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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Jul 22. 2024

한국팀과 프랑스팀이 싸운다면 누구를 응원할 거야?

UEFA 2024 


UEFA 2024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가 6월 15일 시작됐다. 월드컵 경기와 손흥민 선수 말고는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당연히 볼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남편과 아들은 독일과 헝가리 경기를 보겠다고 밤늦게 TV 앞에 앉아 있었다. 


"아들, 월드컵 경기를 한다면 말이야, 독일하고 한국 하고 경기를 하면 어느 팀을 응원하겠어?"


"독일."


"아 그래, 그럼 독일하고 프랑스가 경기를 하면 어느 팀을 응원할 거야?"


"독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독일을 선택했다.


"그럼 한국하고 프랑스 하고 경기를 하면?"

질문과 대답 사이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들은 답은


"프랑스."


"뭐라???"

가볍게 재미로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기분이 확 상했다. 충격이었다.

 

아빠가 프랑스계 독일인이고, 엄마가 한국인인 내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3개의 국적을 갖게 되었다. 아들은 독일에서 태어나 거의 5년을 살았고, 미국에서 3년 반을 살았고, 한국에서 5년을 살았다. 유치원부터 독일 학교시스템에서 학교를 다녔고 가족 공통 언어도 독일어라 아이가 제일 잘하는 언어도 독일어이고, 독일 문화에 가장 많이 노출이 되어 있어 어떤 경기든 독일 팀을 응원하는 것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프랑스를 선택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싱가포르로 오기 전 한국에서 5년이나 살았고, 엄마인 내가 주로 한국말로 얘기를 하고, 한국음식을 그리 많이 해 주는데 한국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친할머니가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 말고,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는 것 말고는 별로 연고가 없는 프랑스를 한국 대신 응원한다고?


"나 자러 갈래." 


볼멘소리로 얘기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재미있는 듯 히죽히죽 웃고 있는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얄밉게 생긴 얼굴이란 저렇게 생긴 얼굴을 말하는 것이겠지. 

'두고 봐. 올여름 코리아 부트캠프 시작이다! 정신교육을 다시 단단히 시켜야겠어!'


나는 주입식 교육도 싫어하고, 공부도 취미도 강요하지 않지만 한국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아이들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한국문화를 자꾸 주입하게 된다. 한국이라는 색을 아이들에게 제대로 입혀서 엄마의 정서를 이해받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한국 사람이 아닌 것처럼 행동할 때 정신이 번쩍 든다. 아이들의 행동이 마치 나의 정체성마저 위협하는 것처럼 발끈하게 된다. 


방학 동안 아이들과 같이 한국 드라마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한국 드라마는 넷플릭스만 켜면 넘치기 때문에 접근하기 쉽고, 한국어로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인의 정서를 맛보는 한국문화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어떤 드라마를 고르냐도 중요하다. 아이들이 드라마 종편까지 거부감 없이 잘 보려면 재미있는 드라마로 골라야 했다. 내 사랑 넷플릭스의 프로그램을 훑어봤다. 좋아하는 이정은 배우가 나오는 최신 드라마가 눈에 띄었다. 제목은 <낮과 밤이 다른 그녀>.


1편은 물론 강요로 다 같이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재미가 있는지 두 아이 모두 주말 이후에 새로운 에피소드가 방영되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특히 주병덕 수사관 역할을 맡은 윤병희 배우의 연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아들이 많이 낄낄거린다. 아이들의 한국어 어휘가 부족하기 때문에 영어 자막을 틀어놓고 드라마를 보다가 '검사', '형사', '사건', '저주' 같은 새로운 단어들이 나오면 잠깐 멈추고 이해했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너무 많이 물으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한 편에 한 두 단어 정도만 확인을 한다. 엄마라는 직업은 높은 지능과 빠른 눈치를 겸비해야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뒤끝이 있는 나는 며칠뒤 한국 대신 프랑스를 응원하겠다는 아들의 말을 잊지 못하고 다시 조용히 물었다.


"아들, 너는 한국에 산 기간이 훨씬 긴데 어떻게 프랑스를 응원한다는 얘기를 해?"


"엄마, 프랑스 팀을 응원한다고 프랑스가 더 좋다는 게 아니라 프랑스 팀에 좋아하는 선수가 있어서 그래." 


"그래도 우리한테는 멋진 손흥민이 있는데?"


"물론 손흥민도 멋진데, 그래도 프랑스 팀에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이 있어서 그래.

엄마 들어봐. 내가 지금 '고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 한국뿐이야. 독일에서 살았던 기억의 거의 남아있지 않아. 미국도 부분적으로만 기억이 날 뿐이고. 한국은 달라. 제일 마지막에 살았던 나라라서 그런지 기억나는 것도 많고 한국에 도착하면 기분이 좋아. 우리가 살았던 동네를 지나가거나 즐겨 가던 레스토랑을 가면 한국 냄새가 있어. 여기가 내 고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진짜야?"


살 날이 더 많은 아이들이 앞으로 어디에 살게 될지, 고향에 대한 느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아들의 이런 설명은 섭섭한 마음을 스르르 풀리게 했다. 오랜 해외 생활 이후에 다시 한 한국 생활이 다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UEFA 2024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가족들이 새벽까지 경기를 보면서 응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프랑스 모두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했고, 결국 스페인이 영국을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가족들은 지난 몇 년간 부진했던 독일 팀의 기량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서로를 위로하며 2026년에  FIFA 북중미 월드컵을 기대해 보자는 대화를 나눈다. 나는 조용히 홀로 남은 2년 간 한국문화를 티 안나게 지속적으로 주입시켜야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내가 좋아하는 손흥민선수의 미담을 지속적으로 아이들에게 노출을 시켜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최애선수가 손흥민 선수가 되도록, 그래서 무조건 한국팀을 응원하도록 작전을 제대로 세워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 꽤나 주도면밀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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