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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Jun 20. 2019

[영화] 칠드런 액트

'딜레마'를 대하는 우리의 방법

The Children Act 2018 - 리처드 이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에는 여러가지 딜레마가 소개된다.


'각기 다른 다섯 가지 장기의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다섯 있다. 그리고 건강한 한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을 죽여 다른 다섯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할까?'


'살기 위해서 사람을 잡아먹은(투표를 통해 정했다고 주장하는) 조난자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할 것인가?'


'뭔가 고장이 나서 멈추지 않는 열차는 곧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철로 위의 다섯 인부를 치게 될 것이다. 레버를 돌리면 철로를 바꿔서 한 사람의 인부를 치게 될 것이다. 레버를 돌리는 것이 옳을까?'


중요한 것은, 강의는 이러한 딜레마를 소개하고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고 다양한 철학자의 관점들을 제시하지만, 답을 내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강의를 계속 보아도 무언가 해결되지 않은 찜찜한 상태로 다음의 질문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는 사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딜레마들.


<칠드런 액트> 역시 딜레마를 소개한다. 표면적으로는 수혈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종교를 가진 백혈병 걸린 아이를 통해 '종교의 자유와 법적 질서 중 무엇이 우선하는가'라는 메인 딜레마를 드러내지만, 가만히 보면 피오나의 삶은  그것 외에도 온통 '딜레마'로 가득 차있다. 


-판사로서의 일과 가정의 일중 무엇이 우선할까?


-무심한 결혼생활에 지쳐 바람을 피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남편 잭은 그러나 조카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멋진 삼촌이며, 여전히 피오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판사로서 재판 관련자들의 삶에 관여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환자를 찾아가 노래를 부르고, 희망을 주고, 장례식에 찾아가는 것은)? 


누군가는 쉽게 말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의 자유를 고집하는 아이는 스스로 선택을 존중하여 죽도록 놓아두고,  가정보다는 판사로서의 일이 우선, 바람을 피는 순간 결혼생활은 끝이며, 굳이 법의 대변인인 판사의 입장에서 관련자들의 일에 필요 이상으로 간섭할 필요는 없다고.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미성년인 아이는 가정과 종교의 강압으로 인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상황이 아니므로 보호받아야하며, 애초에 가정의 행복을 위해 가진 직업일 것이고, 여전히 잭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며, 피오나가 애덤을 찾아가 만난 일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삶에 딜레마의 질문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서 끊임없이 찾아온다. 하나의 딜레마도 감당하기 어려운 인생에 딜레마는 쏟아지는 동전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쌓인다. 어느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인생은 점점 꼬이기만 하도록 설계되어 있을까.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하고, 길을 잃고, 머리를 쥐어 뜯으며 절규할 수밖에 없도록?


애초에 딜레마는 그것이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딜레마인 것이다. 동전이란 것은 공교롭게도 항상 앞과 뒤(애초에 어느 것이 앞이고 뒤인가?)의 그림이 다르며, 억지로 동전의 반을 가른다하여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딜레마라는 것은 '탈무드의 지혜'나 '재치있는 면접 답변' 같은 것으로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느 하나를 선택할 뿐이며 그것은 다른 하나가 의미가 없다는 것도, 심지어 저울질을 해서 어느 한쪽이 더 가볍거나 무겁다고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딜레마의 '답'이 아니다. 항상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더 나은 어느 한쪽'이 아니라, 그 딜레마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그러기로 한 것. 법의 이름을 빌려 애덤을 살리기로 한 것. 그를 찾아가 가사를 모르고 치는 기타 음악에 따라 노래를 불러 시를 알려 준 것. 죽어가는 애덤의 병실에 찾아가는 것. 죽은 애덤의 장례식에 찾아가는 것. 잭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그러한 선택을 하기까지 그녀가 감당했던 감정들과 만났던 사람들, 잃어버린 사람, 시, 전혀 다른 인생의 상상, 차마 연주하지 못했던 마이 퍼니 발렌타인, 대신 입에서 흘러 나왔던 어떤 가사. 


영화 <칠드런 액트>는 여러 갈림길 중에서 스스로 판단하기에 더 나은 길을 택하는 피오나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은 피오나의 어떤 '태도' 혹은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그녀의 선택의 결과에는 '가치판단'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녀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도 분명 중요한 의미와 놓쳐버린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애덤의 장례식장을 잭과 함께 손을 잡고 빠져나가는 그 긴 엔딩 크레딧의 여운은 분명 그녀가 선택한 길이 의미가 있음을, 그리고 고민하고 아파하고 사랑하고 관찰하고 마침내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딜레마를 대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말해주고 있다. 


딜레마란 어쩌면 '푸는 것'이 아니라 '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무척이나 우아한 방식으로, <칠드런 액트>는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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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 앤 줄리아>에서 메릴 스트립의 남편 역을 맡았던 스탠리 투치는 이 영화에서도 비슷한 '남편' 역을 맡는다. 물론 이번에는 좀 더 나쁜(?) 물이 든 역할이기는 하지만 그가 지어내는 온화한 미소나 젠틀한 몸짓과 옷차림을 보고 있으면 지금 저 캐릭터를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건지 그 반대인지를 항상 의심하게 만든다. 그는 언제나 나이든 멋진 여성의 배우자로서 어울리는 존재감(결코 강하지 않은, 그러나 약하지도 않은 존재감)의 남성 역할을 잘 연기하는 듯 보이고, 그것은 아무래도 효과적인 것 같다. 


- 인상 깊은 음식. 비록 먹지는 못했지만 간호사가 애덤에게 가져온 로스트 치킨. 간호사의 깨알같은 스웩이 이 '로스트 치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제대로 전달했다. 아쉽게도 병원식인지라 그리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 최고의 명대사는 '전원 기립'. 짜릿한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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