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 인도여행(Stay in India)
현실도피로 시작된 인도여행. 여자친구가 KOTRA인턴십을 통해 인도에 있는 한국기관으로 일을 하러 갔기 때문에 보러 간 이유도 있었지만, 어쨌든 학교를 벗어나 혼자 도망가듯 여행을 가고 싶었던 게 여행의 가장 큰 이유였다.
중국에서 경유를 해 남방항공을 타고 처음으로 경험한 장거리 비행. 비행기만 타면 잠든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6~7시간을 내리 자고 있으니까 옆에 앉은 할머니가 밥먹으라고 깨우고, 어디 아프냐고 깨우고, 물 마시라고 깨우고, 내릴 때 되니 괜찮냐며 걱정해서 새삼스러웠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한테 받는 친절에 기분은 좋았다. 곧 후덥지근한 뉴델리 공항에 발을 들일 때까지도 훈훈한 기운이 맴돌았다.
얼핏 기억나기로 여자친구가 데리러 나왔던 듯 하다. 명확히 기억에 남지 않은 걸 보니 생각보다 안 반가웠을 수도 있으려나? 당시 첫 장거리 연애를 경험하며 연인이 멀리 떨어져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만나자 마자의 안도감으로 기분이 흐물흐물해서 그런 듯 했다. 오히려 뇌리에 남는 기억은 '구르가온'이라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의 위성도시와 같은 도시로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바라 본 바깥 풍경들이다.
사실 우리나라 역시 달동네라는 곳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지만 도시 한복판에 눈에 띄게 잘 보이는 편은 아니다. (물론 조금만 관심을 두면 보이는 곳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도는 워낙에 빈곤한 취약층이 많아서 그런지 5~6층 되는 빌딩 옆에 판자촌이 즐비한 광경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빈부격차'라는 단어를 문자가 아닌 시각적으로 접한 첫 경험이었다.
구르가온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해 며칠이 지나 더욱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되었다. 숙소는 퇴역장교 할아버지가 호화로운 주택의 별채 하나를 Airbnb로 운용하는 곳이었다. 그 숙소에 매일같이 요리와 청소를 해주는 아주머니가 드나 들었고, 그 놀라운 얘기는 아주머니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와 손짓발짓으로 얘기를 나눠봤는데 한달에 우리나라 돈으로 3만원인가를 받고 일한다고 했다. 잘못들었나 싶어 다시 물어봤지만, 하루일당이 아닌 한달에 3만원이 맞더라. 구르가온은 뉴델리, 인도의 수도 옆에 있는 도시라서 외식이라도 한 번 하려고 하면 그렇게 값싼 물가가 형성된 지역이 결코 아니었다. 마트에서 장이라도 볼라고 치면 (우리나라보다는 저렴했지만) 적어도 3만원은 지불해야 했다. 공산품이라도 몇개 사면 우리나라에서 장 보듯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래서 '3만원이라는 돈으로 한달을 과연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한편, 그 아주머니가 사는 곳이 대체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퇴근길을 몰래 따라가보았는데, 진짜 사진에서만 보던 다 허물어가는 텐트같은 곳에서 살더라. 전기도 안들어오고 물도 주변에서 얻어와야 하는 곳. 그런데도 애들도 두셋을 키우고 있었다. 도저히 애를 키울 환경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는데, 차마 뭘 먹고 사냐고 물어보진 못하겠더라.
그 환경을 보고 숙소에 돌아와 주인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는데 (심지어 할아버지는 양질의 교육을 받아 영국식 영어가 유창했다!) 내가 방금 보고 온 삶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윤택한 삶을 살고 계셨다. 자식들과 손주들은 미국에서 살고 있어 가끔 영상통화를 한다며 오늘이 바로 그 날이라고, 기대가 된다며 즐겁게 홍차를 대접해주었다. 내가 10분 전에 보고 들어온 곳은 내일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판잣집이었는데, 지금 있는 곳은 호화스러운 대궐과 같은 곳에서 따뜻하고 향 좋은 홍차를 대접받는 다는 게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대궐과 판잣집 간의 거리는 채 100M도 되지 않았다.
100M도 안되는 물리적 거리 안에서 이들이 이렇게 다른 삶을 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카스트제의 산물? 혹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빈부격차? 아마 둘 다, 혹은 더 많은 이유가 있을테다. 그러다 문득, 이들의 삶을 지켜보다 (더 새삼스럽게도) 나는 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육체적으로 조금 고생하면 비행기표 정도는 살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모을 수 있지. 그 돈으로 가고 싶은 인도여행도 갈 수 있었고, 식당에서 내가 원하는 카레도 2~3인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삶. 경제력이 전부는 아니지만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삶도 꽤나 불행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건강한 육체와 상대적으로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게 운이 좋다고 여길만했다.
인도에서 남은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지냈던 듯 하다. 고아라는 휴양지에도 가 보고 (오토바이를 렌트했는데, 오토바이를 탈 줄 몰라서 넘어지고 난장판이였다) 다시 돌아와서는 매일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봐서 주인 할머니한테 카레만드는 법도 배우고, 하루하루 꽤나 재밌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다 기억에 남진 않지만 경쟁으로 가득 찬 한국사회를 벗어나 잠시나마 상대적인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다 문득, 비열하게도, 눈만 조금 돌리면 주변에 즐비한 판잣집들을 일부러 쳐다보지 않으려고 부던히 놀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이 됐다. 이렇게 놀더라도 저들의 삶과는 다른, 안도할 수 있는 삶을 즐기며 상대적인 안도감을 더 느끼기 위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느끼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비행기를 한 번 놓쳤지만 항공사에서 공짜표를 챙겨줘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인도에서 2달반, 세달쯤 되는 여정을 마치고는 쉴틀없이 이틀 후에 바로 입대를 했다. 인도음식이 매우 입에 잘 맞았음에도 타지라서 그런지 10kg 넘게 빠져버려 군에서 안받아주지 않겠냐고 걱정하던 부모님을 뒤로하고.
아직까지도 '인도'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늘어선 판잣집과 대궐같은 집들이 떠오른다. 빠니보틀과 같은 유튜버나 최근 공영방송을 통해 인도를꽤 재미있고, 마치 평화롭게 자신을 돌아보며 힐링할 수 있는 나라로 많이 보여주고 있다. 비록 10년 전의 기억이지만 내게 그 기억들은 내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와닿게 하는 한편, 한국에 돌아와 더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처음 구르가온으로 가는 길에 본 판잣집과, 주인 할아버지 집 옆에 있던 판잣집, 휴양지에서 본 판잣집들은 모두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엔 그저 너무나도 큰 격차에서 오는 신기함과 이질감을, 그 다음엔 그래도 '난 의식주는 깨끗하게 챙길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라고 자위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마지막엔 '내가 저 판잣집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내가 원하는 걸 이루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가질 틈도 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슬퍼지는 한편,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과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내가 원하는 걸 꼭 하겠다'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이어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