안에서 불평의 악마가 속삭인다. 그 기회비용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나는 무엇을 바라고 그 돈을 지불한 걸까. 내 지난 1년의 이곳에서의 생활을 떠올려본다. 대차대조표처럼,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계산해보기엔 내가 너무 빠삭하지 못하다. 그냥 돌이켜보니 얻은 것만 생각하는 게 낫겠다 싶다. 사람들이 요즘 허벌나게 떠들어대는 주식이랑 비슷하다. 장기투자를 위한 일보 후퇴를 버티는가, 단타로 치고 빠지기를 선택하느냐. 나는 장투를 선택했고, 장투는 실패하지 않는다. 하하.
성과급을 받으면 무엇을 하겠냐고 회사 사람들이랑 한바탕 담소가 벌어졌다. 몇몇은 주식에 올인하겠단다. 정말요? 우와... 했더니 농담 반이란다. (과연 농담이었을까?) 돈을 버는 것도, 쓰는 것도,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지 못함을 자각한다. 돈은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돈은 피와 살이고, 내가 오늘 먹는 밥이고, 내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여러 가지 수단에 지불하는 실제적 수단이라고 하지만. 이런 시대에 돈은 정말 잠깐 왔다 가는 숫자라고 느껴진다. 돈을 만지지도 못한 채 돈은 사라지는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일장춘몽처럼 머릿속에 집어넣어본 것도 같다. 돈이 실체가 아니어서, 차라리 다행이다.
나는 성과급으로 받은 돈을 최대한 쓰지 않을 작정이다. 만일 돈으로 모든 걸 살 수 있다면, 나는 내 꿈을 사고 싶다. 금액을 대충 계산해 보니, 마침 내가 이전부터 너무너무 해보고 싶었던 베이킹 학교 1년 수강비와 엇비슷하다. 물론 돈이 있다고 해도 당장 입학할 수도 없을 것이다. 돈이 제약을 없애준다면, 내 머릿속에 가득히 그물처럼 쳐져 있는 현실적 한계를 잠깐 잊고 먼 훗날의 나를 힘껏 꿈꿔볼 것이다. 돈이 내 꿈을 도와주는 그런 삶을 죽을 때까지 살아볼 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참으로 아픈 성과급이다.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 프로젝트 비용, 포기한 성과급, 이렇게 비싼 비용을 두 번이나 지불했다. 한편으로는 돈이 얼마가 되었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아 나서기 위한 기회비용이 아깝지 않다. 그런 선택을 한 용기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멋지다고 생각해 본다.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 것, 돈이 나를 돕게 하는 것. 내 꿈을 이루는 곳으로 향하게 해주는 것. 그렇게 나는 돈과 나의 관계를 설정해본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은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