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by 이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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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

제목 : 미드나잇 인 파리

개봉 : 2012. 07.

재개봉 : 2025. 02.

글 작가라면 헤밍웨이, 그림작가라면 피카소를 한 번쯤 동경해봤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 감탄하기도, 분석해보기도, 배우려 들기도, 부러워하기도, 심지어는 ‘내겐 왜 저런 재능이 없을까?’ 질투해본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나의 뮤즈를 실제로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매일 자정마다 과거로 돌아가 대작가들을 만나고 오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을 따라가 보았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약 90분 정도의 러닝타임으로 한 호흡에 보기 좋다. 게다가 글, 그림,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영화는 처음 4분간 아무 대사 없이 재즈 음악과 함께 파리의 낮과 밤, 맑은 날과 비 오는 날, 관광지와 동네 골목길을 교차해 보여준다. 이 도입부만으로도 내가 유럽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 ‘길’은 약혼녀 ‘이네스’와 함께 예비 장인어른의 사업차 파리에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예비 처가 가족들은 프랑스와 비즈니스를 맺었음에도 내면에는 정치적 이유로 프랑스를 탐탁지 않아 한다. 반면, ‘길’은 할리우드에서 상업영화 시나리오를 쓰던 경력을 뒤로하고, 진짜 문학, 순수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그는 특히 1920년대 파리를 동경하며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런 그를 약혼녀 가족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환상에 빠진 몽상가쯤으로 취급한다. 게다가 ‘길’은 매일 자정마다 몇 시간씩 사라지니 갈등은 점점 심해진다.


사실 ‘길’은 매일 자정, 정체불명의 자동차를 타고 진짜 1920년대 파리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길’은 스콧 피츠제럴드, 장 콕토,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콜 포터, 매클리시, 주나 반스, 만 레이, 살바로드 달리,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루이스 부뉴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등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영화감독, 화가, 작곡가를 만나 꿈 같은 시간을 보낸다.


‘길’은 2010년도에서 집필 중인 소설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헤밍웨이에게만큼은 평가받고 싶어 하여 용기를 낸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단칼에 거절한다. “못 썼으면 못 써서 싫고 잘 썼으면 부러워서 더 싫겠지. 다른 작가 의견은 필요 없어. 작가들은 경쟁심이 강하지. 자넨 너무 겸손해. 남자답지 않아. 작가라면 자신이 최고라고 당당하게 말하라고!”라며 작가의 태도부터 가르친다. 대신 간략히 소재가 어떤지만 물을 수 있게 됐는데 헤밍웨이는 “영 아닌 소재는 없네. 내용만 진실하다면. 또 문장이 간결하고 꾸밈없다면.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는다면.”이라고 용기를 준다.


헤밍웨이의 대사는 내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개인 저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다음 저서의 초고를 쓰는 중인데 ‘이것이 과연 소재로 적합할까, 대중적인 소재이긴 하지만 동시에 너무 흔해서 관심을 받지 못하는 내용이진 않을까’등의 걱정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 내게 헤밍웨이가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진실하고 용기 있게 쓰자는 다짐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길’은 매일 밤 두 세계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피카소의 연인이자 뮤즈인 ‘아드리아나’와 가까워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010년도에서 온 ‘길’은 1920년대를 예술의 황금기로 여기며 동경하고, 1920년대에 사는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에 막심 등의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즐기는 벨에포크 시대를 동경한다. 그렇게 그 둘은 1890년대에 도착해서 폴 고갱, 에드가 드가 등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더 과거인 르네상스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 장면을 통해 결국 우리가 동경하는 ‘황금기’란 현재를 거부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과, 인간은 늘 지금을 불만족스러워하며 과거나 미래를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영화 전반을 통해 ‘길’이 겪는 여정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나도 비 오는 파리의 골목에서 꿈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짧지만 강렬한 깨달음을 얻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상상 자체가 지금을 회피하고 미래만을 기대하는 또 다른 도피일까? 결국 영화는 현재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내가 진짜 살아야 할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고, 지금의 감정과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과거에 묶이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매달리지 않으며 ‘지금’이라는 순간을 더 많이 느끼고자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길’은 현실의 친구와 함께 파리 거리를 걷는다. 하필 비가 오지만, 그들은 “비 오는 파리가 더 아름답다”라며 웃으며 걸어간다. 이 장면은 낭만의 끝판이면서도 동시에 일상의 수용이라는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결국 <미드나잇 인 파리>는 예술적 향수와 철학적 사유,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까지 아우르는 작품이다. 단순한 시간여행 영화가 아니라, 한여름 밤 꿈처럼 달콤하면서도 깨어난 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그런 작품이었다. 이번 여름휴가에 보기 딱 좋은 영화로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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