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경고등은 이미 켜져 있었다

by 이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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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성공이라는 이름의 소진


최근 저를 찾아온 한 남자는 누가 봐도 성공한 40대 스타트업 CEO였습니다.


최고의 영양제는 다 챙겨 먹고, 유명하다는 기능의학 클리닉도 꾸준히 다녔지만, 그는 몇 년째 바닥까지 소진된 듯한 만성 피로와 끝나지 않는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상하죠. 분명 쉬고 있는데도 전혀 회복이 안 돼요.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늘 속이 더부룩합니다.
제 몸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몸을 '방전된 배터리'에 비유했지만, 제가 그의 몸에서 읽은 신호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의 몸은 방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액셀을 끝까지 밟은 채 브레이크가 고장 나 버린 자동차처럼, 멈추는 법을 잊은 채 공회전하며 스스로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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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고장 난 것은 부품이 아니라, 운영체제


저는 그의 몸을 진단하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근골격계의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었고, 특정 근육의 약화나 기능 부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죠.


하지만 몸 전체가 보이지 않는 위협에 맞서듯 미세한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신호였습니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부품(근육, 관절, 위장)'이 아니라, 몸 전체를 지휘하는 '운영체제(Operating System)'인 자율신경계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에는 두 가지 모드가 있습니다.

하나는 위협에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동원하는 '교감신경(Accelerator)' 모드입니다.

다른 하나는 몸을 회복하고, 소화시키고, 재충전하는 '부교감신경(Brake Pedal)' 모드입니다.


그의 몸은 이 두 가지 스위치 중 '브레이크 페달'이 완전히 고장 난 상태였습니다.

잠을 잘 때도, 음식을 먹을 때도, 심지어 명상을 할 때조차 그의 뇌는 여전히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액셀을 밟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잠을 자도 회복이 될 리 없고,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될 리 없었던 것입니다.






2장. 멈추지 못했던 20년 전 나의 모습


그의 지친 몸에서 저는 20년 전의 저를 보았습니다.

원인 모를 현기증으로 쓰러졌던 27살의 저 역시, 그와 똑같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였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저의 신경계는 단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전투 모드'를 유지했습니다.

결국 시스템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현기증'이라는 경고등을 켜며 강제로 저를 멈춰 세운 것이죠.


증상은 달랐습니다.


그는 만성 피로와 소화불량으로, 저는 현기증으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뿌리는 정확히 같았습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신경계가 멈추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것.

그의 몸을 이해하는 데에는 책에서 배운 해부학 지식보다, 제 온몸으로 겪어냈던 그날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훨씬 더 정확한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3장. 몸의 숨겨진 '리셋 버튼'을 찾아서


그렇다면, 이 고장 난 브레이크 페달은 어떻게 수리해야 할까요?


해답의 열쇠는 우리 몸의 부교감신경계를 총괄하는 '미주신경(Vagus Nerve)'이 쥐고 있었습니다.


미주신경은 뇌에서부터 시작해 목과 가슴, 배의 주요 장기들까지 연결되어 우리 몸의 '안정'과 '회복'을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신경입니다.

이 미주신경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몸에서 미주신경을 가장 효과적으로 '깨울' 수 있는 스위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스위치는 그의 귀 바로 뒤쪽, 딱딱한 유양돌기(Mastoid Process) 바로 아래의 부드러운 지점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을 강하게 누르거나 마사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손가락을 부드럽게 대고, 그의 몸이 “이제 괜찮다”는 신호를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치유라기보다는, 과민해진 신경계에 "이제 괜찮아,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돼"라고 말을 걸어주는 과정과 같았습니다.


몇 분이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의 짧고 얕았던 호흡이 점차 깊고 편안해지기 시작했고, 그의 배에서 "꾸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수년간 멈춰있던 소화기관이 비로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었다는 명백한 신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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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당신의 액셀은 안녕하신가요?


만성 피로, 소화불량, 불안감.

어쩌면 당신이 겪고 있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고장 난 위장이나 약해진 체력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성공을 위해, 책임을 다하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당신도 모르는 사이 삶의 액셀을 너무 세게 밟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당신의 몸이 보내는 '과열 경고등'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 당신 몸의 브레이크 페달을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천천히 가는 지혜.

그것이 당신의 몸이 보내는 진짜 메시지일지 모릅니다.


당신의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그 여정에 제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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