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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r 19. 2020

나를 춤추게 하는 도시, 방콕

그래도 저는 그 거리에 다시 갈 거예요.


마지막 도시, 방콕 

미얀마에서 만난 남자는 말했다. 카오산로드는 예전 같지 않다고. 사람들도, 그곳의 열기도 전부 변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목적지를 바꾸지 않았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기억과 짙은 그리움을 만나야 했기 때문에.


짧은 비행으로 마지막 목적지에 닿는다. 다시 돌아온 방콕. 공항에 짐을 맡긴 후 시내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줄지어 앉아 있는 여행자들과 버스 복도를 채운 배낭이 덜컹거리며 카오산로드로 향한다. 옆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그들은 곧 사랑에 빠질까? 알 수 없는 언어 사이로 반짝이는 눈빛이 보인다. 그런 달콤한 장면은 우리를 애틋하게 만든다.




버스가 멈춘 곳에서 승객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모두 목적지가 같다는 뜻. 익숙한 열기와 습기가 우릴 반긴다. “으, 진짜 덥다. 근데 너무 반가워. 저쪽이 내가 비키니 샀던 가게야!” 3년 전, 방콕에서 보낸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오후. 거리마다 깃든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나는 들뜬 표정으로 앞장서 걷고 그는 낯선 도시의 벽을 허문다.

람부뜨리 거리의 어느 바비큐 가게. 파프리카와 양파가 잔뜩 들어간 꼬치를 주문한다. 별 기대 없이 먹은 길거리 음식은 엄청난 행복을 안겨 준다. 더운 날씨는 계속되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걷거나 먹는다. 그리고 우리도. 왜일까, 이 거리에만 오면 나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나는 마시지도 못하는 칵테일 생각에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시끄럽고 복잡한 건 딱 질색인 내가 왜 카오산로드에 빠졌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카오산로드를 세 부분으로 나눈다면 1번은 당연히 람부뜨리고 그다음은 재즈바가 있는 거리, 마지막이 팟타이 가게가 즐비한 곳이야.” 혼잡한 거리를 벗어나 한산한 길목에 도착한다. 강가를 산책하던 중, 음악에 맞춰 체조하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무리에 섞여 몸을 움직인다. 한 여름밤의 우리, 그리고 낯선 내 모습이 좋다.

주황빛이 강렬한 불빛 아래, 작게 흐르는 빈의 노래에 화음을 쌓는다. 유일하게 기타로 칠 수 있는 팝송, Falling slowly. 우리는 골목길에서 호탕한 웃음을 쏟아내며 노래를 부른다.

​3년 전 어느 날도, 오늘도 카오산로드는 뜨겁고 낭만적이다. 레스토랑 입구에 앉아 기타 치는 남자, 거리에 나온 여섯 명의 비보이,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행자들. 이곳의 모든 시간은 나를 춤추게 한다.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리듬을 타거나 환호했다. “신났네, 그렇게 좋아?”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위스키와 과일이 없어도 충분히 취할 수 있는 밤.

우리는 이제 한국으로 간다.
긴긴 여정을 마치며- 안녕, 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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