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한 고향의 상징으로 진한 향수와 감동을 전하는 '전원일기' 고향의 느티나무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의 곁을 듬직하게 지키는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학을 가고 혼자 살게 되면서 전원일기를 보지 않았다.
가족 간의 정을 그린 작품들이 많아 일요일 아침에 드라마를 보다 보면 엄마가 보고 싶고 집에 가고 싶어 혼자서 훌쩍거릴 때가 많았다. 그 후에는 가끔 보다가 전원일기가 20여 년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잊고 살았다.
우연히 TV에서 전원일기 재방송을 보았다.
이제는 엄마가 보고 싶어 울지도 않고 그때는 알지 못했던 세월의 흐름도 느껴지면서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다시 보게 된 전원일기의 시청 소감을 써볼까 한다.
초콜릿을 먹는 아이(상)
서울에서 온 여자아이 송이가 슬기네 집에 놀러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송이는 당돌하고 말도 똑 부러지게 잘한다. 귀농한 슬기네 식구는 시골의 빈집에 무료로 살고 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줌마네는 어떻게 빈 시골집에 살게 되었냐, 남의 집에 공짜로 사는 건 아니지 않냐며 질문을 하여 슬기 엄마를 당혹스럽게 한다. 자기는 서울의 강남 32평 아파트에서 살았다며 자랑도 한다.
소꿉놀이로 송이는 부부싸움 놀이를 택하여 앙칼진 아내 역할을 하며 남편에게 돈 벌어 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자식 역할의 슬기에게 구석에 가서 손을 들고 있으라고 한다. 늦었으니 집에 가라는 슬기 엄마의 말에 집에 가기 싫다고 한다.
이튿날, 송이가 또 왔다.
학습 준비물을 산다고 슬기 엄마에게 2000원을 빌려달라고 하여 슬기 엄마를 또 한 번 당혹스럽게 한다. 송이는 빌린 돈을 가지고 사라졌다.
우연히 길에서 수남 아빠를 만난 송이는 또 강남 32평을 이야기하며 아저씨 집에서 밤에 자도 되냐고 묻는다. 겨울밤 기온이 많이 내려간 비닐하우스에 난로를 살피러 간 수남 아빠는 난로 옆에서 자는 송이를 발견한다.
송이는 이혼한 아빠가 큰집에 데려다 놓았다. 큰아빠와 큰엄마가 자기 때문에 싸워 여름에는 산에서, 겨울이면 추위를 피할 곳을 찾아 밖에서 잔다고 했다. 아빠가 큰집에 맡기며 사 준 초콜릿을 먹던 기억 때문에 아빠가 보고 싶으면 초콜릿을 먹는다는 송이는 슬기 엄마에게 빌린 2000원으로 초콜릿을 사서 먹었다.
이튿날, 송이를 큰길까지 바래다주는 수남 아빠에게 큰집에서 자식이 없는 집에 양딸로 보내려고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며 자신을 양딸로 삼아달라고 한다.
며칠 후, 송이가 큰아빠와 함께 김 회장댁을 찾는다.
어느 집에 양딸로 가게 되었다며 인사차 온 것이다. 수남 아빠 손에 초콜릿을 건네주며 송이는 떠난다. 수남 아빠가 송이야 부르며 드라마는 끝이 났다.
수남 아빠가 송이를 입양했을까? 하는 궁금함이 들었지만, 그 후의 전원일기에 송이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송이는 그렇게 떠났다.
지금은 6학년이 되어 있을 한 아이가 떠올랐다.
5년 전 입학식에 아주 많이 늦게 온 1학년 아이, 검정 비닐봉지에 연필과 실내화를 넣어서 혼자 왔다. 아이에게선 담배에 찌든 냄새가 났다. 옷과 몸은 땟국물이 줄줄, 얼굴도 며칠 세수를 하지 않아 보였다. 아동학대가 의심되었다.
이름만 겨우 그리는 수준으로 쓸 수 있을 뿐 아무것도 모르는 정글의 늑대소년 같았다.
학교에 오는 시간도 들쭉날쭉, 수업 시간에 자고 급식시간만 반짝이며 밥을 엄청 많이 먹었다. 아빠는 아이 셋을 혼자 키우며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았다. 아빠가 들어오지 않는 날은 어린 동생들과 저녁도 거르고 밤새 TV만 보다 잠이 든다. 일찍 일어나는 날은 내가 출근도 하기 전에 교실 문 앞에서 찬 복도에 엎드려 자고 있고, 늦게 일어나는 날은 수업이 끝나가는 시간에도 온다. 아이가 학교에 오는 이유는 배가 고파서였다.
교사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이다.
차마 친아빠를 신고하려니 부담이 되어 면담하려 해도 응하지 않고 아이에 대한 방임과 학대는 확실하였다. 경찰과 기관에 연계하여 상담과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 아빠는 아동학대로 신고되고 아이 셋과 아빠는 분리되었다.
아이는 보호기관으로 옮겨지며 아이 모습을 되찾았다.
깨끗해진 용모뿐 아니라 아이다운 웃음과 자신의 의사 표현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한글 및 숫자 공부도 함께 하면서 점점 자신감을 갖추었고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3개월의 유예기간이 끝나고도 아이는 끝내 아빠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심사기관에서 아빠의 양육 자세 및 환경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를 문제 삼아 친할머니가 키우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할머니 댁에서 살게 되어 전학 갔다.
아이와 헤어지는 날, 학용품과 옷 몇 가지, 그리고 동생들과 나눠 먹을 과자를 챙겨주었다. 눈물로 아이를 보내며 그 아이가 정말 잘살기를 바랐다.
전학 가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이가 교실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어떻게 된 일이냐 물어보니 웃기만 할 뿐 말이 없다. 아이는 새 학교에서 정을 붙이지 못하고 또 힘이 들었다. 궁금하던 차라 아이가 반갑기도 했지만 먼 길을 걸어온 아이의 안전도 걱정되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가 새 학교와 할머니에게 적응하기가 힘들 것 같아 내 마음을 감추고 잘 타일러 보냈다. 그리고 할머님과 전학 간 학교 담임선생님께 부탁의 전화를 드렸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아이가 맘에 걸렸다. 선물을 사서 햄버거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에 남편에게 상의했다.
“지금 아이가 새 학교에 적응하여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 아이가 적응할 수 있도록 하려면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앞으로 계속 그 아이에게 신경을 쓰고 아이가 자랄 때까지 책임질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금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다음 크리스마스에도 기다릴 텐데, 일회성으로 그칠 것 같으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였다.
책임.
비겁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가끔 생각나는 그 아이가 어디서 잘살고 있겠지 하며 잊지 않고 기원할 뿐이다.
송이를 보내는 수남 아빠의 마음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고 잘 가라고, 잘 지내라고 손 한 번 잡아주고 돌아섰을 것이다. 자신이 젤 좋아하던 초콜릿을 건네주던 송이의 마음을 기억하고 어디선가 잘살고 있겠지 하며 잊지 않고 기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