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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미 Dec 07. 2022

50대의 취뽀 그리고 첫 출근 후기


50대의 취뽀


'카톡 카톡~ ' 아침부터 전화기가 바쁘다.


"엄마 드디어 취뽀했네~ 첫 출근 축하해요~."

‘취뽀??? 뭐야. 취업에 뽀뽀했다는 말인가?’


요샛말로 취업에 성공했다는 말인  '취업 뽀개기'를 줄인 신조어란다.

아들 딸 덕에 요즘 세대들의 문화에 조금은 친숙해진 듯.


"많이 설레? 아님 긴장돼?"


30년 만에 공식적으로 '출근'이란 걸 해보는 내 상황에 식구들이 더 난리다.

남들이 알면 뭐 대단한 일을 시작한 줄 알겠지만, 내가 취업한 곳은 다름 아닌 '자원 봉사자'라는 이름의 유치원 보조교사 일이다.


얼마 전 딸아이가 '유치원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문'을 보내왔다.


"겨울방학 때 유치원 보조교사로 활동하는 일인데 엄마 적성에 딱 맞을 것 같아."

"젊은 사람도 많은데 나이 든 사람을 왜 뽑겠어?"

"젊은 사람들은 돈을 받고 일하겠지..?"


아! 자원봉사라면 내게도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나이랑 상관없고 유아교육을 전공하지 않아도 된단다.

심지어 자원봉사자임에도 교통비와 식비 명목으로 시급 9천 원이 지원된다고 해서 더 마음이 끌렸다.

예전에, 전공과는 무관하게 심리학이 재미있어서 아동미술 상담사와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을 내세워 일단 지원서를 제출해보기로 했다.



살면서 두 번째 면접을 보다


면접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첫 직장에서의 면접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설레기도 했지만 약간 긴장도 돼 어떤 답변을 준비해야 할지,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할지 모처럼 마음이 분주해진다.

말 그대로 자원봉사자를 뽑는 건데 뭐 특별할까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자원봉사자로 지원한 ㅇㅇㅇ입니다~."

세 분의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드라마에서나 봄 직한 면접관이 들고 있는) 채점표 같은걸 들고 있었다.

'뭐야? 제대로 준비도 안 했는데...' 속으로 무척 당황했다.


"유아 관련 일은 해 본 적 있으신가요?"

"아이들끼리 싸우면 어떤 식으로 개입하실 건가요?"

"아이들 뒷정리도 도와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등등 한 분씩의 질문이 이어졌고,

다행히 두 아이를 키운 경험치를 살려 그런대로 답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추가적인 서류와 온라인 교육 수료증을 가지고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 합격~!"

남편, 딸. 아들은 무슨 사법고시 패스라도 한 것 마냥 요란스럽게 축하를 했다.

"남들 들으면 웃을 일이야~."

이렇게 응수 하긴 했지만 내심 기뻤다.

비록 3개월짜리 한시적인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공식적인 출근이 얼마만인지...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3년이 지났다.

한 동안 울타리 밖으로 나가 낯선 곳에서의 사회생활에 편입되는 것이 꺼려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어떤 일에도, 흥미도 의욕도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갱년기 앓이 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무슨 핑계라도 필요했던 시기에 스스로를 합리화시킬 수 있는 이유로는 둘 다 적당했다.


원래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집 밖에서 노는 걸 더 좋아했고, 그렇게 에너지를 받아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기찬 캐릭터였다.

그랬기에 한 동안 사회와 담을 쌓고 사는 내가 식구들에겐 다소 걱정거리였던 모양이다.



드디어 첫 출근날!


식구들의 과한 응원을 받고 첫 출근을 했다.

주된 일은 담임선생님을 도와 아이들의 안전, 등. 하원 지도, 간식. 급식 도움 등이었다.


내가 배정된 곳은 5세~7세 아이들의 방과 후 교실인 샛별반이다.

글자 그대로 샛별처럼 초롱초롱한 아이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퍼진다.

마스크에 가려져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선생니임~ 이름이 뭐예요?"


딱 봐도 얼굴에 장난기가 묻어있다.

사실 선생님 이름이 뭐든 상관없어 보이지만 그냥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일 게다.

말을 걸어 주는 개구쟁이 친구가 고마워서 목에 걸고 있던 이름표를 보여 준다.


"우리 친구 이름은 뭐예요?"

"도? 이요~"

"으응? 뭐라고요~?"


마스크 사이로 가림막 하나를 뚫고 나오는 아이의 말소리가 떠들썩한 주변 소리에  더 뭉개져 몇 번이나 되물었다.

이제는 마스크가 아이들에겐 자연스러운 장신구 같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어렸을 때부터 마스크에 익숙한 아이들은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잘 읽어 내지 못한다고 한다.

어른 세대들이 아이들에게 물려준 유산이 마스크라는 현실이 문득 더 안타깝게 와닿았다.




오늘은 도윤이와 제일 먼저 인사를 텄다.

눈꼬리가 약간 처진 장난꾸러기 같은 눈, 그러면서도 유난히 초롱초롱하고 까만 눈동자를 가진 여섯 살 도윤이.

까만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통통 뛰어다니는 모습이 꼭 탱탱볼 같다


"선생님. 옷 벗어도 돼요?"


한 벌 짜리 운동복을 입고 속에 두꺼운 동물무늬 내의를 입었다.

며칠 새 갑자기 추워져 두꺼운 옷을 입힌 모양이다. 엄마 마음은 그래야 안심이 되니까.


"도윤이 덥구나. 그러면 속 내의는 벗고 겉옷만 입자. "


 처음 보는 내게 스스럼없이 도움을 청하는 아이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선생님~ 누가 보면 안 되니까 여기서 입을래요."


아무도 없는 빈 교실 이건만 아이는 문쪽을 힐끔 거리며 구석자리로 간다.

항상 까불까불 명랑하기만 하던 아이한테 저런 면도 있구나 싶어 존중해주기로 하고,

"선생님이 옷으로 가려 줄 테니 걱정 말고 갈아입어~."

귀여움 작렬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4~5시간, 책도 읽고 만들기도 하고, 율동도 함께 하면서 꼬마친구들에게 흠뻑 빠져 들었다.

첫날이라 멀뚱 거리게 되면 어쩌나 우려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요즘은 아이들이 귀해서 보물이에요~”

원장 선생님과의 첫인사에서 들었던 말이다.

보물 같이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언제 또 함께할 기회가 있을까 생각하니 매 순간순간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우리 애들도 유치원에서 이렇게 놀았을까?‘

저마다 각각 다양한 놀이에 몰두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23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새삼 궁금해진다.

대부분 그랬겠지만, 참관수업 말고 진짜 리얼 수업에는 함께하지 못했으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 생각으로 가득 차 흐뭇해진다.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만날지 잔뜩 궁금해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대해본다.


덧붙여, 나처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50대 분들께 적극 추천하고 싶은 일자리다.

아마도 십 년은 젊어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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