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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SICO iAn Dec 28. 2017

라디오스케치의 프라도 미술관 그림 이야기 1

수태고지 Ave Maria!

수태고지 Ave Maria!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고전 미술관 어디를 가도 '수태고지'라는 테마의 그림은 항상 있다.

스페인 말로 'Anunciacion'라는 말은 라틴어로 '알리다'라는 의미에서 유래됐는데 전통적으로 가톨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 사건을 중요하게 여긴다. 약 5세기부터 그리스 정교회의 Icon화에서 유래되어 발전된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수태고지는 이탈리아 Fra Angelico(1390-1455)라는 수도사의 작품이다. 15세기 초에 제작된 르네상스 초창기 그림이라 원근법이 사용되고 있으나 초창기라 완벽해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당시엔 혁명적인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수태고지에 항상 등장하는 천사다. 신의 심부름 역할을 하는 가브리엘 천사는 그림마다 다양한 스타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동정녀 마리아의 순결함을 의미하는 백합꽃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성별은 불분명한데 시대와 화가의 성향에 따라서 남성, 여성 다양하게 묘사된다. 위 작품도 남녀 성별은 불분명하다. 여기서 가브리엘은 중요한 명대사 한마디를 한다. 

"Ave Maria, Gratia plena, dominus tecum" 

그 노랫말로 유명한 Ave Maria는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했던 인사말이면서 축하 메시지이다. 이 어려운 라틴어를 가톨릭에서는 이렇게 기도문으로 쓰게 된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또한 복되시도다." 

이 기도문의 라틴어 버전 첫 문장이 Ave Maria이다. 처녀 마리아는 충격을 받을만하다. 갑자기 임신이라니. 게다가 신의 아들을 말이다. 하지만 마리아에게는 신의 메시지를 받아들일지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 위 그림에서는 마리아가 신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표시로 가브리엘의 손동작과 같은 X모양의 사인을 하는데 가브리엘이 전달하는 신의 메시지에 대한 그대로의 순종을 의미한다. 이때 예수님의 태아가 성령으로 잉태되는 장면이 자세히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절대자의 손에서 나오는 빛, 그리고 비둘기는 종교화에서 성령을 의미한다. 구세주의 탄생의 예고편이면서 성스러운 신의 아들이 선택받은 인간의 몸에 잉태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가톨릭에서는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신앙심이 강하고, 동정녀 마리아로 부른다. 보통 인간은 아담과 이브라는 조상의 저주를 받아 원죄를 갖고 태어난 동물이다. 그러나 동정녀 마리아는 보통 인간과 다르게 '원죄 없이 태어난 성스러운 여인'으로 믿는 것이 가톨릭의 전통적 신앙이다. 하지만 지금의 개신교에서는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은 도구로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예수는 동생이 있다고 해석한다. 마리아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 보자. 좌측 상단에 아담과 이브가 언짢은 표정으로 에덴에서 쫓겨나고 있다. 추방을 시키는 천사가 같은 옷으로 보아 가브리엘이었다. 신의 말을 듣지 않아 벌을 받는 사례와 신의 말을 순종한 성모 마리아와 비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교훈적인 메시지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교와 뿌리를 같이하는 구약성서가 끝나고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점으로 신약성서의 시작을 의미한다 볼 수도 있다. 

 프라도 미술관의 플랑드르 지방의 Robert Campin(1375-1444)의 작품이다.  프라 안젤리코와 비슷한 시대에 그려졌지만 이탈리아와 스타일이 다르다. 먼저 재료부터 큰 차이가 있다.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은 계란 노른자를 섞은 템페라지만 지금 이 작품은 유화이다. 지금은 너무 평범해진 재료지만 이 재료의 발명으로 서구 유럽에서 회화가 발달한 것이다. 이 중요한 기름 물감의 본 고장이 플랑드르 지방(지금의 벨기에 북부와 네덜란드)이다. 유화의 장점은 무한 반복 수정, 부드러운 그라데이션, 디테일에 강하다는 것이다. 초기 유화의 발명 지라 그럴까 이 지방은 전통적으로 디테일 묘사의 달인들이다. 지금의 수태고지처럼 이렇게 섬세하다. 문제는 화면 전체가 디테일하다 보니 붓의 힘을 빼야 멀어져 보이는 공기 원근법을 잘 구사하지는 못하고 있다.  배경의 건축물을 보면 어떻게 저런 세밀한 묘사를 열 맞춰서 다 그렸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말 '잡고 푼다'라는 개념이 없다. 하지만 선 원근법(투시 기법)은 아주 교과서적으로 잘 응용하고 있다.  플랑드르가 디테일에 강하다면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인체 묘사에 강하다. 그래서 그럴까? 인물의 묘사가 조금은 엉망이다. 전체적으로 딱딱하다고 어색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화가들이 그린 성모 마리아의 미모와 비교했을 때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이 지방 화가들의 디테일 묘사 테크닉만큼은 당시 세계 최고였다고 볼 수 있다.

프라도 미술관의 2층에 위치한 엘그레코(1541-1614)의 작품이다. 시대가 지나서 이렇게 화가들의 스타일이 바뀌었을까? 아니다. 엘그레코만이 가진 독자적인 스타일이다. 르네상스 말 바로크 초기에도 대체로 디테일하게 묘사를 하던 시절이다. 무엇이 화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리스 태생의 엘그레코가 이탈리아에 머물렀을 당시엔 티치아노의 제자였던 걸로 전해진다. 색체를 중요시 여긴 베네치아 화파의 유명한 화가였던 티치아노의 색채를 보면 엘그레코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런 기괴한 그림을 그린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이유는 엘그레코가 활동했던 톨레도라는 도시의 톡특한 종교적 분위기였을 것이다. 16c말 톨레도에서 '신비주의'사상이 유행했다. 종교적 용어로 풀이하면 영적인 대상과 교감을 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이런 주제로 대표 주제는 베르니니의 '산타 테레사의 도취', '아시시의 프란시스코', 톨레도의 '일데폰소'성인의 일화 등이 있다. 특히 톨레도의  산토토메 성당에 있는 '오르가즈 백작의 장례식'은 엘그레코가 제작한 신비주의 주제의 대표적인 명작이라고 볼 수 있다. 스스로 '신을 위한 화가'했던 엘그레코가 매료됐던 도시 톨레도는 그를 르네상스를 배운 그저 그런 화가에서 예술적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영감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말년 톨레도의 작품들은 비이성적, 비현실적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봐도 현대미술 같은 이런 독특한 화풍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당시 톨레도의 주민들을 의외로 엘크레코의 종교화에 깊은 감동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 정도 납득이 갈만한 사항은 엘그레코 이전의 스페인 화가들의 그림들을 보면 세련된 르네상스의 그림에 비해 상당히 투박하고 어색한 인체 묘사를 볼 수 있다. 바로크 시대 이전까지 미술사에서도 스페인 지방이 예술의 변방에 불과했던 것이 이해가 가는 대목들이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미술관이 톨레도의 산타크루스 미술관이다. 이전까지 미술사적으로 낙후돼있는 중세적인 그림들만 접하다가 엘그레코의 그림은 당시 톨레도 사람들에겐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이었던 당시 성당들은 독특한 엘그레코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문제는 톨레도 주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화가의 그림을 주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보수적인 성당들은 평범한 스타일대로 무난하게 그리길 바랐지만 엘그레코는 그의 독특한 화풍을 고집했다. 당연히 성당들은 수정 명령을 하지만 매번 거부해서 성당들과 갈등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위의 수태고지 역시 너무 어려 소녀 같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수태고지'주제와 어울리지 않는다. 어떻게 어린이 같은 소녀가 아기를 임신한다는 말인가? 역시 성당에서 수정을 요구하지만 엘그레코는 또 거절하게 되어 마찰이 있었던 그림이다. '불꽃 화가'라는 별명답게 희 색의 영적인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기쁜 날을 축복하면 음악을 연주한다. 고전주의 특유의 아름다운 미술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엘그레코의 그림은 그로테스크해 볼일 것이다. 그리고 르네상스의 라파엘과 바로크의 카라바지오, 루벤스 같은 거장들에 비해서 투박하게 묘사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림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엘그레코의 그림은 

'잘 그린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멋있게 그려진 그림이다' 게다가 엘그레코의 그림만큼 독창적인 화풍은 고전주의 시대에 찾아보기 힘들다. 솔직히 미술관에서 처음 접하는 그림을 일반인이 봤을 때 화풍으로 구별이 가능한 화가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엘그레코의 그림을 조금만 접해도 누구나 구별이 가능하다. 멋스럽고 매력 있게 그린 화가 엘그레코의 수태고지였다. 

이렇게 '수태고지'라는 같은 주제이지만 스타일이 다른 화가들의 그림들을 비교해 보았다. 프라도 미술관의 수태고지 그림들을 접하는 여행객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무리한다.       


글/ 라디오스케치 아트카운셀러 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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