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줌마 Dec 02. 2020

금쪽같은 내 부모입니까?

전원일기 다시보기 <열 손가락>

한적한 오후, 김 회장 부부가 앨범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다 커버린 자식의 어린 모습에서, 큰 애는 이래서 예쁘고, 작은 애는 저래서 웃겼다며, 환한 웃음에 자식 사랑과 행복이 넘친다.     


시골에서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을 키우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힘든 독박 육아에 독박 살림, 독박 농사까지 더해졌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하듯이 5남매를 키워 결혼을 시키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그래도 행복하게 사랑으로 기억하는 것이 부모의 맘인가 보다.    


그 시간, 종기네 집에 놀러 갔던 금동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군거리는 업둥이 이야기에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온다.    


안방에 들어선 금동은 형과 누나들의 앨범으로 행복을 추억하는 어머니를 부러움을 감추고 쳐다본다. 누가 제일 예뻤냐, 누구를 낳을 때 가장 힘들었냐 등 질문을 하며 어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김 회장은 그런 모습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다 금동이 나간 후 속없는 사람이라며 부인을 못마땅히 여긴다.    


방으로 돌아온 금동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다.

이내 따라온 어머니는 금동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쁨과 감사함을 말한다. 금동을 껴안으며 내가 뭘 잘했다고 이런 아들을 만났을까 하며 금동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나는 아들에게 금동 어머니처럼 하지 못했다.

마음이야 귀하고 예쁜 내 자식이지만 바르게 자라도록 교육한다는 것이 집에서도 선생이었다. 사내아이라 조금 더 엄격하게 하고, 누나에게 양보해라, 웬 놈의 지켜야 할 규칙은 그리 많았던지, 편하지 않은 엄마였다.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 나보고 객관적인 엄마라고 했다.

내 새끼라고 무조건 잘했다고, 무조건 예쁘다고 하지 않는 엄마를 에둘러서 그렇게 표현했다. 엄마의 마음은 알지만,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는 마음을 나타냈는데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금동 어머니처럼 무조건 아들이 예쁘다고 했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한창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을 더 단단하게 잡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객관적이다 못해 선도 반장 같은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와 아들로 만나자는 어머니의 말에 

“저는 다음 세상엔 꼭 어머니의 배를 빌려 태어나는 자식이 되고 싶어요”

금쪽같은 내 새끼와 금쪽같은 내 부모이다.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에 형언하기 힘든 아픔과 감사가 보인다. 깊게 숨겨두었던 아픔을 뱉어낸 금동이는 편해졌다. 어머니의 웃음이 금동이를 행복하게 한다. 


금동이를 키우며 아픈 과거는 잊었다.

금동이는 아픈 손가락이지만 내 새끼가 되면서 어머니의 여섯째이며 막내일 뿐 5남매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고 주위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했지만 정작 금동이 본인은 그렇지 못했다. 어머니에겐 금쪽같은 내 새끼였지만 업둥이는 어머니의 배로 낳지 않았다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것이 아프다. 어머니는 잊어버린 사실을 금동이는 잊어버리지 못했다. 어머니로서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괜히 미안하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들었던 일은 잊어버렸다. 

아이가 아파서 힘들었던 일, 맡길 데 없어서 동동거렸던 일 등은 눈물의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내 기억 속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 없는 착한 아이, 예쁜 아이로 남아 있다.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질풍노도의 사춘기, 학원 빼먹기 등도 지금은 재미있는 추억으로 떠오른다.     


아들도 금동이처럼 잊어버리지 못한 아픈 마음이 남아 있었다.

엄마를 좋아하고 순했던 아들은 혼이 나도 금방 털어버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잘 지냈다. 다정하고 재미있게 지내는 아들의 웃는 모습에서 숨겨진 응어리를 보지 못했다. 다 이해하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아들이 숨겨두었던 마음을 터뜨렸다.

아들의 마음 한구석에 금동이처럼 엄마에 대한 부족함이 깔려있었다. 집에서 선생질하고 선도 반장 같았던 엄마의 훈육은 꼰대였다. 나는 잊어버린 사실을 아들은 잊어버리지 못하였다.    


놀랐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후회스럽다.

잘못했다.

미안하다.

아픔을 뱉어낸 아들이 이제 편했으면 좋겠다.

나의 웃음에 아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이 세상 모든 자식은 금쪽같은 내 새끼이다.

하지만, 금쪽같은 내 새끼를 위한 부모에게는 기쁨만큼 만만치 않은 눈물 삼킨 아픔도 있다.

부모는 그 아픔마저 다 행복으로 추억한다.

그런 부모님을 금쪽같은 내 부모라 생각하는 자식은 몇이나 될까?    


나는 금쪽같은 부모일까?

자신이 없다.

이제라도 금동이 어머니처럼 해야겠다.  

  

금쪽같은 내 새끼는 많은 세상에서 당신은 금쪽같은 내 부모입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전원일기 다시 보기 <초콜릿을 먹는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