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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Nov 17. 2020

그녀를 위한 해장국, 사랑도 끓는다.

전원일기 다시보기 <부부>

양촌리의 시어머님들이 모두 집을 비운 날,

슬기 엄마가 복길 엄마(일용의 처)를 곱게 꾸며준다. 시어머니 부재중에 남편과 오붓하고 달콤한 시간을 가져보라며 화장도 해주고 머리도 손질하여준다. 평소에 옷도 여성스럽게 입고 꾸미고 살면 남편이 더 좋아한다며 평소의 복길 엄마의 소탈함을 여성스럽지 않음으로 여긴다. (그 시절의 이야기라 양성평등이지 않은 부분이 있음). 수남 엄마도 화장한 모습의 복길 엄마를 보며 훨씬 예쁘다며 치켜세운다.


그 시간, 김 회장댁 큰 며느리 영남 엄마는 시어른들이 안 계신 한가한 시간에 글을 쓴다.   

 

슬기 엄마와 수남 엄마의 응원에 힘입어 다소 과한 화장과 올림머리를 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온 복길 엄마도 자신의 모습이 낯설고 이상하다. 부끄럽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가족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일용은 도깨비 같다며 당장 화장을 지우라고 소리치며 집을 나간다.    


그 시간, 집에 돌아온 수남 엄마도 화장을 한다. 남편이 예쁘다고, 입술은 이런 색이 좋겠다며 가끔 화장도 하고 살라며 부인의 기분을 맞춰주어 수남 엄마는 행복하다.   

 

예쁘다는 말을 기대했던 복길 엄마는 화가 나고 다시 모인 수남 엄마, 슬기 엄마에게 하소연하며 과자와 음료수를 먹던 자리가 술판으로 변했다. 자기 설움에 복받친 복길 엄마는 양주를 들이켜고 수남이 집에서 쓰러져 자는 바람에 일용에게 업혀 집으로 왔다.    


복길 엄마의 마음을 뒤늦게 이해하고 일용은 부인의 해장을 위해 해장국을 끓인다. 다음 날 아침, 쓰린 속으로 해장국을 먹는 복길 엄마의 웃음이 환하다.    


드라마 속의 복길 엄마는 겉모습으로 보면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 짓기 어렵다.

자신을 꾸미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억척같이 일하고 돈을 모으는 재미로 산다. 남자 몫을 하는 씩씩한 농부로 시어머니 잘 모시고 살림 잘하며 오로지 식구들을 위하며 산다. 또래 여자들의 모임에서도 예쁨과 사랑스러움은 그들만의 욕구이지 복길 엄마는 억척 알뜰의 대명사로 불릴 뿐 관심도 없다.  

  

그녀도 여자였다.

좋은 옷에 예쁘게 치장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림살이 늘어가는 재미에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가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한 여자였다.

복길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봐달라, 자신을 예뻐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복길 엄마는 시어머니에게도, 자식에게도 그런 요구는 하지 않는다.  

  

다만, 남편은 그들과는 다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기를 바랐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도,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남편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고 살았다. 그녀 또한 남편이 어떻게 살아도,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들과는 다른 사랑으로 이루어진 관계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하지만 보이는 것이 다일 때가 더 많다.

홀시어머니에 외며느리이니 신혼의 달콤함도 마음대로 누리지 못했다. 부부로 살아가는 세월의 더께가 더해지면서 남편의 말과 행동은 투박해진다. 때론 거칠어진다. 믿음과 사랑은 보이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에 속상해한다.     


수남 엄마는 남편이 예쁘다고 하는데, 영남 엄마는 우아하게 글을 쓰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억척을 떨며 살았나 후회한다. 이런 모습의 나에게 자신이 없어진다. 그래서 좀 더 예쁘게, 여성스럽게 화장도 하고 꾸며보았는데 남편이 도깨비 같다며 소리를 친다.

남편이 밉다. 

남편의 사랑을 의심한다.

술에 취해 버렸다.

   

남편도 그녀가 어떻게 살아도,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의 억척 알뜰과 꾸미지 않는 모습들이 안쓰럽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 마음을 보이지 못했을 뿐인데 그것마저도 그녀는 다 이해하리라 믿었다. 평소의 그녀는 그러고도 남았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못난 남편이라 자책한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니 다행이다.

미안하다고, 이제부터 더 잘하겠다고 약속하며 해장국을 끓여낸다.

그녀만을 위한 그의 해장국에 사랑이 끓는다.

해장국 한 술에 그녀의 마음에도 사랑이 끓는다.

   


부부라면 그래야 한다.    


현재를 사는 부부는 일용의 해장국에 몇 가지만 넣으면 더 맛있어질 것이다.    

시어머니의 부재중인 시간이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되는 삶,

자신을 위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

사랑의 마음을 말(이왕이면 듣기 좋은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삶,

그녀의 마음을 읽는 센스,    


물론 그녀도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  

  

살아보니 쉽지 않다.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도 좋다.

사랑을 가장한 측은지심이라 하더라도, 사랑이 가득한 해장국을 맛있게 끓여내면 된다.  

    

부부라면 이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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