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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Jan 23. 2024

해외에서 첫 수술. 그것도 심장.

해외로 이주할 때 좋은 보험이 필요한 이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내가 깨어나지 못하면, 

첫째 낳았다고 사 준 다이아몬드 반지는 꼭 첫째 주고..." 


수술 하루 전 유언 비슷한 것을 남겼다. 모든 수술은 무섭지만 이번엔 심장 수술이어서 더욱 그랬다. 별 일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의료사고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하는 수술이라 의사 선생님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영어로 들은 설명을 내가 모두 이해했는지도 확신이 없어 불안했다. 한국에서 수면 내시경을 할 때면 언제나 간호사는 혈압과 맥박이 낮은 나에게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라고 했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저혈압인 내가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확률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진심이었다.


2023년 10월의 마지막 날 감기로 병원을 찾았다. 너무 낮은 혈압과 맥박 때문에 의사 선생님이 ECG를 해 보자고 했다. ECG를 검색해 보니 심전도 검사였다. 검사를 마치고 의사 선생님이 부정맥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냐고 물었다. 미국에 살던 2015년 경에 부정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양한 검사를 했었고, 당시에는 의사가 심한 정도가 아니니 매일 30분씩 운동을 하고 지켜보라고 했었다. 아이들이 어려 내 건강까지 신경 쓸 여유도 없었고, 특별히 불편하지 않으니 그냥 살았다. 


2022년 싱가포르 이사하고 나서 걸을 때마다 숨이 가쁘고 몸이 더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이도 더 들은 데다가 날씨까지 덥고 습하니 부정맥 증상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내과 의사의 추천으로 심장전문의의 정밀 검사를 받았다. 부정맥으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20% 이상 심장이 더 뛴다고 했다. 지금은 젊어서 괜찮지만 그냥 두면 심장에 무리가 갈 거라고, 나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했다. 약을 먹어서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과 수술을 해서 증상을 없애는 방법이었다.

 

"선생님 소견으로는 어떤 방법을 저에게 추천하시겠어요?"

" 나이가 아직 젊으니 평생 먹어야 하는 약보다 부작용이 없는 수술을 권하겠습니다. 

약은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아니거든요."


선택은 분명해 보였다. 돈을 벌기 위해 수술을 권하는 의사들도 있겠지만, 평소에 약을 잘 먹지도 않고, 약 먹는 것도 잘 까먹는 내가 평생 약을 먹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닐 것 같았다. 게다가 부정맥 약의 부작용에는 혈압을 낮추는 것과 두통, 어지러움 등이 있었다. 약의 복용과 동시에 삶의 질이 확연히 떨어질 것 같았다. 


"제가 받을 수술의 이름이 뭔가요?"

"Catherter Ablation(전극도자절제술)이라고 합니다." 

모르는 용어가 나오니 왠지 더 아픈 것 같았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보험사에 알렸다. 하룻밤 입원하는 수술인데도 견적은 4천만 원이 나왔다. 싱가포르의 의료비가 비싼 줄은 알고 있었지만 두 시간 수술로 이틀 입원하는 환자에게 부과되는 비용이 4천만 원이라니. 한국행 비행기 요금과 호텔비용을 포함해도 한국에서 수술하는 것이 더 저렴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 맘대로 보험사 동의 없이 한국에서 수술을 할 수도 없었고, 한국에서 수술을 하면 수술 후 10일 후에 다시 비행을 할 수 있다니 2주 정도를 집을 비우는 것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보험사는 곧바로 보험사가 지정해 주는 병원에서 두 번째 소견을 받아오라고 했고, 두 번째로 방문한 병원의 심장전문의도 수술을 권고했다. 크리스마스 때 시어머니가 오시기 전에 수술을 마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12월 초로 예약을 잡아 두었다. 보험사가 원하는 대로 했으니 수술을 바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두 번째 의사 소견을 받은 이후에도 보험사에서는 수술을 해도 좋다는 확답을 보내주지 않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동안 일어났다면 훨씬 간단했을 과정이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살기 때문에 복잡해졌다. 나는 을의 입장에서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해야 하는 수술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12월 20일 드디어 수술을 받아도 된다는 확답을 받았고, 12월 초에 잡아 두었던 수술날짜는 새해 1월 10일로 변경했다. 나의 부재가 가족들 일상생활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수술을 해야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출장이 아니면 집을 비운 적이 없었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한 번도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외박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좀 크고 이제 친구들과 여행을 갈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혼 후 내 첫 슬립 오버가 병원이라니. 

나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수술실로 안내되었다. 수술은 서혜부에 국소마취를 하고 살짝 절개한 후 카테터를 삽입해서 부정맥이 발생되는 심장부위에 열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진정제를 사용해서 의식이 약간 있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나는 진정제에도 약한지 수술이 끝난 후에야 깨어났다. 카테터를 삽입해서 진행한 수술이기 때문에 수술 후에 5시간 동안 옆으로 눕지 못하고 반듯이 누운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두통과 요통이 심해서 괴로웠다.   


수술한 다음날 혈압과 맥박이 모두 정상이었다. 115/70 (84) 혈압도 약간 올랐고, 맥박이 84라니. 맥박은 언제나 40 정도였는데 정상 수치를 보여주는 게 신기했다. 모든 게 정상이었고 별다른 문제가 없어 바로 퇴원을 했다. 집에서 4일간 집안일에서 손을 뗐고 피곤해서 많이 잤다. 두통과 요통으로 약을 먹어야 했지만 수술은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보였다. 일주일 후에 선생님을 다시 만났고, ECG 검사에서 부정맥이 더 이상 잡히지 않았다. 한 달 후에 다시 검사를 하고, 반년마다 검사를 두 번 한 후에도 부정맥이 재발하지 않으면 완전히 부정맥이 치료된 것으로 진단한다고 했다.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멈췄다. 오래간만에 창문으로 햇살이 비쳤다. 부정맥과 작별 한 이후 내 삶의 질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더 가벼운지, 산책을 다닐 때 숨이 덜 가쁜지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봐야겠다. 수술 경과가 좋아 다행이다. 4천만 원이 넘는 수술비를 한 푼도 내지 않아 다행이다. 다이아몬드 반지도 아직 아들에게 넘기지 않아도 되니 그 또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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