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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SICO iAn Dec 31. 2017

라디오스케치의 프라도미술관 이야기3

천재와 미치광이 사이/ 히로니무스 보쉬 '쾌락의 정원'

천재와 미치광이 사이/ 히로니무스 보쉬 '쾌락의 정원'

 요즘 계속 프라도미술관에서 보쉬 500주년 특별전을 하고 있다.(2016년 여름) 보쉬 특별전이 있기 전까지 오후 2시가 넘으면 항상 한가했던 게 바로 프라도미술관이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보쉬 특별전 때문에 점심시간에도 줄 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원래부터 있었던 '쾌락의 정원'과 '7가지 원죄'작품도 특별 전시실로 옮겨지면서 투어 중 설명을 할 수가 없다. 투어하는 입장에서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그래서 투어를 받은 손님들을 위해 보스를 대표하는 작품 '쾌락의 정원'을 설명하려 한다. 500년 전에 초현실을 시도했던 정말 엽기적인 화가 보스.


이런 병풍 제단화는 본래 성당에 있는 그림 양식이다. 원래 종교화의 취지도 그렇지만 평소에는 문을 닫아 놓다가 미사 시작 때 이렇게 열어 성서 교육을 목적으로 만든 그림다. 중세부터 유럽인의 다수가 글을 몰랐다. 특히 성경책이 라틴어로 쓰여있는데 무슨 수로 읽는단 말인가? 그래서 그림을 통해서 성경교육을 할 목적이 바로 이런 종교화다. 그런데 형식은 평범한 병풍 양식이지만 내용은 기괴하기만 하다. 곳곳에 현존하지 않는 기형적인 괴물들이 나오고 내용도 굉장히 변태적이다.


뚜껑을 닫으면 이런 모습니다. 이 모습은 세상 밖을 의미한다. 세상이 유리관으로 덮여 신의 말씀이 전달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좌측 상단에 사람 모양의 잔상이 신을 뜻한다. 그래서 신은 '항상 지켜보고 있노라'경고를 주고 있다. 즉 신의 말씀이 전달되지 않는 타락한 인간 세상을 뜻한다.


다시 뚜껑을 열면 타락한 인간 세상이다. 이 그림의 양식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루어졌다.


과거 먼저 보자. 평화로운 에덴 동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왜냐면 밑의 연못이 까맣게 썩어있고 그곳에서 기괴하게 생긴 괴물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이런 동물들은 알레고리즘이라 해서 상징하는 게 다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학자들도 모든 것을 해석하기 쉽지 않다. 해석했다 해도 정확하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 보쉬 자신만 안다. 


평화로운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있다. 이브의 손을 잡고 있는 신!!! 어떻게 보면 신이 인간을 창조하는 '천지창조'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뒤에 토끼가 있다. 토끼는 다산을 하기 때문에 '성욕'을 상장한다. 즉 이브를 통해서 원죄 다르게 말하면 저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가운데 패널을 보자. 이 장면이 바로 현재다. 사람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다. 확실한 건 보쉬라는 화가는 변태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구토 나올 정도로 징그럽게 사람을 많이 그릴 수 있을까? 현재는 본격적으로 인간들이 죄악을 저지르는 장면이다.


이 알 수 없는 집 같은 조형물 무엇일까? 자세히 보면 질감이 인간의 살색이 아닌가? 그리고 실핏줄까지! 아 뭐 비슷하지 않나? 사람의 생식기들을 분해+재조합을 해 놓은 느낌이다. 그리고 보니 우리나라 입시 미술 시험 중 '사고의 전환'이란 시험엔 어떤 주제를 주고 사물을 응용하여 분해 및 재조합 하는 유형의 그림 시험이 있다. 만약 보쉬가 이런 그림 시험을 치르면 창의력으로는 합격하겠지만 너무 불건전해서 탈락하지 않을까 싶다. 


플랑드르 지방(네덜란드/벨기에) 속담에 '남녀 간의 하룻밤 사랑은 깨지기 쉬운 유리와 같다'라는 말이 있다. 이 격언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뒤에 엽기적인 포즈는 뭘까?노골적인 성적 묘사이다. 이런 보쉬의 성향은 계속 반복된다.


그림의 하단을 보면 사람들이 붉은 열매를 먹고 있다. 당시에 남녀의 음탕한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체리'같은 열매는 금기시 여겼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복분자 정도 되겠다. 그런데 곳곳에 사람들이 몰래 저 열매를 먹고 있다. 그만큼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 옷을 벗고 있다. 그림 가운데를 보면 곳곳에 물고기가 등장한다. 물고기는 타락하고 악마로 변한 인간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저 엽기적인 물구나무 괴물 인간은 뭘까? 

 매우 현재적이고 20세기 초현실에 가까운 그림이다. 우리가 잘 아는 초현실주의는 쉽게 말해 꿈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프로이트'이론을 바탕으로 '알렝트 브르통'이라는 리더 주도하에 여러 기괴한 아티스트들의 연구 결과물이기도 하다. 꿈의 세계 혹은 무의식을 연구하기 때문에 이들의 그림을 보면 에로틱에 집착을 한다. 어린이들이 똥과 항문에 집착한다는 '항문기'도 프로이트의 이론이기도 하다.  그런 '프로이트'이론 이전 15세기에 이런 그림을 시도했다. 정말 앞서 나가는 변태가 아닌가?


마지막 패널이다. 살아 있을 때 죄를 저질렀으니 미래는 지옥이다. 위에 어두운 배경의 감옥에 불구덩이가 있다. 누가 봐도 지옥이다. 이 그림은 항상 너무 인기가 많아서 평소에 가까이서 보기가 쉽지 않다.


지옥에서는 죄의 성격에 맞게 똑같은 형벌로 다스린다. 귀 사이를 자른 칼을 보자. 성경 말씀에 '귀 달린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구절이 있다. 신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의 귀를 잘라버린다는 메시지다. 한편으로는 칼에 M이 써져 있는데 이것은 '문도스' 즉 남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은유적으로 남성의 성기 모양을 하고 있다. 역시 성에 집착을 하는 화가이다.
그 아래 하얀 몸과 사람의 얼굴을 한 대상을 보자. 저 얼굴의 주인공은 보쉬라고 한다. 정말 특이한 캐릭터임에 틀림이 없다. 굳이 자신을 지옥에 떨어뜨릴 것까지 있을까? 살아있을 때 술을 진탕 마시고 다음날 '난 이러다 지옥에 떨어질 거야 습관처럼 얘기하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배속을 자세히 보면 테이블이 있고, 사람들이 술을 마신다. 그리고 술도 따르고 있다. 술고래였던 보쉬의 배속은 지옥에서도 선술집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단하다. 이 창의력과 섬세함이 놀라운 그림이다. 


또 다른 장면을 보자. 종교가 지배했을 당시 한가하게 음주와 가무를 즐기며 악기 연주하는 것, 즉 쾌락을 위한 음악은 죄악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지옥 가서 악기와 관련된 형벌을 받고 있다. 여기서는 
어느 괴물이 벌받는 사람의 엉덩이에 악보를 그리고 있다.


항문에 뭔가 안 좋은 추억이 있었을까? 
오른쪽 파란색의 마치 파리처럼 생긴괴물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 그리고 배설을 한다. 그 밑은 지옥의 뒷간인가? 지옥 중의 진짜 지옥이 아닐까 싶다. 냄새가 나는 배설물들을 그대로 뒷간의 사람들에게 떨어지고 있다. 바로 근처 왼쪽에는 어느 엉덩이가 보이고 금괴를 배설하고 있다. 살아있을 때 탐욕스러운 인간이 지옥 가서 자신의 재산들을 그대로 배설하는 것이다. 그 오른쪽엔 살아 있을 때 너무 많이 먹은 죄인이 음식들을 구투하고 있다. 가톨릭에서 '7죄'중 하나가 식탐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옥 가서 저렇게 고생을 한다. 먹을 것이 귀했을 때 폭식도 죄악시 여겼다고 한다.


근처 바로 옆에 어느 여자가 기절해있다. 자세히 보면 까만 악마가 거울을 보게 하는 형벌이다. 거울은 교만을 상징하는데 여자가 자신의 거울에 비쳐진 허영심, 교만한 얼굴을 보고 기절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가슴에 붙어있는 까만 두꺼비 역시 '교만'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좌측 하단을 보자.  주사위가 있고 카드가 있다. 도박쟁이들이 지옥 가서도 이런 끔찍한 형벌을 받는다.

 

마지막 우측 하단을 보자. 알 수 없는 초현실적인 괴물이 갑옷을 입고 있다. 그 앞에는 돼지가 성직자 옷을 입고 있다.  플랑드르의 당시 종교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화가의 다른 나라에 있는 작품들을 보자. 보쉬의 그림들을 보고 살바도르 달리 그림을 보면 시시할 수도 있다. 달리의 그림 마저 건전하게 만드는 부쉬의 기괴한 상상력이다.


이런 스타일은 현대의 일러스트 느낌 아닌가? 잊지 말자 500년 전 화가다.


역시 지옥이다. 이 그림 보면 정말 죄를 저지르면 안 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종교화의 목적인 교훈에 충실한 그림이기도 하다. 의외로 종교화라는 테두리에 있으면 그림의 자유를 많이 허용했던게 고전시대이기도 했다.


마치 영적 세계를 다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또 다른 그림의 상단을 보자. 이 배경은혹시 SF 영화 배경 아닌가? 진지하게 의심해본다. 보쉬는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다른 행성을 여행하고 왔거나 타임머신 타고 미래를 갔다 온 것이다. 어떻게 이런 장면을 500년 전에 그렸을까? 동시대의 다른 르네상스 화가들이 건전한 종교화들을 그들 때 이 화가는 너무나 다른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화가가 활동했을 때는 그리 좋은 명성을 얻지 못하다가 후배인 피터 브루헐이 선배의 화풍을 모방하면서 뒤 늦게 보스 역시 유명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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